코로나로 망해서 컵라면 먹던 30대, '비누 거품' 하나로 인생 역전하다
그날의 꿈은 소리가 아니라, “날짜”로 시작했다.
어떤 꿈들은 이미지로 남는다. 불빛이 번지고, 얼굴이 비치고, 어딘가로 떨어지는 감각이 끝에서 끝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화면도 아니고 종이도 아닌데, 숫자들이 공중에서 새겨지듯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2025. 12. 24. 숫자가 한 번 나타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가운 얼음에 금이 가듯, 조용히 뇌 속에 길을 내며 박혔다. 뒤이어 “대일본 지진”이라는 말이, 누군가의 입술을 거치지 않은 채로 그의 귀 안쪽에서 울렸다.
청년의 이름은 지훈이었다. 특별한 재능도, 특별한 사연도 없는 쪽에 가까운 사람. 겨울이 되면 손이 거칠어지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무릎이 은근히 시큰거리는, 그 정도의 평범함. 낮에는 작은 편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자격증 공부를 한다. 꿈을 꾸지 않는 건 아니지만, 꿈을 따로 믿어본 적도 없다. 꿈은 어차피, 피곤한 몸이 스스로를 어루만지는 방식일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도 그날은 달랐다. 꿈은 스스로를 ‘꿈’이라고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내가 지금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굳게 서 있었다. 그는 꿈속에서 어딘가 높은 곳에 서 있었다. 겨울 바람이 아닌데도 바람이 차갑고, 먼 바다에서 물이 들끓는 소리가 들렸다. 도시의 스피커가 일제히 울리며 일본어와 영어가 겹쳐 흘렀다.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였지만, 이상하게도 의미만은 정확히 들어왔다. ‘대피’라는 단어는 언어를 가리지 않았다.
지훈은 꿈속에서 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코트 자락이 흔들리고, 손에 쥔 휴대폰 화면이 떨렸다. 그 화면에는 지훈이 처음 본 날짜가 떠 있었다. 2025년 12월 24일. 남자는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날이구나.” 그 순간 지훈은, 그 남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꿈속에서조차, 그는 자신을 타인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깼다. 눈을 뜨자마자, 아직 꿈의 잔열이 피부 위에 남아 있었다. 겨울 이불이 무겁게 덮여 있는데도, 목덜미는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새벽 3시 17분. 창밖은 까맣고, 집은 조용했다. 세상은 아무 일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지훈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꿈이야. 그냥 꿈.” 이렇게 말하면, 꿈은 조금씩 납작해져서 현실의 바닥에 붙어버리는 법이었다. 늘 그래왔으니까.
그런데 그날의 꿈은 납작해지지 않았다. 날짜가, 머릿속에서 계속 빛났다. 숫자 자체가 빛나는 게 아니라, 숫자 주변의 공기가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마치 “이건 기억해야 해”라는 압력을 가지고.
지훈은 베개를 뒤집어쓰고 다시 잠들려 했다. 사람이 피곤하면, 대부분의 불안은 잠 속에서 희미해진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바로 그 장면이 되살아났다. 흔들리는 바닥, 멀리서 몰려오는 파도 같은 소리, 사람들이 뛰는 발자국.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날짜.
그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갔다. 차가운 바닥이 발바닥을 찔렀다. 메모지 한 장을 꺼내 펜을 들었다. 글씨를 쓰는 행위는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날짜를 적었다. 2025. 12. 24. 그리고 그 아래에, 큰 글씨로 “대일본 지진”이라고 적었다. 다 쓰고 나니 갑자기 우스워졌다. 자신이 왜 이걸 적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이건 영화의 클리셰 같았다. 주인공이 예언을 받고, 그것을 막기 위해 뛰어다니는 장면. 지훈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는 이야기로 끝나야 했다.
그는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종이는 통 안으로 들어갔지만, 마음속 날짜는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던졌다’는 감각이 날짜를 더 단단하게 붙잡았다. 마치 꿈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종이를 버려도 나는 남아.”
지훈은 자신이 과민반응을 한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믿고 싶다’는 말 자체가 이미, 그가 어느 정도는 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증명했다.
아침이 오자 세상은 늘 그랬듯이 움직였다. 지하철은 붐볐고, 편의점의 커피는 뜨거웠고, 사람들은 자기 일정을 걱정했다. 지훈은 출근길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다. 음악은 좋은 방패였다. 멜로디가 머리를 채우면, 불길한 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줄어든다. 그는 일부러 볼륨을 조금 더 올렸다.
그날 점심, 함께 일하는 선배가 가벼운 말을 던졌다.
“야, 너 요즘 얼굴이 좀 피곤해 보인다. 잠 못 잤냐?”
지훈은 웃으며 “그냥 공부 좀 하느라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덧붙였다. ‘꿈 때문이라고 말하면, 너는 웃을 거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은, 지훈이 선택한 첫 번째 방어였다. 말하면 현실이 된다는 미신을 그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말해버리면, ‘가능성’이 ‘대화 주제’로 격하될 것 같았다. 농담으로 소비되고, 과장으로 재단되고, 끝내는 자기 자신마저도
“그래, 내가 유난이었지”
라고 정리해버릴 것 같았다. 지훈은 그 정리를 원하지 않았다. 정리해버리면, 꿈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깊은 곳으로 숨어서, 더 나쁜 방식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밤이 되자, 그는 또 잠들기를 두려워했다. 잠이 들면, 꿈이 계속될까 봐.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잠이 들지 못해서 생길 피로였다. 피로는 생각을 과장시키고, 불안을 확대한다. 그는 결국 억지로 불을 끄고 누웠다.
이번 꿈은 더 가까웠다. 마치 첫 꿈이 “예고편”이었다면, 두 번째 꿈은 “본편”이었다. 그는 흔들림을 느꼈다. 진짜 흔들림이었다. 침대가 아니라, 땅이 움직였다. 벽에 걸린 액자가 흔들리고, 책이 쏟아졌다. 그는 “여긴 어디지?”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완성되기도 전에 소리가 밀려왔다. 도시의 알람 소리, 사람들의 비명, 유리 깨지는 소리. 그리고 또다시 떠오르는 날짜, 2025. 12. 24.
꿈속에서 그는 일본의 어느 항구 도시에 있었다. 간판의 글씨가 일본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그 글씨를 읽지 못하면서도 ‘의미’를 알았다. ‘역’, ‘병원’, ‘대피소’. 꿈의 논리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현실을 비틀어, 이해를 강요한다. 그는 사람들 틈에 섞여 뛰었다. 누군가의 팔이 스쳤고, 누군가의 아이가 울었다. 그는 그 아이를 한 번 쳐다봤는데, 그 눈빛이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그 눈빛 속에는 공포뿐만 아니라, 어떤 질문이 있었다.
“왜 미리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지훈은 꿈에서 깨어나, 한동안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다.
“이건 내가 일본 관련 뉴스를 봤기 때문일 거야. 다큐멘터리에서 지진 장면을 봤겠지. 내 뇌가 그걸 재조합한 거야.”
하지만 반론이 즉시 따라왔다.
“그럼 왜 하필 날짜가 이렇게 선명해?”
그는 검색을 했다. ‘일본 지진 예언 꿈’ 같은 단어를 쳤다. 결과는 끝없이 나왔다. 누군가는 “나는 이런 꿈을 꾸고 실제로 맞았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사람은 불안을 예언처럼 느낀다”고 설명했다. 지훈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인터넷은 위로가 아니라 증폭기였다. 확신을 주는 글과 부정하는 글이 동시에 존재할 때, 사람은 자기가 두려워하는 쪽을 더 크게 읽는다.
그는 노트북을 덮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할지조차 흔들렸다. 결국 지훈은 자기 방식대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믿지 않을 거야.”
믿지 않는다는 결심은, 지훈에게는 ‘평소대로 살아가는 기술’이었다. 세상에는 불확실한 일이 너무 많다. 매일 아침 뉴스는 위험을 말하고, 통계는 확률을 말한다. 사람은 그 모든 것을 다 믿고 살 수 없다. 다 믿어버리면 하루도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정도는 무뎌져야 한다. 지훈은 그 무뎌짐을 “현실감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현실감각으로, 꿈을 눌러버리려 했다.
그러나 꿈은 눌린 채로 조용히 있기만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자, 지훈은 뜻밖의 순간에 날짜가 떠오르는 걸 경험했다. 편의점에서 영수증을 받는 순간, 지하철 전광판의 숫자를 보는 순간, 누군가가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말하는 순간. 12월 24일은 원래도 흔한 날짜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머릿속에서 “사건”의 표지판이 되었다. 아무 의미 없는 달력이, 갑자기 돌덩이가 되어 가슴에 올려앉았다.
지훈은 자신이 이 날짜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특별하게 만들지 않으면, 두려워할 이유도 없어질 텐데, 그는 오히려 그 날짜를 피해 다녔다. 피하는 순간, 그 날짜는 더 커졌다. 그는 그런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더 강하게 부정했다.
“나는 믿지 않아. 내가 믿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이 말은 논리라기보다 주문에 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지훈은 우연히 지하철에서 한 장면을 보았다. 어떤 노인이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핸드폰 화면에 일본 뉴스 영상이 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아나운서는 ‘재난 대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지훈은 그 장면을 몇 초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는 급히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귀는 들었다. 일본, 지진, 대비, 경고. 단어들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와, 꿈의 장면들과 얽혔다.
그날 밤, 꿈은 또 왔다. 이번에는 흔들림이 아니라, ‘정적’이 먼저였다. 재난이 오기 전의 정적. 바람이 멈추고, 공기가 무거워지는 느낌. 꿈속에서 지훈은 도쿄의 높은 빌딩 숲 사이를 걸었다. 사람들은 평소처럼 바빴다. 커피를 들고, 이어폰을 꽂고, 웃으며 지나갔다. 지훈은 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조심하세요.”
“오늘은 조심해야 해요.”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꿈은 그에게 ‘영웅’이 되라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꿈은 그에게 ‘목격자’가 되라고, 혹은 ‘죄책감’을 준비하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깨어난 지훈은, 자신이 점점 ‘믿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인정했다. 믿지 않기 위해 애쓴다는 것은, 사실 믿음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완전히 믿지 않는 사람은 애쓰지 않는다. 애씀은 곧, 균열이다.
그는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해결책이란 게 있을까. 만약 꿈이 틀리면? 그는 괜히 스스로를 괴롭힌 것이 된다. 만약 꿈이 맞으면?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앞으로 평생을 물어뜯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지훈은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지훈은 ‘가장 지훈다운 방식’을 택했다. 거창한 경고도, 드라마틱한 행동도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작은 움직임. 그는 일본에 사는 대학 동기, 유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유나는 몇 년 전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현지 회사에 취업해 정착한 친구였다. 지훈은 메시지를 쓰면서도 손이 떨렸다. ‘꿈 얘기’는 꺼내지 말자. 꺼내는 순간, 스스로를 미신에 가두게 될 것 같았다. 그는 문장을 바꿨다.
“유나야, 요즘 지진 대비 같은 거 잘 하고 있어? 그냥 겨울이라 이런저런 재난 대비 생각나서. 물이나 비상식량 같은 거 챙겨두면 좋다더라.”
보내고 나서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이건 너무 애매했다. 꿈에서 본 날짜를 말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말하면, 유나가 불안해할 수 있다. 지훈은 ‘타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죄’도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애매함 속에 스스로를 숨겼다.
유나는 한참 뒤에 답했다.
“응 걱정마 ㅋㅋ 여기 회사에서도 훈련 자주 해. 너도 한국에서 겨울 감기 조심해.”
지훈은 웃어야 했다. 웃지 않으면, 뭔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는 “그래”라고 답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했다.
“됐어. 이 정도면 됐어.”
하지만 ‘이 정도면 됐어’라는 말은, 끝내지 못한 문장처럼 허공에 남았다. 꿈은 끝나지 않았다. 날짜는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훈은 자신의 감각이 변하는 걸 느꼈다.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것들이, 갑자기 의미를 띠었다. 사람들의 표정, 뉴스의 단어, 달력의 페이지. 모든 것이 “징조”처럼 보이는 위험한 단계. 그는 그 단계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현실의 디테일을 붙잡았다. 밥을 먹을 때는 맛을 세세하게 느끼려 했다. 길을 걸을 때는 발바닥의 압력을 확인했다. 공부할 때는 글자 하나하나를 따라갔다. ‘현재’에 머무르는 훈련.
그러나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현재는 얇아졌다. 오늘이 12월이면, 내일은 더 가까운 12월이고, 그다음은 더 가까운 12월이다. 달력은 친절하게도 그에게 남은 시간을 보여주었다. 그는 달력을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세상은 달력으로 굴러간다. 광고도, 약속도, 연말도, “크리스마스 이브”도. 날짜는 도망칠 수 없는 구조물이었다.
12월 중순 어느 날, 지훈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지진’이라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버릴지였다. 꿈이 틀리면 그는 우스운 사람이 된다. 꿈이 맞으면 그는 죄책감을 가진 사람이 된다. 어느 쪽이든, 그는 지금의 ‘평범한 지훈’으로 돌아갈 수 없다. 꿈은 재난의 예고라기보다, 정체성의 균열이었다.
그날 밤, 그는 거울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
거울 속의 얼굴은, 평범하다는 말과 달리 지쳐 있었다. 눈 밑이 어두웠고, 입술이 건조했다. 그는 자신이 이런 상태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는 게 우스웠다. 세상은 반짝이는 장식으로 연말을 칠하는데, 그는 머릿속에서 무너지는 장면을 반복 재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24일이 왔다.
그날 아침 지훈은 눈을 뜨자마자, “오늘”이라는 단어가 칼처럼 느껴지는 걸 경험했다. 오늘. 오늘이라는 말은 원래도 무거울 수 있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기다리던 약속이 있을 때. 하지만 지훈에게 오늘은, 꿈이 현실을 덮어씌우려는 날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이불 속은 따뜻했지만, 따뜻함이 오히려 불안했다. 이런 따뜻함이, 언제든 깨질 수 있는 막처럼 느껴졌다.
그는 물을 마시고, 세수를 하고, 옷을 입었다. 모든 행동을 ‘평소처럼’ 하려고 했다. 평소처럼을 반복하면, 오늘도 평소처럼 끝날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는 일부러 평소보다 더 사소한 일들을 챙겼다. 컵을 헹구고, 쓰레기를 버리고, 책상 위를 정리했다. 정리하는 손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리듬이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그는 자신이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방 안에 있으면, 모든 소리가 ‘징조’가 된다. 냉장고 소리도, 위층 발걸음도, 창문 흔들림도. 그는 차라리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 자신이 혼자 미쳐가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지훈은 카페에 갔다. 연말이라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커플도 있었고, 가족도 있었고, 혼자 노트북을 켜놓은 사람도 있었다. 그는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종이컵이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손끝에서 심장까지 천천히 퍼졌다. 그는 주변의 대화를 흘려들었다.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
“선물 샀어?”
“눈 올까?”
평범한 문장들이, 이상할 정도로 소중하게 들렸다.
지훈은 그 평범함을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휴대폰을 꺼내 유나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낼까 고민했다.
“오늘 괜찮아?”
하지만 그 문장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유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건 싫었다. 결국 그는 메시지를 쓰다 지웠다. 그리고 또 자신에게 말했다.
“믿지 말자.”
그 순간, 카페의 스피커에서 캐럴이 흘러나왔다. 밝은 멜로디. 사람들은 웃었다. 지훈도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마치 얼굴 근육을 ‘연습’하는 사람처럼. 그러다 문득, 카페의 유리창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린 것 같았다. 혹은 그가 그렇게 느낀 것뿐일 수도 있었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그는 귀를 세웠다. 주변은 그대로였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커피 머신은 여전히 소리를 냈고, 사람들은 여전히 대화했다. 지훈은 자신이 과민하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사소한 흔들림에도 반응하는 내가 싫어.’ 그는 컵을 꽉 쥐었다. 손가락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유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지훈아, 오늘 갑자기 너 생각나서. 별일 없지? 나도 잘 지내.”
지훈은 화면을 바라보며, 잠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유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감’으로 무언가를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지훈은 답장을 하려다 멈췄다. 꿈을 말하면 유나는 불안해할 것이다. 꿈을 말하지 않으면, 그는 혼자 무거워질 것이다. 그는 결국 가장 안전한 문장을 보냈다.
“나도 잘 지내. 연말이라 괜히 생각이 많네. 너도 건강 챙겨.”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지훈은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은, 안도라기보다 포기였다. 그는 자신이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꿈이 진짜든 아니든, 그는 자기 한계 안에서만 움직일 것이다. 그게 지훈이라는 사람의 방식이었다.
해가 지고, 밤이 왔다. 지훈은 집으로 돌아왔다. 창문 밖에는 도시의 불빛이 반짝였다. 그는 불을 켜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을까.”
그때 아주 멀리서, 낮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트럭 소리 같았다. 아니면 지하 공사 소리. 겨울의 도시는 늘 어딘가에서 울린다. 하지만 이번 소리는, 그의 몸속에서 먼저 반응했다. 꿈이 반응했다. 날짜가 반응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바닥에 손을 댔다. 바닥은 차가웠고,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훈은 그 순간, 이상하게도 공포보다 ‘확인’의 감각을 느꼈다.
“아.”
숨이 새어 나왔다. 꿈이 맞았다는 확신이 아니라, ‘꿈이 내 삶을 끝까지 따라왔구나’라는 체념. 그는 창밖을 봤다. 도시의 불빛은 그대로였다.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아직은.
그는 휴대폰을 들었다. 유나에게 전화를 걸까. 하지만 손가락이 멈췄다. 그는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가장 인간적인 질문을 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면, 덜 후회할까.”
그리고 그는 결국, 아주 작은 행동을 했다. 유나에게 ‘그냥’ 전화를 걸었다. 예언도, 공포도, 날짜도 말하지 않은 채로. 단지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연결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유나가 받았다.
“어? 지훈아?”
지훈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유나의 목소리가 너무 평범해서, 그것이 오히려 가슴을 찔렀다. 그는 겨우 말했다.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유나는 웃었다.
“뭐야, 갑자기? 너도 로맨틱해졌네.”
지훈도 웃었다. 억지 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에 가까웠다. 웃음은 불안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라, 불안을 잠시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장치였다. 그는 그 장치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 웃음 사이로, 바닥의 떨림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지훈은 유나에게 말했다.
“혹시… 오늘은 집에 좀 일찍 들어가.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유나는 잠깐 멈추더니 말했다.
“응? 무슨 일 있어?”
지훈은 “아니야”라고 말하려다, 문장을 바꿨다. “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데… 그냥, 오늘은 조심해. 진짜로.”
유나는 잠시 조용했다가, 낮게 “알겠어”라고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농담이 없었다. 사람은 누군가가 진심으로 떨고 있다는 걸, 말보다 먼저 알아차린다. 유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지훈은 그걸 느꼈다.
통화가 끝난 뒤, 지훈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이 ‘예지’를 믿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후회를 줄이기 위해 움직인 사람일 뿐이었다. 후회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말을 건넨 사람.
그리고 그때, 도시의 어딘가에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꿈과 똑같지는 않았다. 꿈은 언제나 과장된다. 하지만 현실의 경보는, 과장되지 않아서 더 무서웠다. 너무 단순한 소리, 너무 명확한 신호. 지훈은 소파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었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과, 밖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멈췄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오늘이 어떤 날이든, 인간은 결국 ‘선택’ 속에서 흔들린다. 꿈이 우리를 흔들어도, 현실이 우리를 흔들어도, 우리는 흔들리는 중에 결정을 내린다. 지훈은 문고리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마치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기 전처럼.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훈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미 일어났다. 그는 여전히 꿈을 믿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아주 작은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믿음과 부정 사이에서, 그는 “인간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그가 두려워하던 ‘영웅’이 아니라, 그가 원하던 ‘평범한 사람’의 방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지훈은 자신에게 속삭였다.
“나는 믿지 않으려 했어. 그런데도, 너를 지키고 싶었어.”
바깥의 경보는 계속 울렸다. 하지만 지훈의 목소리는, 그 경보보다 작아도 더 오래 남았다.
참고: 위 내용은 현실의 특정 사건을 예측하거나 사실로 주장하는 글이 아니라, ‘예지몽을 꾼 청년이 믿지 않으려는 심리’에 초점을 둔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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