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망해서 컵라면 먹던 30대, '비누 거품' 하나로 인생 역전하다
그날의 공기는 이상하게 가벼웠다. 학교가 끝나고, 교복 상의의 단추를 하나 풀어 헤치고, 신발 끈을 느슨하게 매고, 친구들과 골목을 걸을 때의 기분은 마치 세상이 우리에게 아무 책임도 요구하지 않는 듯했다. 그 나이엔 무언가를 잃어야만 배우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잃기 전엔, 잃는다는 말 자체가 남의 일처럼 들린다.
민준은 그 가벼움에 익숙해져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편도, 문제를 일으키는 편도 아니었다. 선생님들의 기억 속에 남을 만큼 특별히 성실하지도, 특별히 거칠지도 않았다. 그저 교실의 가운데쯤에서, 존재감이 너무 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위치에서 하루를 보내는 학생이었다. 집에서는 “크게 말썽만 안 피우면 된다”는 말이 가장 자주 들려왔다. 그 말은 축복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경계선 밖으로 조금만 걸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는 착각을 심어 주기도 했다.
사건은 거창하지 않았다. 시작은 늘 그렇듯, 아주 작은 말에서 출발했다.
“야, 그거 할 수 있냐?”
누군가가 툭 던진 말. 도전이라기보다 조롱에 가까운 말. 민준은 웃었다. 웃는 얼굴은 진짜 감정을 숨기기에 가장 쉬운 가면이었다. 속에서는 얇은 불이 붙고 있었다. 할 수 있냐는 말은 곧
“너는 못 하지?”
로 번역되어 가슴 안에서 웅웅거렸다.
그날 친구들은 동네 편의점 앞에 모였다. 여느 때처럼 라면과 탄산음료, 값싼 과자를 집어 들고, 계산대 옆에서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민준은 선반 위의 작은 물건을 봤다. 손바닥만 한 전자기기 액세서리였다. 딱히 필요하지도, 갖고 싶지도 않은 물건이었다. 그런데도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나도 할 수 있다”는 증명처럼 느껴졌다.
친구 한 명이 말했다.
“저런 거, 그냥… 슬쩍 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 말이 공중에서 잠깐 떠돌다가, 웃음 속으로 섞였다. 민준은 ‘설마’ 하고 생각했다. 설마가 사람을 가장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줄도 모르고. 또 다른 친구가 가볍게 말을 보탰다.
“한 번쯤은 다 그러는 거야. 걸리면 운이 없는 거고.”
그 순간 민준의 머릿속에서, ‘운’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커졌다. 죄와 책임은 작아지고, 운과 게임 같은 느낌이 커졌다. 그리고 어리석은 확신이 뒤따랐다. ‘나는 안 걸릴 거야.’ 그 확신은 근거가 없었지만, 근거 없는 확신이 가장 위험했다.
민준은 물건을 손에 쥐고, 주머니에 넣었다. 숨이 멎을 만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은 이후 긴 시간의 호흡을 바꿔 놓았다. 문을 나서기까지, 그는 자신이 배우가 된 것처럼 걸었다.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평소와 같은 속도로.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그리고 문을 나서는 순간, 편의점의 작은 벨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학생.”
민준의 걸음이 멈췄다. 뒤에서 들린 목소리는 크게 화가 난 목소리도 아니었고, 소리치거나 욕설을 내뱉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더 무서웠다. 민준은 천천히 돌아섰다. 점주가 계산대 밖으로 나와 있었다. 손에는 작은 화면이 켜진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CCTV 화면이 민준의 손을 확대해 보여주고 있었다. 그 화면 속 손은 낯설었다. 그것은 민준의 손인데도, 민준의 손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이었다. 남의 것을 남의 주머니로 옮기는 손.
“꺼내.”
점주의 말은 짧았고, 민준의 얼굴은 길게 굳었다. 친구들은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는 웃음을 지우지 못한 채, 누군가는 “그냥 장난인데요” 같은 말을 꺼냈다가 점주의 눈빛에 눌려 입을 다물었다. 민준은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냈다. 손끝이 떨려서 물건이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
그 뒤의 과정은 빠르고 잔인했다. 경찰이 오고, 부모가 오고, 민준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점주의 목소리는 계속 낮았지만, 낮은 목소리는 그의 얼굴에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학생, 이런 거 한 번이 아니지?”
점주는 그렇게 물었다. 민준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아니’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이 진짜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되어 있었다. 딱 한 번이었어도, 그 한 번은 충분했다.
부모의 얼굴은 더 무서웠다. 화가 난 얼굴도, 울부짖는 얼굴도 아니었다. 그날 민준이 본 것은,
“내가 너를 어떻게 믿어야 하니”
라는 질문이 눈동자에 떠 있는 얼굴이었다. 믿음이 무너질 때 사람의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민준은 그 얼굴을 오래 기억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표정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그날 배웠다.
처분은 ‘미성년’이라는 단어의 보호를 받는 형태로 정리되었지만, 민준의 마음은 보호받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조용히 소문이 났다. 누군가는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시선이 달라졌다. 같은 반의 공기 속에 얇은 벽이 생겨났다. 민준은 복도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먼저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는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 생기면 마음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그 다음 몸이 따라 숙인다.
그는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수십 번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그러나 맹세가 죄를 지우지는 못한다. 사과가 용서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민준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었다. 끝은, 그 말을 한 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었다.
시간은 흘렀고, 민준은 성인이 되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자주 과거를 떠올렸다. 사람들은 성인이 되면 과거가 저절로 작아질 거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민준에게 과거는 작아지지 않았다. 다만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가라앉은 것은 보이지 않지만, 밟으면 느껴진다. 마음속 바닥을 디딜 때마다, 그날의 감각이 발바닥처럼 전해졌다.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그는 자신을 쉽게 믿지 못했다. 누군가가 친절하게 다가오면, 민준은 속으로 먼저 계산했다. ‘저 사람은 내 안의 무엇을 보게 될까.’ 그래서 그는 사람들과 조금씩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웠다. 가까워지기 전에 물러서는 법. 들키기 전에 숨는 법. 그러나 숨는다고 해서 죄책감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숨을수록, 죄책감은 더 선명해졌다. 민준은 언젠가부터 “착하게 살아야지”가 아니라 “나쁜 사람은 아니어야지”라는 기준으로 하루를 살아갔다. 기준이 낮아질수록 삶은 안전해지지만, 동시에 삶은 좁아진다.
그가 처음 취업을 준비할 때, 서류의 질문들이 날카롭게 보였다. “범죄 경력 유무.” “징계 사실.” “사회적 물의 여부.” 문장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느껴졌다. 사실대로 적어야 한다는 생각과, 적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 것 같다는 공포가 동시에 올라왔다. 민준은 한참을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다가, 결국 노트북을 닫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민준은 오랜만에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전처럼 화가 나거나, 꾸짖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부모는 침묵 속에서 그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한 문장만 말했다.
“네가 네 잘못을 들고 살면, 그건 네가 갚아야 할 빚이 되는 거야. 근데 빚은… 갚으려고 들고 다녀야지, 숨기려고 들고 다니면 더 무거워져.”
그 말은 민준에게 조금 늦은 지도를 건네주었다. 지도는 길을 대신 걸어주지 않지만, 적어도 방향은 알려준다. 민준은 그날 이후로 ‘숨기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에게 과거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내가 알아도 괜찮은 것’으로 만드는 방법. 과거가 나를 정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방법.
민준이 선택한 첫 번째 일은 ‘봉사’였다. 흔한 선택처럼 보였지만, 그에게 봉사는 처벌이 아니라 훈련이었다. 다시는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훈련. 그는 청소년 상담 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표정이 빠르게 변했다. 방어가 빠르고, 말이 거칠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민준은 그 아이들을 보며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던 시절. 그래서 더 큰 소리로 웃고, 더 무심한 척했던 시절.
어느 날 한 아이가 말했다.
“형, 난 어차피 끝났어. 한 번 찍히면 끝이야.”
민준은 그 말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예전의 자신이 스무 살의 자신에게 보내는 말 같았다. 민준은 쉽게 “아니야”라고 말하지 못했다. 세상은 종종 한 번 찍힌 사람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한다고 해서 희망을 빼앗아도 되는 건 아니었다.
민준은 조용히 말했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진짜 끝이 돼. 근데… 끝난 게 아니라, 오래 걸리는 거일 수도 있어.”
아이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흔들림은 변화의 작은 징후다. 민준은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구를 바꾸려 하기보다, 누군가가 바뀔 수 있도록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방식의 사과였다. 누군가의 삶에서, “한 번”이 “평생”이 되지 않도록 돕는 일. 민준은 그 일에 자신의 시간을 조금씩 건넸다.
그러면서도 민준은 자신이 가끔 위선자처럼 느껴졌다. ‘내가 누구를 도울 자격이 있나.’ 그 질문이 밤마다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점점 알게 되었다. 자격이 있어서 돕는 게 아니라,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 더 조심스럽게 돕는다는 것을. 더 조심스러움이 더 진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회에 나가 직장을 얻었을 때, 그는 여전히 떨렸다. 면접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뭐냐”는 질문이 나오면, 그는 늘 다른 대답을 했다. “마감에 늦었던 경험”이라든지, “팀 프로젝트에서 소통이 부족했던 경험” 같은 대답. 거짓은 아니었지만, 가장 중요한 진실을 비켜가는 대답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자주 자신을 책망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
그러던 어느 해, 그는 작은 회사의 면접을 보게 되었고, 면접관은 뜻밖에도
“혹시 인생에서 한 번 크게 넘어져 본 적이 있냐”
고 물었다. 질문은 가벼웠지만, 민준의 마음에는 무게가 실렸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세한 사건을 나열하지는 않았다. 다만
“청소년기에 충동적인 선택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이 있고, 그 이후로 책임을 배우며 살아왔다”
고. 면접관은 표정을 크게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민준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경험이 지금의 당신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그날 민준은 처음으로 ‘고백이 무조건 파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물론 세상은 여전히 냉정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문이 닫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민준은 알았다. 중요한 건 문이 닫힐까 두려워 도망치는 게 아니라, 닫힌 문 앞에서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을.
직장 생활은 민준에게 또 다른 시험이었다. 돈을 벌고, 책임을 지고,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노력은 “믿음을 쌓는 일”이었다. 그는 약속 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작은 약속까지도. 누군가가 부탁한 일을 대충 넘기지 않았다.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 뒤에서 비웃는 대신 앞에서 조심스럽게 말하는 쪽을 선택했다. 사람들은 그를 “성실하다”고 불렀다. 민준은 그 말이 기쁘기도 했지만, 가끔은 무거웠다. 성실은 칭찬이지만, 민준에게는 속죄의 다른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실만으로 사과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그 편의점이 있던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 길을 피했다. 피하는 것은 쉬웠고, 마주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런데 그날은 발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마치 마음이 “이제는 가도 된다”고 허락한 것 같았다.
편의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간판은 바뀌어 있었다. 점주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민준은 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그 벨소리가 다시 들릴까 봐, 아직도 겁이 났다. 하지만 그는 문을 열었다. 벨소리는 예전처럼 울렸지만, 이번에는 그 소리가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진열대의 배치가 바뀌어 있었고, 냉장고의 음료들도 달라져 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바뀌는데, 마음만 옛날에 붙어 있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민준은 그때 새삼 깨달았다.
민준은 계산대에서 물건을 하나 샀다. 아주 평범한 물건. 필요해서 산 물건. 그는 돈을 내고 영수증을 받았다. 그리고 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나는 이제… 도망치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가, 그날의 작은 승리였다. 큰 사과는 큰 말이 아니라, 큰 도망을 멈추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는 알게 되었다.
민준의 삶이 갑자기 빛나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가끔 과거를 떠올리고, 가끔 자기혐오에 빠지고, 가끔은 “내가 정말 달라졌나”를 의심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 의심이 찾아올 때마다,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했고, 실수했을 때는 숨지 않고 인정했다. 인정은 자존심을 깎아내리지만, 동시에 자존심이 아닌 자존의 뼈대를 세운다. 민준은 천천히 그 뼈대를 쌓아갔다.
몇 년 뒤, 민준은 상담 센터에서 알던 아이 중 한 명에게 연락을 받았다.
“형, 나 취업했어.”
짧은 메시지였다. 그런데 민준은 한참 그 메시지를 바라보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유혹을 견뎠는지, 얼마나 많은 밤을 지나왔는지 그는 다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메시지 하나로 충분했다. 누군가의 ‘한 번’을 ‘평생’으로 만들지 않는 데, 자신이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했다는 사실. 그게 민준에게는 가장 오래된 사과의 일부가 되어 주었다.
민준은 어느 순간부터 “용서받기”보다 “다시 해치지 않기”를 목표로 삼았다. 용서는 타인의 영역이고, 다짐은 자신의 영역이었다. 그 경계를 인정하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는 점점 알게 되었다. 과거를 지우려고 애쓰면 과거가 더 선명해진다. 대신 과거를 인정하고, 그 과거 위에 다른 선택들을 차곡차곡 얹으면, 과거는 ‘기억’이 되지 ‘감옥’이 되지 않는다.
가끔 민준은 청소년 시절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상상을 했다.
“그때 너는 멍청했고, 겁이 없었고, 인정받고 싶어서 무리했지. 그런데 나는 지금, 네가 남긴 상처를 보며 살고 있어. 그리고 너를 미워하는 날도 있고, 이해하려는 날도 있어. 한 가지는 말해줄게. 너는 끝나지 않았고, 다만 오래 걸렸어. 너의 한 번은, 나의 평생이 될 뻔했지만… 나는 그것을 평생의 방향으로 바꾸려 한다.”
그 편지는 실제로 쓰이지 않았지만, 민준의 마음속에는 늘 존재했다. 그는 그 편지를 가끔 꺼내 읽는 사람처럼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편지의 문장이 조금씩 바뀌었다. “나는 너를 용서했다”는 문장이 아니라,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가장 나은 어른이 되려고 한다”는 문장으로.
민준은 깨달았다. 사과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청소년기의 한순간이 사람을 망칠 수도 있지만, 같은 한순간이 사람을 단단하게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중요한 건 실수가 없느냐가 아니라, 실수 이후에 어떤 사람이 되느냐였다. 그리고 민준은, 매일 아주 작은 결정을 통해 그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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