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망해서 컵라면 먹던 30대, '비누 거품' 하나로 인생 역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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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비누 거품 속에서 다시 희망을 쏘아 올린 한 청년의 인생 역전 드라마를 작성해 드립니다. MZ세대의 감각과 끈기로 세차장 사장님이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마스크 뒤에 감춰진 눈물, 그리고 비누 거품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상처를 딛고 일어선, 우리 주변의 청년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한때는 잘나가는 스타트업 대표를 꿈꿨으나, 바이러스라는 불가항력 앞에 모든 것을 잃고 신용불량자 직전까지 몰렸던 31세 청년 '준호' 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손이 거친 타이어를 만지며 어떻게 다시 빛나게 되었는지, 그 치열했던 3년의 기록을 시작합니다. 화려했던 오픈, 그리고 예고 없던 폐업 통보 2019년 겨울, 준호 씨는 부모님의 도움과 대출을 끌어모아 홍대 인근에 퓨전 요리 주점을 열었습니다.  인스타그램 감성을 자극하는 인테리어와 독특한 메뉴 덕분에 오픈 초기에는 웨이팅이 생길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나도 이제 영 앤 리치(Young & Rich)가 될 수 있겠다" 는 꿈에 부풀어 있었죠. 하지만 그 꿈은 단 3개월 만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코로나19가 터졌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녁 9시 영업 제한, 5인 이상 집합 금지. 술장사를 하는 그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월세 400만 원은 고스란히 빚이 되어 쌓였고, 아르바이트생들을 내보내고 혼자 주방을 지켰지만, 하루 매출 0원을 찍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결국 준호 씨는 1년 만에 권리금은커녕 원상복구 비용까지 빚을 지고 가게를 폐업해야 했습니다. 한순간에 떨어진 나락, 컵라면과 배달 대행 가게를 정리하고 남은 건 1억 원이 넘는 빚과 패배감뿐이었습니다. 준호 씨는 보증금을 뺀 돈으로 신림동의 2평 남짓한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한때 '사장님' 소리를 듣던 그는 이제 배달 대행 오토바이를 타는 라이...

식탁 위의 스크롤

식탁 위의 스크롤
식탁 위의 스크롤

십대 소녀의 SNS 중독으로 집 안의 공기가 바뀌어버린 밤들, 그리고 다시 숨을 고르는 가족의 이야기.

가족
십대
SNS 중독
회복
저녁 식탁에 앉아 있지만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는 가족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이미지

밥을 다 차렸다는 말이 두 번, 세 번 반복되었을 때도 민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는 들렸지만, 그 소리마저 어딘가 멀리서 울리는 것 같았다. 민지의 두 손은 식탁 아래에서 작은 화면을 감싸 쥔 채였다. 엄지손가락이 위로, 아래로, 다시 위로 움직일 때마다 민지의 표정은 아주 미세하게 바뀌었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데도 얼굴에는 파도가 스쳐 지나가듯 긴장과 안도가 교대로 떠올랐다.

엄마는 국을 한 숟갈 뜨다가 멈췄다. “민지야, 밥 먹을 때는…” 말을 시작했지만 끝을 맺지 못했다. ‘휴대폰 내려놓자’라는 문장은 너무 많이 말해버린 문장이라 공기 속에서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엄마는 그 말을 붙잡아 다시 세우려다가, 또 다른 말이 입 안에서 부딪혀 깨지는 걸 느꼈다. “밥이 식겠다.” 결국 나온 건 그런 말이었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민지 앞에 김치를 놓았다. 김치 접시가 민지의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은 듯했다. 아빠는 젓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집 안에서 가장 큰 소리가 ‘스크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민지의 손가락은 식탁의 규칙도, 저녁의 온도도, 가족의 눈빛도 무시한 채 계속 움직였다.

민지는 원래 조용한 아이였다. 조용하다는 건 말수가 적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마음속 소리를 혼자 다 처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민지는 “괜찮아요”를 잘 말했고, 그 말이 자주 거짓말이라는 걸 부모는 늦게 배웠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괜찮아요’가 더 빨라졌다. 질문이 오기도 전에 “괜찮아요”가 먼저 나왔다. 괜찮다고 말하는 속도가 빨라진 만큼, 진짜 마음은 더 깊이 숨었다.

처음에는 SNS가 단순한 재미처럼 보였다. 친구들이 올린 사진에 하트를 누르고, 짧은 영상에 웃고, 새로운 유행어를 따라 하며 민지는 또래들과 같은 속도로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도 아빠도 “요즘 애들 다 그렇지”라는 말로 불안을 달랬다. ‘다 그렇다’는 말은 편리했다. 다 그렇다면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니까. 다 그렇다면 지금 이 불편함도 언젠가 자연스럽게 지나갈 테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민지는 ‘다 그렇다’의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휴대폰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손에 쥐는 물건이 되었고, 잠들기 직전까지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샤워할 때도 욕실 문 밖에 두고, 알림이 울리면 물을 끄고라도 나가 확인했다. “잠깐만”이라는 말이 민지의 생활을 지배했다. 잠깐만, 지금 이것만. 잠깐만, 댓글만. 잠깐만, 다음 영상만. 그리고 그 ‘잠깐’은 늘 한 시간, 두 시간, 밤의 끝까지 늘어졌다.

부모는 종종 “의지 문제”로 단순화하지만, 중독은 습관·보상·불안·관계가 엮인 복합적인 고리로 만들어진다. 민지의 손가락이 붙잡고 있는 건 화면만이 아니라, 화면 너머의 인정과 비교와 두려움일 수도 있었다.

식탁에서 문제가 처음 폭발한 날은, 엄마가 민지의 휴대폰을 조용히 가져갔을 때였다. 엄마는 큰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 큰소리를 내면 아이가 더 멀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조용히, 거의 부탁하듯, 휴대폰을 손에서 빼내어 식탁 위에 올렸다. 그 순간 민지는 숟가락을 놓고 눈을 크게 떴다. 눈동자에 분노가 먼저 차오르고, 그 뒤를 따라 어떤 공포 같은 게 밀려왔다.

“왜 가져가?” 민지의 목소리는 날카롭지 않았는데도 칼처럼 들렸다. 엄마는 “밥 먹을 때만 내려놓자”라고 말했지만 민지는 듣지 않았다. 민지는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엄마가 손을 막자 민지는 의자를 밀치고 일어났다. “내 거잖아!” 그 말에는 소유권을 넘어 생존권 같은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아빠가 그제야 개입했다. “민지야, 엄마 말이…” 아빠의 말은 반쯤만 나왔다. 민지는 “둘 다 똑같아”라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 뒤로, 알림 소리가 없는 정적이 길게 이어졌다. 엄마는 식탁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국은 식었고, 밥은 식어가고, 가족의 말도 식어갔다.

그날 밤 엄마는 민지의 방문 앞에서 몇 번이나 말을 걸까 말까 망설였다. ‘미안하다’고 하면 뭐가 달라질까. ‘이해한다’고 하면 민지는 정말 이해받는다고 느낄까. 엄마는 결국 문 앞에 물 한 컵을 놓고 돌아섰다.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민지가 휴대폰을 다시 손에 쥔 걸 엄마는 알았다. 빛은 따뜻하지 않았고, 오히려 차가운 네온처럼 방 안을 채웠다.

방 안에서 휴대폰 화면 빛에 얼굴이 물드는 청소년의 고립감을 상징하는 이미지

민지는 왜 그렇게까지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을까. 부모는 답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답’은 하나가 아니었다. 민지의 세계는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넓어졌다. 넓어진 만큼 비교할 대상도 늘었다. 친구들의 사진 속 웃음은 늘 완벽했고, 얼굴은 늘 예뻤고, 점심은 늘 맛있어 보였고, 시험은 늘 잘 본 것 같았다. 민지는 그 사진들 뒤에 있는 지루함과 불안과 ‘찍고 지운 수십 장’의 흔적을 보지 못했다. 보이는 건 결과물뿐이었다.

민지는 어느 날부터 자신의 얼굴을 카메라로 보는 시간이 거울을 보는 시간보다 길어졌다. 거울은 가만히 서 있으면 됐지만, 카메라는 각도와 조명과 표정과 필터를 요구했다. 한 장을 올리기 위해 민지는 수십 장을 찍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이렇게 생겼나?”라는 질문이 “내가 이렇게 보여야 하나?”로 바뀌었다. ‘나’는 얼굴이 아니라, 반응이었다. 좋아요 숫자와 댓글의 톤이 ‘나’를 결정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민지는 활발한 편이 아니었다. 말이 많지 않으니 오해도 생겼다. 어떤 친구는 민지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고, 어떤 친구는 민지가 ‘쿨한 척’한다고 말했다. 민지는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 더 많은 말을 해야 했지만, 민지는 말보다 관찰에 익숙한 아이였다. 관찰은 안전했다. 말은 위험했다. 말은 실수할 수 있고, 상처를 줄 수 있고, 돌아오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 민지에게 SNS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의 방식이었다. 하트를 누르면 “나 여기 있어”가 되었고, 스토리를 올리면 “나도 즐거워”가 되었다. 댓글을 달면 “친한 척”이 되었고, DM을 보내면 “마음이 있다”가 되었다. 민지는 점점 ‘직접’ 대신 ‘간접’으로 사람을 만났다. 직접 만남은 얼굴을 마주해야 했고, 침묵이 들키면 민망했다. 간접 만남은 화면 너머라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답장을 늦게 해도, 이모티콘 하나로 감정을 포장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화면의 관계는 달콤한 만큼 잔인했다. 반응이 빠르면 기분이 올라갔다가, 조금만 늦어져도 불안이 내려앉았다. 민지는 알림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알림이 울리지 않을 때도 심장이 빨리 뛰었다. 혹시 내가 뭔가 잘못 올렸나. 혹시 내가 빠진 단체 채팅방이 있나.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나를 이야기하나. ‘혹시’는 끝이 없었다.

부모가 모르는 사이, 민지는 이미 ‘기준’을 외부로 옮겨 놓은 상태였다. 오늘 하루가 괜찮은지 아닌지는 민지의 마음이 아니라, 타인의 반응이 결정했다. 그래서 밥을 먹는 순간에도 민지는 확인해야 했다. 내가 지금 잊히고 있지 않은지. 내가 지금 뒤처지고 있지 않은지. 내가 지금 ‘있는 사람’인지.

어느 날 아침, 엄마는 민지가 새벽 네 시에 잠든 걸 알았다. 엄마가 화장실을 가다가 민지 방에서 작은 웃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살짝 문을 열어보니 민지는 이불을 반쯤 뒤집어쓴 채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의 빛이 민지의 얼굴에 얼룩처럼 번져 있었다. 민지는 엄마를 보자마자 휴대폰을 뒤집어 숨겼다. “아직 안 자?”라는 질문에 민지는 “이제 자려고”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잠깐만’을 시작했다.

민지가 학교에서 졸기 시작한 건 그 즈음이었다. 아침에 깨우면 “머리 아파” “배 아파” “오늘만 쉬면 안 돼?” 같은 말이 늘었다. 엄마는 처음에 진짜로 아픈 줄 알았다. 병원에 데려가 혈액 검사도 하고, 위장약도 받아왔다. 그런데 검사 결과는 “큰 이상 없음”이었다. 이상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이상이 없는 몸에, 이상이 있는 생활이 붙어 있었다.

민지는 점점 예민해졌다. 작은 소리에도 짜증이 튀어나왔고, 말 한마디에도 눈물이 났다. 엄마가 “숙제 했어?”라고 묻는 질문이 “너는 왜 항상…”으로 들렸고, 아빠가 “너 요즘 괜찮아?”라고 묻는 말이 “너 지금 문제 있어”로 들렸다. 민지는 공격당한다고 느꼈다. 그러니 방어했다. 방어는 다시 공격이 되었고, 집안은 점점 가시가 돋았다.

경고 신호로 부모가 놓치기 쉬운 것들이 있었다. 수면이 무너지고, 식사가 끊기고, 성적이나 집중이 급격히 떨어지고, 짜증과 불안이 늘고, 휴대폰을 빼앗기면 과도한 분노·공포 반응이 나타나는 것. 민지에게는 그 모든 조각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관찰의 포인트는 ‘시간’만이 아니었다. 민지가 휴대폰을 붙잡는 순간의 표정, 놓지 못하게 만드는 특정 상황, 학교에서의 관계 변화, 자기평가(“난 별로야”) 같은 말들이 더 중요한 단서였다.

문제는 ‘혼내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아빠는 어느 저녁, 결국 폭발했다. “폰 그만해! 네 인생이 폰 안에 있냐?” 아빠가 소리를 지르자 민지는 잠시 멈췄다. 멈춘 건 반성이라기보다, 놀람이었다. 그 다음 민지는 더 단단히 화면을 쥐었다. “아빠는 내 인생 몰라.” 민지는 그렇게 말하고 방문을 잠갔다.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아빠의 자존심을 긁었다. 아빠는 문을 두드렸고, 엄마는 아빠를 말렸고, 민지는 안에서 울었다.

민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이 엄마를 무너뜨렸다. 엄마는 문 앞에 앉아 “민지야, 엄마가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민지에게는 또 다른 부담으로 들렸다. 민지는 미안해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인가. 민지는 그저 살아남고 싶은데, 그 방법이 화면뿐이라서. 민지는 그 생각을 말로 꺼내지 못했다. 말로 꺼내면 너무 초라해질 것 같았다.

그날 밤, 엄마는 검색창에 “청소년 SNS 중독”을 입력했다. 수많은 글이 쏟아졌다. 해결책처럼 보이는 문장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엄마는 어떤 문장이 진짜인지 몰랐다. 몰랐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건 ‘민지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족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 민지가 혼자 끌어안은 불안을, 이제 가족이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엄마는 메모장에 한 줄을 썼다. “휴대폰을 빼앗는 게 목적이 아니다. 민지가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그 문장 아래에 또 적었다. “민지를 이기지 말고, 민지와 함께 이길 것.”

학교 복도에서 관계의 불안과 소외감을 느끼는 청소년의 심리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

다음 주,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민지 어머님, 요즘 민지가 수업 시간에 자주 졸고요. 쉬는 시간에도 혼자 휴대폰만 보는 편이에요. 친구들과도 예전보다 거리감이 있어 보여요.” 선생님의 말은 조심스러웠다. 조심스러움은 오히려 더 무거웠다. 엄마는 “집에서도 비슷해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엄마는 마음 한구석이 시원해지는 걸 느꼈다. 드디어 누군가와 함께 보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학교 상담실을 권했다. 엄마는 민지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민지야, 학교에서 상담 한번 받아보면 어때? 혼자 힘들면 어른 도움 받는 것도 괜찮아.” 민지는 처음엔 고개를 저었다. “나 안 힘들어.” 자동반사처럼 튀어나온 문장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더 밀어붙이지 않자, 민지는 잠시 멈칫했다. 엄마가 늘 하던 방식은 ‘설득’이었다. 이번에는 ‘허락’처럼 말했다. “괜찮아. 안 가도 돼. 근데 엄마는 네가 요즘 잠도 못 자고, 밥도 힘들어 보여서 걱정돼.”

민지는 그날 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새벽에, 민지가 엄마 방문 앞에 서 있는 소리가 들렸다. 민지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지만, 엄마는 그 기척을 느꼈다. 엄마가 문을 열자 민지는 “상담… 한 번만”이라고 말했다. 목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그 작은 목소리가 엄마에게는 큰 문처럼 느껴졌다. 닫힌 문이 조금 열린 것 같았다.

상담실의 첫날, 민지는 의자 끝에 앉아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휴대폰은 가방 안에 있었다. 가방 안에 있는 휴대폰이 민지의 몸과 분리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가방 안에서 알림이 울리는 것 같은 환청이 들리는 듯, 민지는 가끔 가방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상담 선생님은 민지에게 묻지 않았다. “왜 폰을 그렇게 해?” 대신 물었다. “요즘 민지 마음이 어떤지, 잠깐 이야기해볼래?”

민지는 처음엔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모른다는 말은 사실 ‘말하고 싶지 않아요’의 다른 표현일 때가 많았다. 선생님은 기다렸다. 기다림은 민지에게 낯선 친절이었다. 집에서는 질문이 오면 답을 해야 했고, 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질문이 왔다. 여기서는 답이 없어도 괜찮았다. 민지는 그 ‘괜찮음’에 조금씩 숨이 트였다.

몇 번의 상담 끝에 민지는 말했다. “제가… 자꾸 뒤처지는 것 같아요.” 그 말은 성적 이야기가 아니었다. 관계 이야기였다. “친구들이 다 뭔가 하고 있는데, 저만 가만히 있으면… 없는 애가 되는 것 같아요.” 민지는 이어서 말했다. “좋아요가 안 눌리면, 내가 진짜 별로인 것 같고… 댓글이 늦으면, 다들 나 싫어하는 것 같고…” 민지는 말을 하다가 웃었다. 웃음은 자조였다. “저도 이런 생각이 이상한 거 알아요. 근데 안 멈춰요.”

선생님은 민지의 말을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생각이 나올 때, 민지 몸은 어떤 느낌이야?”라고 물었다. 민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가슴이 막… 쿵쾅거려요. 손이 저려요. 머리가 하얘져요. 빨리 확인해야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은 그 반응을 “불안”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름이 붙자, 민지에게는 조금 덜 무서워졌다. 괴물 같던 것이, 설명 가능한 것이 됐다.

그날 집에 돌아온 민지는 식탁에 앉았다. 여전히 휴대폰은 옆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휴대폰이 손에 붙어 있지 않았다. 엄마는 그걸 보고 놀라서 괜히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민지는 국을 한 숟갈 떠먹고, 아주 작게 말했다. “엄마. 나… 좀 무서웠던 것 같아.”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다. 눈물은 민지를 다시 부담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엄마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무서웠구나.” 엄마는 ‘왜’라고 묻지 않았다. 민지가 이미 ‘무섭다’고 말한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알 것 같았다. ‘왜’는 나중에 해도 됐다. 지금은 그 말이 사라지지 않게, 조심히 두 손으로 받쳐야 했다.

부모는 그날부터 약속을 바꾸었다. “폰 금지” 같은 전쟁 선포 대신, “같이 연습해보자”로 방향을 틀었다. 아빠는 퇴근 후 민지에게 말했다. “아빠도 요즘 습관이 있어. 퇴근하면 뉴스 계속 보거든. 머리 아픈데도 멈추기 어렵더라. 우리 서로, 조금씩 줄여볼까?” 아빠가 먼저 자기 이야기를 꺼낸 건 처음이었다. 민지는 아빠를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은 ‘동의’라기보다 ‘실험 허락’ 같았다.

가족은 작은 규칙을 만들었다. 이름부터 달랐다. “금지 규칙”이 아니라 “숨 쉬는 규칙.” 식탁에서는 휴대폰을 가운데 바구니에 넣고, 밥을 먹는 20분만 ‘쉬는 시간’으로 두었다. 20분이 끝나면 다시 확인해도 된다고 했다. 엄마는 “안 돼” 대신 “20분만 같이 해보자”라고 말했다. 민지는 처음 며칠은 힘들어했다. 눈이 바구니로 자꾸 갔고, 손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20분이라는 ‘끝이 있는 시간’은 민지가 버틸 수 있는 크기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규칙이 있었다. 부모도 함께 휴대폰을 바구니에 넣었다. 엄마는 메시지가 와도 확인하지 않았다. 아빠는 회사 단톡방이 울려도 “밥 먹고 볼게요”라고 먼저 공지했다. 민지는 부모를 보며 생각했다. ‘나만 참는 게 아니구나.’ 그 생각이 민지의 불안을 조금 덜어주었다. 혼자 참으면 처벌 같지만, 같이 참으면 연습이 된다.

민지는 여전히 밤이 힘들었다. 침대에 누우면, 조용해진 방이 오히려 더 시끄러웠다. 머릿속에서 오늘의 장면들이 재생되고, 친구의 말투가 반복되고, 내 게시물에 달린 반응이 확대되었다. 민지는 그때마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은 빠르게 민지의 머릿속을 덮어주었다. 덮는 것은 해결이 아니라 가림이었지만, 가림이라도 없으면 민지는 견디기 어려웠다.

상담 선생님은 민지에게 “대체 행동”을 제안했다. 휴대폰을 내려놓으라는 말만으로는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고 했다. 빈자리는 또 다른 화면으로 채워질 수 있으니까. 민지는 ‘대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휴대폰을 대체할 무언가가 있을까? 그런데 선생님은 “대체가 아니라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택지가 하나뿐이면 그건 중독이 되기 쉽다. 선택지가 둘, 셋이면 그건 조절이 된다.

민지는 처음으로 ‘선택지’를 적어보았다. 불안이 올라올 때 할 수 있는 것들. 따뜻한 물 마시기. 창문 열고 공기 맡기. 노트에 지금 떠오르는 생각 적기. 1분 스트레칭. 방 안 불을 낮추고 음악 한 곡만 듣기. 민지는 그 목록이 우스워 보였다. 불안이 폭풍인데 물 한 잔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목록을 적는 순간 민지의 불안이 아주 조금 내려갔다. 폭풍 속에 작은 부표 하나를 띄운 느낌이었다.

밤에 불안을 적어 내려가며 마음을 정리하는 기록의 순간을 상징하는 이미지

민지의 변화는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해결이 번쩍하고 나타나길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회복은 아주 지루한 속도로 진행된다. 민지는 어떤 날은 식탁에서 휴대폰을 바구니에 넣고도 마음이 괜찮았고, 어떤 날은 5분도 못 참고 손이 떨렸다. 엄마는 그 편차에 흔들렸다. “나아지는 거 맞나?” 아빠도 속으로 조급했다. 그런데 상담 선생님은 말했다. “이건 계단이 아니라 파도예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평균이 조금씩 올라가는 거예요.”

파도라는 말은 민지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민지는 자신의 실패를 ‘끝’으로 해석하던 습관이 있었다. 오늘 또 새벽까지 봤으니 난 끝이야. 오늘 또 식탁에서 손이 갔으니 난 못 고쳐. 그런데 파도라고 생각하면, 오늘 내려간 건 ‘원래 있는 흐름’이 된다. 내려갔다고 끝난 게 아니다. 다음 파도가 다시 올라올 수도 있다. 그 믿음은 아주 작지만 중요한 차이였다.

부모도 연습했다. 특히 엄마는 “감시”와 “관심”을 구분하는 연습을 했다. 엄마는 민지의 사용 시간을 체크하고 싶어졌다. 스크린타임을 보고, 어떤 앱을 몇 분 썼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게 답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그 행동이 민지를 더 숨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엄마는 숫자 대신 이야기를 묻기로 했다. “오늘은 어떤 영상이 제일 기억나?” “요즘 유행하는 거 뭐야?” 민지는 처음엔 경계했지만, 엄마가 ‘잡아내기’ 위해 묻는 게 아니라 ‘알아보기’ 위해 묻는다는 걸 느끼자 조금씩 이야기했다.

아빠는 ‘권위’ 대신 ‘동맹’을 선택했다. 아빠는 예전엔 규칙을 만들면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민지 문제 앞에서 그 방식은 늘 벽에 부딪혔다. 아빠는 상담실에서 들은 말을 기억했다. “통제는 반발을 낳고, 연결은 변화를 낳는다.” 아빠는 민지에게 가끔 메시지를 보냈다. 길게 쓰지 않았다. “오늘 어땠어.” “배고프면 과일 있어.” “아빠는 네 편이야.” 짧은 문장들이 민지의 마음을 크게 흔들진 않았지만, 어느 날 민지는 답장을 보냈다. “응.” 그 한 글자가 아빠에겐 오래 기다린 문장 같았다.

민지는 어느 날, SNS에서 한 게시물을 보았다. “오늘 너무 우울해서 아무것도 못 했어.” 그 글에는 많은 댓글이 달렸다. “괜찮아.” “힘내.” “너는 최고야.” 민지는 그 댓글들을 보며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부러움이기도 하고, 의심이기도 하고, 외로움이기도 했다. ‘저 사람은 진짜로 우울한 걸까?’ ‘저 댓글들은 진짜로 마음에서 나온 걸까?’ 민지는 처음으로 ‘화면의 진심’에 의문을 품었다. 의문은 작은 틈이었다. 틈이 생기면, 이전처럼 무조건 믿고 매달리기 어렵다.

그날 민지는 상담 선생님에게 말했다. “다들 위로하는데… 가끔은 그게 더 허전해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로가 많은데도 허전할 때가 있지. 그럴 땐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 같이 찾아보자.” 민지는 생각했다. 내가 필요한 위로는 ‘좋아요’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민지는 그 생각을 하고 나서,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좀 얘기해도 돼?”

엄마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손을 닦았다. “응, 들어줄게.” 민지는 소파에 앉아 이야기했다. 친구 관계에서 생긴 오해, 단체 채팅방에서 느낀 소외, 무심코 던진 한마디 때문에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팠던 일. 민지는 말하면서도 중간중간 “내가 너무 예민한가?”라고 물었다. 엄마는 “예민한 게 아니라, 너는 너의 마음을 잘 느끼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이 민지에게는 조금 따뜻했다. ‘내가 고장 난 게 아니라, 느끼는 게 많을 뿐’이라는 해석은 민지를 살렸다.

다음날, 민지는 식탁에서 휴대폰을 바구니에 넣었다. 스스로 넣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도. 민지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웃었다. 엄마가 “왜?”라고 묻자 민지는 말했다. “밥이… 맛있네.” 그 말은 밥이 맛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지금’이 느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민지는 오랜만에 ‘지금’을 입 안에서 굴렸다. 밥의 온도, 김치의 매운맛, 국의 향. 화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작은 회복의 신호는 거창한 “완전 끊기”가 아니었다. 식탁 20분을 버티는 것, 잠들기 전 10분을 줄이는 것, 불안이 올라올 때 “나 지금 불안하네”라고 이름 붙이는 것. 그런 작은 성공이 민지의 자존감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되돌아오는 파도도 있었다. 시험 기간, 친구 갈등, 피곤한 날, 외로움이 크게 올라오는 날. 그때 민지는 다시 화면으로 도망치고 싶어했다. 중요한 건 “그럴 수 있다”는 이해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었다.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 회의를 하기로 했다. 회의라는 말이 딱딱해서 민지는 싫어했지만, 아빠가 이름을 바꿨다. “우리 집 업데이트 시간.” 업데이트 시간에는 누구도 혼내지 않았다. 대신 “이번 주에 뭐가 힘들었는지” “뭐가 조금 나아졌는지” “다음 주에 뭘 해볼지”만 이야기했다. 민지는 그 시간이 어색했지만, 어색함 속에서도 안전함이 있었다. 누군가를 재판하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길을 찾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업데이트 시간에 민지는 말했다. “나… 밤에 제일 힘들어.” 아빠가 “그럼 밤에 뭐가 제일 생각나?”라고 물었다. 민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내가… 별로인 것 같아.” 엄마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부모는 그제야 ‘시간’이 아니라 ‘자기평가’가 핵심이라는 걸 더 분명히 알았다. 민지가 화면에서 찾는 건 재미가 아니라, ‘내가 괜찮다’는 증거였다.

그날 이후 부모는 민지에게 ‘칭찬’보다 ‘사실’을 건네기 시작했다. “너는 최고야” 같은 말은 민지에게 공허했다. 대신 엄마는 말했다. “민지야, 너 오늘 밥 먹는 동안 휴대폰 없이 버텼지. 그게 쉬운 일이 아닌 거 알아.” 아빠는 말했다. “너 오늘 친구랑 힘든 일 있었는데도 학교 갔다 왔네. 그건 용기야.” 민지는 그 말들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지만, 밤에 혼자 있을 때 그 말들이 작은 등불처럼 떠오르는 걸 느꼈다.

민지는 여전히 SNS를 했다. 완전히 끊지 않았다. 끊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민지가 원한 것은 ‘내가 선택한다’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가족이 원한 것도 그 감각이었다. 어느 날 민지는 스스로 알림을 일부 껐다. 모든 알림이 꺼진 건 아니었지만, 몇 개가 줄었다. 민지는 엄마에게 말했다. “나… 알림 줄였어.” 엄마는 크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오, 어떤 거 줄였어?” 민지는 말했다. “댓글 알림. 그거 오면… 계속 보게 돼.” 민지는 자신의 패턴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해는 통제보다 강했다.

어느 겨울 저녁, 가족은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다. 민지는 처음엔 “추워”라고 했지만, 엄마가 장갑을 건네며 “10분만”이라고 말했다. 10분은 민지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밖은 차가웠고, 숨이 하얗게 나왔다. 민지는 길을 걷다가 문득 말했다. “나… 요즘 좀 낫지?” 엄마는 바로 “응!”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응, 너 스스로를 더 잘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 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것 같아.”

집에 돌아와 식탁에 앉았을 때, 민지는 휴대폰을 바구니에 넣고 손을 비볐다. 엄마가 국을 떠주자 민지는 말했다. “엄마, 나 오늘은… 밥 먹고 나서 볼래.” ‘밥 먹고 나서’라는 말이 엄마에게는 기적처럼 들렸다. 민지는 여전히 화면을 좋아했고, 여전히 흔들렸지만, 그 사이에 ‘나중에’가 생겼다. 중독의 세계에는 ‘지금’밖에 없는데, 회복의 세계에는 ‘나중에’가 생긴다. ‘나중에’는 곧 숨이다.

이 이야기는 끝이 아니라, 이어짐이었다. 민지는 앞으로도 흔들릴 것이고, 부모도 앞으로도 실수할 것이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은 하나였다. 민지가 화면에 빨려 들어갈 때, 부모는 이제 “왜 또 그래!”가 아니라 “지금 뭐가 무섭니?”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민지도 “나 괜찮아”로 덮어버리기보다, “나 지금 좀 불안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늘어난다는 것.

식탁 위의 스크롤 소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리만이 집을 지배하던 밤들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식탁에는 다시 숟가락 소리, 물컵 소리, 짧은 대화의 웃음이 돌아왔다. 완벽한 평화는 아니어도, 숨 쉴 틈이 있는 집. 민지에게 그 틈은 너무 중요했다. 그 틈에서 민지는 조금씩, 화면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좋아요’를 눌러볼 수 있게 되었다.

참고 이 글은 가상의 이야기이며, 현실에서 청소년의 사용 문제가 수면·불안·우울·관계 문제와 함께 나타나 일상 기능을 크게 떨어뜨린다면, 학교 상담실/지역 상담기관/의료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회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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