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망해서 컵라면 먹던 30대, '비누 거품' 하나로 인생 역전하다

이미지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비누 거품 속에서 다시 희망을 쏘아 올린 한 청년의 인생 역전 드라마를 작성해 드립니다. MZ세대의 감각과 끈기로 세차장 사장님이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마스크 뒤에 감춰진 눈물, 그리고 비누 거품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상처를 딛고 일어선, 우리 주변의 청년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한때는 잘나가는 스타트업 대표를 꿈꿨으나, 바이러스라는 불가항력 앞에 모든 것을 잃고 신용불량자 직전까지 몰렸던 31세 청년 '준호' 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손이 거친 타이어를 만지며 어떻게 다시 빛나게 되었는지, 그 치열했던 3년의 기록을 시작합니다. 화려했던 오픈, 그리고 예고 없던 폐업 통보 2019년 겨울, 준호 씨는 부모님의 도움과 대출을 끌어모아 홍대 인근에 퓨전 요리 주점을 열었습니다.  인스타그램 감성을 자극하는 인테리어와 독특한 메뉴 덕분에 오픈 초기에는 웨이팅이 생길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나도 이제 영 앤 리치(Young & Rich)가 될 수 있겠다" 는 꿈에 부풀어 있었죠. 하지만 그 꿈은 단 3개월 만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코로나19가 터졌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녁 9시 영업 제한, 5인 이상 집합 금지. 술장사를 하는 그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월세 400만 원은 고스란히 빚이 되어 쌓였고, 아르바이트생들을 내보내고 혼자 주방을 지켰지만, 하루 매출 0원을 찍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결국 준호 씨는 1년 만에 권리금은커녕 원상복구 비용까지 빚을 지고 가게를 폐업해야 했습니다. 한순간에 떨어진 나락, 컵라면과 배달 대행 가게를 정리하고 남은 건 1억 원이 넘는 빚과 패배감뿐이었습니다. 준호 씨는 보증금을 뺀 돈으로 신림동의 2평 남짓한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한때 '사장님' 소리를 듣던 그는 이제 배달 대행 오토바이를 타는 라이...

겨울 끝에서 무너진 오리농장

겨울 끝에서 무너진 오리농장
겨울 끝에서 무너진 오리농장
오리농장 주인이 겨울마다 되풀이되는 두려움을 견디다, 고병원성 조류독감으로 폐사를 겪고 남겨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
눈 내리는 축사 바이러스 공포 소독약 냄새 비어버린 울음

겨울이 오면 나는 먼저 냄새로 계절을 알아챘다. 바람이 차가워진다는 말은 누구나 하지만, 내게 겨울은 손끝이 얼기 전에 코끝에서 시작됐다. 축사 앞에 세워둔 소독발판에서 올라오는 염소 냄새, 방역복에 밴 알코올, 그리고 날이 맑을수록 더 선명해지는 톱밥과 오리 분변이 뒤섞인 냄새. 그 냄새는 늘 비슷했는데, 매년 조금씩 더 날카로워졌다. 마치 겨울이 내게 다가올 때마다 “올해는 괜찮겠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내 농장은 논이 끝나고 낮은 야산이 시작되는 경계에 있었다. 바람이 통하는 자리였다. 여름에는 그 바람이 고마웠다. 축사 안 열기를 빼주고, 습기를 밀어내고, 오리들이 물가에서 털을 말릴 때 살짝 등을 간질였다. 그런데 겨울 바람은 달랐다. 바람이 통한다는 말이 “차가운 공기가 숨어 들어올 틈이 많다”는 뜻이 되었다. 나는 겨울이 되면 바람이 들어오는 구멍을 먼저 찾았다. 판넬 틈, 문 아래, 환기창 모서리. 그리고 그 구멍들보다 더 무서운 구멍이 하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멍. 밖에서 들어오는 병원체가 통과하는 구멍이었다.

겨울 들판과 농장 풍경 랜덤 이미지

나는 오리를 키운 지 십오 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도와 시작했고, 아버지가 허리를 다치고 나서부터는 사실상 내가 농장을 맡았다. 오리는 닭보다 물을 많이 쓰고, 관리가 까다롭다고 했다. 대신 병만 안 나면 출하가 빠르고 회전이 좋았다. 그렇게 사람들은 “병만 안 나면”이라는 말을 아주 쉽게 했다. 그 말 속에는 ‘병이 안 난다’는 전제가 숨겨져 있었고, 나는 그 전제가 얼마나 얇은 막인지 오래전에 깨달았다. 막은 겨울이면 더 얇아졌다.

몇 년 전, 동네 건너 군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터졌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방역을 짓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해 겨울, 내 일과는 오리 먹이 주는 것보다 소독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장화를 갈아신고, 장갑을 갈아끼고, 소독기를 들고, 차를 씻고, 바퀴를 닦고, 사람을 멀리하고, 그럼에도 불안은 닦이지 않았다. 아무리 닦아도 남는 얼룩처럼, 내 마음 한쪽에 ‘혹시’가 붙어 있었다.

“올해는 더 심하다더라.”

“철새가 일찍 내려온대.”

“바람 방향이 안 좋다더라.”

농장 사람들끼리 모이면 대화는 늘 저런 말로 시작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겁주고, 서로를 달래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들을 듣는 게 싫어서 모임을 피했다. 하지만 피한다고 불안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혼자 있으면 불안은 더 커졌다. 소문은 소리처럼 들리지 않을 뿐, 벽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찬 공기처럼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겨울 방역은 “조심”이 아니라 “생활”이 된다. 생활이 되면, 조심은 피로로 바뀐다. 피로는 틈을 만든다.

그해 초겨울, 나는 작은 습관 하나를 바꿨다.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폰을 먼저 확인하지 않던 내가, 가장 먼저 방역 문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몇 건이 왔는지, 우리 군에 발생이 찍혔는지, 인근 시군에 ‘주의’가 내려갔는지. 문자 한 줄에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아무 일 없다는 문자를 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은 놓이지 않았다. ‘아직’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서 반짝였다. 아직 안 터졌을 뿐이라고. 내가 믿고 있는 건 안전이 아니라, 단지 시간이었구나 싶었다.

오리는 소리에 예민하다. 사람 발소리가 가까워지면 일제히 고개를 들고, 낯선 소리가 나면 한쪽으로 몰렸다. 나는 오래 키워서 그런지, 소리만 듣고도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먹이를 뿌릴 때 나는 ‘바삭바삭’한 톱밥 소리 위로 깔리는 ‘후두둑’ 발걸음이 균일하면 괜찮다고 느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축사 안의 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균일하던 발걸음이, 한두 마리씩 흐트러졌다. 마치 누군가 리듬을 놓친 것처럼.

그 변화는 아주 작았고,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그 변화를 크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겨울이 시작되면 나는 잠을 잘 못 잤다. 새벽에 자꾸 깼고, 깨면 축사로 나가고 싶어졌다. ‘확인만 하고 오면 잠이 오겠지.’ 그렇게 몇 번을 나갔다. 손전등으로 오리들의 몸을 비추고, 물통에 얼음이 꼈는지 살피고, 환기창이 제대로 닫혔는지 만졌다. 돌아오면 잠은 오지 않았다. 대신 내 손에 남은 냉기가 마음까지 차갑게 만들었다.

아내는 내 눈 밑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보며 말없이 따뜻한 물을 끓여줬다. 아내는 나보다 말을 적게 했다. 내가 불안한 걸 눈치채면, 불안을 건드리지 않는 쪽을 택했다. “괜찮아?”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대신 “밥 먹어”라고 했다. 밥을 먹으면 몸이 버티니까. 몸이 버티면 마음도 버티니까. 그게 우리가 배운 방식이었다.

밤의 축사와 어둠 속 농장 랜덤 이미지

방역 지침은 매년 더 촘촘해졌다. 출입자 기록, 차량 소독, 외부인 출입 통제, 생석회 도포, 축사 내부 소독, 장화 갈아신기. 나는 지침을 지키는 게 당연해졌고, 지침이 늘어나는 만큼 내 하루는 더 쪼개졌다. 어릴 때부터 농사란 해 뜨기 전에 시작해서 해 지면 끝나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방역이 들어오고부터는 해가 지면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밤에 해야 할 소독이 남았고, 확인해야 할 문자가 남았고, 혹시 모를 일이 남았다.

어느 날은 군청에서 방역 담당자가 왔다. 젊은 사람인데도 얼굴이 초췌했다. 그는 내 농장 앞에서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독 발판부터 밟았다. “사장님, 올해는 진짜 조심하셔야 해요.” 그는 다들 하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조심해도 터질 수 있다’는 무력감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이 싫었다. 내 미래를 그 눈빛에서 본 것 같아서.

“사장님, 철새도래지 쪽에 민원 들어와서요. 농장 주변 물웅덩이 있으면 메워주세요. 새가 앉을 수 있는 데는 최대한 없애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오후 바로 삽을 들었다. 물웅덩이를 메우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땅은 얼기 시작했고, 삽이 잘 박히지 않았다. 내 손바닥은 금방 아팠고, 땀이 났다가 바로 식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메우는 건 물웅덩이일까, 내 불안의 구멍일까. 구멍은 메운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데서 또 생겼다.

며칠 뒤, 이웃 농장 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야, 너네 쪽도 검사 나온대? 우리 어제 샘플 떠갔다.” 형님의 목소리는 낮았고, 낮은 목소리일수록 나는 더 크게 받아들였다. 검사라는 말이 내 가슴을 눌렀다. 검사는 확인이지만, 확인은 기다림을 낳고, 기다림은 상상을 낳았다. 상상은 늘 최악을 향했다. 나는 형님과 짧게 통화하고 전화를 끊은 뒤, 축사로 달려갔다. 오리들의 숨소리, 움직임, 눈빛을 다시 보고 싶었다. 아직은 괜찮다고,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날 밤, 내 농장 위로 바람이 세게 불었다. 바람이 판넬을 흔들면서 ‘덜컹’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에 깼고, 습관처럼 휴대폰을 집었다. 방역 문자는 없었다. 오히려 그게 더 불안했다. 아무 소식이 없다는 건, 내 머릿속이 마음대로 소식을 만들어내도 된다는 뜻이 되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에 가서 물을 마셨다. 창밖을 보니 달이 맑았다. 달빛이 축사 지붕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지붕 아래에서 오리들이 모여 자고 있을 텐데. 그 생각이 내 몸을 다시 밖으로 끌어냈다.

축사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그 순간 잠시 안심이 됐다. 살아있는 것들의 열기는 늘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다. 나는 손전등을 켜지 않고 잠시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오리들이 내 존재를 알아채지 않게, 숨을 조용히 쉬었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소리들은 더 뚜렷했다. 물이 살짝 흔들리는 소리, 깃털이 스치는 소리, 작은 ‘꽥’ 하는 잠꼬대 같은 소리. 나는 그 소리들 사이에 낯선 소리가 있는지 찾았다. 기침 같은 소리, 거친 숨, 무리에서 튀는 소리.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너무 조용했다. 조용함이 오히려 불길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출근하듯 축사로 갔다. 오리들은 먹이를 기다리며 일제히 움직였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 움직이지 않는 몇 마리가 보였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발걸음이 빨라졌고, 손전등을 켜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자, 그 애들은 고개를 들었지만 힘이 없어 보였다. 눈이 반쯤 감겨 있었고, 목이 축 늘어졌다. 나는 손을 뻗어 등을 만졌다. 체온이 평소보다 뜨거운 것 같았다. 뜨거운 게 아니라, 내 손이 차가워서 그렇게 느껴진 걸까 싶었지만, 직감은 내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야. 감기일 수도 있어.”

나는 나 혼자에게 말했다. 오리도 감기가 온다. 환기가 갑자기 안 맞으면 호흡기 문제가 생긴다. 사료가 조금 변하면 설사를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고병원성”이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겨울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단어. 나는 그 단어를 떼어내려고 일부러 다른 일을 했다. 물통을 갈고, 톱밥을 정리하고, 사료를 더 꼼꼼히 확인했다. 그러나 몸은 움직여도 마음은 그 단어에 붙잡혀 있었다.

불안은 늘 ‘한두 마리’에서 시작된다. 한두 마리는 통계로는 작은 숫자지만, 축사 안에서는 예고가 된다.

농장에서는 “괜찮다”는 말이 가장 위험하다. 괜찮다는 말은 확인을 늦추고, 늦어진 확인은 시간을 빼앗는다.

나는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괜히 말해봤자 아내도 불안해질 테니까. 대신 우리 직원에게도 아무 말하지 않고, 혼자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움직이지 않는 오리가 더 늘었다. 이번에는 두 마리가 아니라 열 마리였다. 열 마리라는 숫자는 내 변명을 부쉈다. 나는 축사 바닥에 앉아 한참을 멍하게 그 숫자를 바라봤다. 열 마리. 이틀 만에. 내 머릿속은 차갑게 돌아갔다. ‘신고해야 한다.’ 그 말이 뼈처럼 딱딱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신고는 곧 ‘모든 것의 중단’이라는 뜻이었다. 출하도, 이동도, 거래도. 무엇보다 ‘살처분’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다. 나는 그 단어를 입으로 꺼내본 적이 없었다. 마음속에서만 굴렸고, 굴릴 때마다 혀가 베이는 느낌이 들었다. 살처분. 살아있는 것들을… 나는 그 다음 문장을 끝까지 상상하지 못했다. 상상하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날 오후, 결국 나는 방역 기관에 전화를 걸었다.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이상했다. 내가 이렇게 침착할 수 있나. 아마도 몸이 이미 최악을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전화기 너머의 담당자는 절차를 설명했다. “즉시 출입 통제하시고, 차량 이동 금지하시고요. 샘플 채취팀이 갈 겁니다. 농장 내에서는 다른 축사 이동 최소화하시고…” 그 말들은 지침이었고, 동시에 선고처럼 들렸다.

샘플 채취팀은 다음 날 아침에 도착했다. 하얀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 농장 마당에 서자, 농장은 갑자기 다른 곳이 되었다. 늘 내가 주인인 공간인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손님 같았다. 그들은 절차대로 움직였고, 나는 그 절차가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었다. 익숙한 건 내가 매년 보던 뉴스 화면 속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낯선 건 그 화면이 내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몇 마리를 골라 검체를 채취했다. 오리들은 겁을 먹고 날뛰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미안했다. 억지로 붙잡혀 입을 벌리고, 코와 목을 건드리는 그 과정에서 오리들이 낸 소리는 평소 울음과 달랐다. 날카롭고, 억울하고, 어딘가 절박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 게 힘들어 잠시 밖으로 나왔다. 밖 공기는 차가웠고, 그 차가움이 내 눈을 더 시리게 만들었다.

방역과 소독 장면을 연상시키는 랜덤 이미지

검사 결과는 빠르면 그날 밤, 늦으면 다음 날 나온다고 했다.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실 할 일은 많았다. 출하 예정이었던 물량에 대한 연락, 사료 업체와의 조정, 직원에게 상황 공유, 은행 이자 날짜 확인. 하지만 내 손은 어떤 일도 제대로 붙잡지 못했다. 손이 떨리는 건 아니었는데, 마음이 텅 비어 있었다. 무엇을 잡아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결과가 나오면 모든 게 달라질 테니까.

밤이 되자 농장은 더 조용해졌다. 나는 축사 옆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작은 히터가 켜져 있었지만, 따뜻함은 몸에만 닿고 마음에는 닿지 않았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화면을 켰다 껐다 했다.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면서도,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 모순이 내 속을 계속 갈랐다.

전화는 결국 왔다. 내가 피하려고 해도, 겨울은 항상 제 시간을 지켜서 온다.

“사장님… 양성입니다. 고병원성으로 나왔습니다.”

상대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아마도 그는 이런 전화를 하루에도 몇 번씩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한 번뿐인 전화였다. 나는 “예”라는 말만 했다.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예.” 내가 ‘예’라고 한 순간, 내 농장 안의 오리들은 이미 다른 존재가 되었다. 내 오리가 아니라, 방역 대상이 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저 머리가 멍했다. 멍한 채로 축사 쪽을 바라봤다. 축사 안에서는 오리들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아직 대부분은 살아있고, 먹이를 먹고, 물을 마시고, 서로 몸을 비비고, 따뜻함을 나누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삶이 이제 ‘폐사’로 연결될 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믿기지 않아서, 현실이 아닌 것 같아서, 나는 다시 축사로 걸어갔다.

축사 문을 열자, 열기와 냄새가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그 냄새가 갑자기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냄새가 싫어서 환기를 더 하고 싶었는데, 그날은 그 냄새가 살아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오리들을 바라봤다. 오리들이 내 쪽으로 다가왔고, 몇 마리는 내 장화를 쪼았다. 그 작은 행동이 내 가슴을 찢었다.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지. 모르니까 이렇게 오지.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울었다. 소리 없이 울었다. 울면 축사 안의 공기가 더 눅눅해질까 봐 숨을 아꼈다. 이상하게도 그런 것까지 걱정했다.

살처분 팀이 언제 온다고 했다. 새벽이든 아침이든. 나는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곧’이라는 말만 기억했다. 곧. 곧이라는 말은 늘 애매한데, 그날의 곧은 칼처럼 선명했다. 나는 축사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는 별이 보였다. 별은 겨울마다 똑같이 빛났고, 그 빛은 내 농장의 일과 상관없이 존재했다. 그 사실이 서러웠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 돌아간다는 사실이.

그날 밤, 나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말하면 현실이 더 단단해질 것 같았다. 나는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밤을 새웠다. 의자에 앉았다가, 바닥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창밖으로 축사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불빛은 내가 켜둔 것이었고, 그 불빛 아래에서 오리들은 잠들었을 것이다. 나는 잠들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숫자가 돌아갔다. 총 사육 마리 수, 대출 잔액, 다음 달 사료비, 출하 계약금. 숫자들 사이에 오리들의 울음이 끼어들었다. 숫자와 울음이 뒤엉켜서, 나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몰랐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멀리서 차량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이 먼저 굳었다. 컨테이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흰색 차량과 트럭이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방역복을 입고 있었다. 그 장면은 뉴스에서 수없이 보던 장면인데, 내 눈앞에 있으니 완전히 달랐다. 뉴스에서는 화면 바깥에 내가 있었는데, 이제는 화면 안에 내가 있었다. 화면 안에서는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 출입 통제선을 치고, 소독을 하고, 사람들의 동선이 정해지고, 내 동선이 제한됐다. 나는 주인인데도, ‘여기서 기다리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축사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누군가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맞다는 걸 알았다. 내가 들어가면 오리들이 나를 보고 더 움직일 것이고, 그게 작업을 어렵게 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자꾸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오리들에게 마지막으로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인정하기 싫으면서도, 마지막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다.

축사 안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였다. 그 다음에는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 그리고 오리들의 울음이 커졌다. 그 울음은 평소 울음과 달랐다. 단순히 배고프거나 놀라서 내는 울음이 아니라, 무리 전체가 동시에 내는 울음이었다. 울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귀를 막고 싶었지만, 막지 않았다. 막으면 내가 더 비겁해질 것 같았다. 나는 귀를 막지 않고 그 소리를 그대로 받았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함께’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밖은 아직 어두웠고, 내 손은 얼어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이런저런 서류를 내밀었다. 확인 서명, 보상 관련 안내, 이동 제한 안내.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서류 위에 내 이름을 썼다. 내 이름이 그렇게 가벼운 줄 몰랐다. 이름 몇 글자가 오리들의 생과 맞바뀌는 것 같았다. 물론 이름을 쓴다고 해서 일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내 몸은 그 순간을 ‘교환’처럼 느꼈다. 너무 잔인한 교환이었다.

비어있는 축사를 연상시키는 랜덤 이미지

해가 뜨기 시작할 때쯤, 축사 안의 소리가 점점 줄었다. 울음이 줄고, 움직임이 줄고, 결국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가장 무서웠다. 나는 그 조용함을 견딜 수 없어, 농장 마당 끝까지 걸어갔다. 눈이 얇게 쌓인 곳도 있었고, 흙이 드러난 곳도 있었다. 나는 눈을 밟으며 생각했다. 나는 매년 겨울을 걱정했는데, 걱정은 결국 현실을 막아주지 못했다. 걱정은 내 마음을 닳게 만들기만 했다. 그 사실이 너무 허무했다.

작업이 끝났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이제 축사 내부는 비워졌고, 추가 소독과 폐기 절차가 남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축사 문 앞에 다시 섰다. 문을 열어도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을 열면 나는 무엇을 보게 될까. 비어있는 바닥, 뒤집힌 물통, 흩어진 깃털, 그리고 내가 지켜온 시간이 한 번에 사라진 흔적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문은 닫힌 채로 내 마음에 박혔다.

집에 돌아가야 했다. 아내에게 말해야 했다. 나는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길은 평소와 같았다. 마을 입구 슈퍼 앞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내 차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손을 들지 못했다. 손을 들면 내가 괜찮은 사람인 척하는 것 같았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차 안에서 나오는 히터 바람이 따뜻했는데, 그 따뜻함이 오히려 서러웠다. 따뜻함은 살아있는 사람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집에 들어가자 아내가 부엌에서 나왔다. 아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뭔가를 알아챘다. 말로 하지 않아도, 내 어깨가 이미 말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잠시 멈췄다가, 조용히 물었다. “나왔어?” 결과가 나왔냐고 묻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아내의 얼굴이 잠깐 굳었다. 아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밥을 차렸다. 밥상 위에는 김치와 국과 계란말이가 있었다. 평소와 같은 밥상이었다. 그 평소가 너무 눈물 나서, 나는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아내는 내 앞에 앉지 않았다. 내 옆에 앉았다. 마주 보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자리였다. 아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먹어. 오늘은 먹어야 해.”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삼켰다. 삼키지 않으면 나는 무너질 것 같았다. 아내는 내 손을 잠깐 잡았다. “당신 잘못 아니야.” 그 말이 내 마음에 닿기도 전에, 내 마음은 반박했다. 내 잘못이 아니면 누구 잘못인가. 바이러스 탓인가. 겨울 탓인가. 철새 탓인가. 세상 탓인가. 탓을 찾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데도, 사람은 탓을 찾아야 숨을 쉴 수 있다.

그 후 며칠 동안, 우리 집은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농장에 오리 울음이 사라졌으니, 내 귀에서 울음이 사라질 법도 한데, 오히려 내 귀는 더 예민해졌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랐고, 바람 소리에도 눈이 번쩍 떠졌다. 나는 꿈에서 축사로 달려갔다. 꿈속에서는 아직 오리들이 있었다. 꿈속에서는 내가 늦지 않았다. 그런데 꿈에서 깨면, 현실이 더 차갑게 다가왔다.

농장은 일정 기간 동안 비워야 했다. 소독과 검사, 이동 제한이 이어졌다. 그 기간 동안 나는 해야 할 일이 없었다. 농장주에게 일이 없다는 건, 쉬는 게 아니라 ‘비어 있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갈 곳이 없었다. 습관적으로 축사 쪽을 바라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 몸은 여전히 농장 리듬으로 움직이려 했는데, 리듬이 사라졌으니 몸은 허공에서 헛돌았다.

마을 사람들은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힘내라.” “어쩌냐.” “그래도 보상 나올 거야.” 그 말들은 위로였지만, 어떤 말도 내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보상은 숫자였다. 숫자가 나를 살릴 수는 있어도, 내가 잃은 것의 냄새와 소리와 온기를 돌려주지는 못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보상 이야기를 듣는 게 싫지 않았다. 사람이 참 이기적이다. 잃어도,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하니까 숫자를 잡는다. 잡지 않으면 더 추락한다.

나는 농장 사무실에 들어가서 장부를 펼쳤다. 장부에는 출하 기록이 있었고, 사료 구입 기록이 있었고, 약품 기록이 있었다. 그 모든 기록들이 갑자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기록은 미래를 위해 쌓는 것인데, 미래가 갑자기 끊겨버리면 기록은 과거의 무덤처럼 느껴졌다. 나는 장부를 덮었다. 덮으면서도, 다시 펼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이게 내 삶이니까.

어느 날, 직원이 내게 전화했다. 그는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힘들까 봐, 혹은 본인도 뭐라 해야 할지 몰라서였을 것이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그는 갑자기 사과했다. 나는 그 사과가 더 힘들었다. “네가 왜 미안해.”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같은 걸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말할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마음이 어딘가로 터져버릴 것 같으니까.

나는 다시 농장으로 나갔다. 축사 앞에는 생석회가 하얗게 뿌려져 있었다. 하얀색이 눈처럼 보였다. 눈은 원래 깨끗한 느낌인데, 그날의 하얀색은 깨끗함이 아니라 ‘처리’의 색이었다. 나는 축사 문을 열었다. 드디어 열었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톱밥이 남아 있었고, 군데군데 깃털이 붙어 있었다. 물통은 비워져 있었고, 급이기는 세척되어 있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빈 공간’이었다. 그게 더 슬펐다. 빈 공간이 너무 정돈되어 있으면, 마치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바닥에 앉아 깃털 하나를 집었다. 깃털은 가볍고, 손끝에서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내 마음을 더 흔들었다.

나는 그날 한참을 축사에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애도였다. 애도는 거창한 게 아니라, 시간을 멈추는 것이다. 멈춰서 잃은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밖에서는 바람이 불고, 차가 지나가고, 마을 방송이 나오고, 해가 지고, 또 떠올랐다. 내 애도는 내 마음 안에서만 진행됐다. 마음 안의 애도는 혼자 하는 일이어서 더 힘들었다.

농장주는 가축을 키우지만, 동시에 시간을 키운다. 시간이 무너지면, 삶의 구조가 함께 무너진다.

며칠 뒤, 보상 관련 안내가 왔다. 나는 서류를 준비했다. 사육 마릿수, 입식 시기, 사료 구입 내역, 판매 계약. 나는 그 서류들을 제출하면서, 내 이야기가 서류로 바뀌는 느낌을 받았다. 내 삶이 숫자와 날짜로 변환되는 과정. 누군가에게는 행정이고, 누군가에게는 업무지만, 내게는 추억의 해체였다. 나는 그걸 견뎠다. 견뎌야 했다.

겨울은 계속되었다. 나는 오리가 없는 축사를 바라보며 겨울을 보냈다. 오리가 없으니 일은 줄었는데, 마음은 더 무거웠다. 일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살게 한다. 움직이면 생각이 덜해진다. 그런데 움직일 일이 없으면 생각이 넘친다. 나는 밤마다 생각이 넘쳐서 잠을 못 잤다. ‘내가 다시 할 수 있을까.’ ‘다시 한다면,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이 동네에서 내가 다시 오리를 키우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내가 포기하면, 그럼 나는 뭘 하지.’ 질문은 끝이 없었다.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말했다. “당분간 다른 일이라도 해볼까.” 아내의 말은 현실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농장은 내 일이었고, 내 이름이었고, 내 자존심이었고, 내 습관이었다. 습관을 바꾸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습관은 몸에 박혀 있어서, 뽑으려면 피가 난다. 나는 피가 나기 싫어서 자꾸 예전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게 무서웠다. 축사에서 울음이 다시 들릴 수 있다는 희망과, 울음이 다시 멈출 수 있다는 공포가 동시에 있었다. 희망과 공포가 서로를 밀치며 내 마음을 잡아당겼다. 나는 가운데서 찢기고 있었다.

겨울이 한창일 때, 마을 회관에서 방역 교육이 있었다. 나는 참석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갔다. 앉아 있는 사람들 얼굴에는 피로가 있었다. 몇몇은 이미 피해를 겪은 사람들처럼 보였고, 몇몇은 아직 겪지 않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얼굴의 방향은 같았다. 모두 겨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사는 자료를 보여주며 말했다. “올해도 위험합니다. 철새 이동 경로가…” 나는 그 말을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겨울마다 똑같은 말을 듣고, 똑같이 조심하고, 똑같이 무너질 수 있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 걸까. 조심의 방법만 배우는 걸까. 아니면 무너지는 법도 배우는 걸까.

교육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나갈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톡 쳤다. 예전에 나보다 먼저 피해를 겪었던 선배였다. 그는 내 눈을 잠깐 보더니 말했다. “처음이 힘들지. 근데,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은 오래 버틴다.” 그는 위로를 길게 하지 않았다. 대신 담배를 하나 꺼내서 내게 건넸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그날은 받아서 손에 쥐었다. 손에 쥔 담배가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따뜻함은 이런 식으로도 사람을 살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겨울 하늘은 맑았고, 별이 또렷했다.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사실이 이번에는 덜 서러웠다. 별이 무심하다는 건, 동시에 내가 다시 시작해도 별이 나를 비웃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심함은 때로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나는 농장 앞에 차를 세우고, 축사를 바라봤다. 축사 지붕 위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 서리는 오리들이 있던 시절에도 똑같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내 삶이 그렇게 쉽게 멈출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알게 되면, 다시 시작하는 게 더 어렵다. 하지만 알게 되었기에, 다시 시작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아직 확신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겨울이 두려워도, 겨울을 피해 살 수는 없다는 것. 겨울은 매년 온다. 내가 농장을 하든 안 하든. 그러면 나는 겨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두려움을 없애는 법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하루를 살아내는 법을.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조금 길게 잤다. 꿈속에서 오리 울음이 들리긴 했지만, 그 울음은 이전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어쩌면 내 마음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지도 몰랐다. 폐사는 끝이 아니라, 내 삶의 한 페이지였다. 그 페이지가 너무 잔인해서, 나는 오래 붙잡고 울 수밖에 없었지만, 페이지는 결국 넘어가야 한다. 넘어가야 다음 문장이 시작된다.

아침이 되었고, 나는 일어났다. 커피를 내리고, 창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들어왔다. 겨울 공기였다. 나는 그 공기를 들이마셨다. 예전 같으면 그 공기에서 공포를 먼저 느꼈겠지만, 그날은 다른 감정이 있었다. 아주 작고 희미한 감정.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감정. 살아야 한다는 말은 너무 흔해서 싫지만, 흔한 말이 흔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결국 그 말로 버틴다.

나는 축사로 가지 않았다. 대신 축사 앞에 서서 잠깐 바라봤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미안했다.” 그 한마디가 내게는 긴 문장보다 더 무거웠다. 미안하다는 말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내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내 겨울을 정리해 나갔다.

※ 참고: 본문은 이야기(픽션)이며, 실제 역·질병 대응은 지역 방역당국 지침을 따르는 것이 우선입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과수원 시작 비용, 실제로 얼마나 들까?

두리안은 왜 ‘과일의 왕’이라 불릴까?

과수원 입지 선택 시 꼭 확인해야 할 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