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망해서 컵라면 먹던 30대, '비누 거품' 하나로 인생 역전하다
거리의 불이 일찍 꺼지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숨을 의식했고, 가게의 유리문에는 ‘임시 휴업’이라는 종이가 바람에 들썩였다. 그때 한 청년은, “세상이 멈추면 나도 멈춰야 하나”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박아둔 채, 아주 낯선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이름은 민준이었다. 스스로를 ‘평범한 청년’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민준은 평범함을 오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어느 날, 채용 공고들이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했다. 면접이 취소되고, 일정이 밀리고, 기다림만 쌓이던 그 봄에 그는 휴대폰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곤 했다. 뉴스에는 숫자가 떠돌았고, 거리에는 사람 대신 마스크가 많았다.
민준은 원래 도시형 인간이었다. 냉장고에 계란과 즉석밥이 떨어지는 것도, 전기요금 고지서가 어디로 왔는지도 잘 몰랐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아버지의 고향마을에 내려가기로 결정한 건 단지 도망이어서가 아니라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인간은 위기를 만나면 숨거나, 혹은 판을 바꾸려 한다. 민준은 후자를 택했다.
마을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처음 며칠은 귀가 울릴 정도였다. 도시에서는 밤에도 무언가가 움직였는데, 여기서는 밤이 되면 정말 밤이 왔다. 길모퉁이에 서 있던 가로등은 마치 오래된 전등처럼 깜빡거렸고, 멀리서 개가 짖으면 그 소리가 산을 타고 돌아왔다.
민준은 말했다. “저는 농사를 지으러 온 게 아니라, 시간을 다시 배우러 온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모든 게 빠른데, 빠른 게 다 맞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때 민준의 손에는 작은 노트가 있었다. 거기에는 낯선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EC’, ‘pH’, ‘양액’, ‘광량’, ‘VPD’. 누군가에게는 외계어였지만, 민준에게는 ‘새 직업의 언어’였다. 그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배포하는 책자를 들고 다니며 줄을 그었다. 유튜브와 논문 요약 영상, 농가 인터뷰, 정부지원 사업 설명회 영상이 그의 밤을 채웠다. 취업 준비 대신 농업 공부를 하는 이상한 청년. 마을 어르신들은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요즘 젊은 것들은 참 별 걸 다 하네. 농사도 컴퓨터로 하냐?”
민준은 웃고 넘겼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박혔다. “그래, 컴퓨터로 하는 농사.” 단순히 농사에 기계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로 판단하고 예측하는 농사. 누가 보기엔 허세 같았지만, 민준에게는 생존 전략이었다. 넓은 땅도 없고, 힘도 부족하고, 경험도 없는 청년이 기존 방식으로 경쟁하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판을 바꿔야 했다.
처음부터 스마트팜을 크게 시작할 수는 없었다. 가진 돈이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이 실제로 견딜 수 있는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민준은 ‘실험’부터 하기로 했다. 마을 끝자락, 오래 비어 있던 비닐하우스 한 동을 임대했다. 비닐은 군데군데 바스라지고, 골조는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그 하우스를 처음 봤을 때, 민준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완벽하지 않아서 부담이 덜했다. 실패해도 ‘원래 이런 곳’이라는 핑계가 생겼다. 그 핑계를 미리 마련해두는 건, 두려움을 다루는 가장 흔한 방식이었다.
그는 하우스를 고치며 일기를 썼다. “오늘은 비닐을 갈았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민준에게 물집은 패배의 흔적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통행증 같았다. 아침엔 손이 뻣뻣해졌고, 손톱 밑에는 흙이 박혔다. 도시에서 ‘깔끔함’이라 부르던 것들이 여기에서는 생존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민준이 택한 첫 작물은 딸기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딸기는 맛있고, 잘 팔리고, 사람들이 좋아하잖아요.” 하지만 농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았다. 딸기는 예민했다. 온도와 습도, 병해충, 탄저병, 잿빛곰팡이, 그리고 무엇보다 ‘관리의 손길’에 민감했다. 민준은 처음 몇 달 동안 매일같이 좌절했다. 잎이 말라가고,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달아도 모양이 고르지 않았다.
그는 밤에 컴퓨터 앞에 앉아 센서 그래프를 들여다봤다. 온도는 정상인데 왜 잎이 처질까. 습도가 낮으면 분무를 돌리면 될까. 그런데 분무를 돌리면 곰팡이가 생길까. 하나를 해결하면 하나가 터졌다. 민준은 결국 결론을 내렸다. ‘내가 문제다.’
민준이 처음 깨달은 것: “농사는 ‘정답’을 외우는 게 아니라, ‘상황’을 읽는 일이었다.”
민준이 처음 겪은 함정: “장비를 사면 해결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장비는 데이터를 주고, 판단은 사람이 한다.”
스마트팜이란 말이 주는 환상은 달콤했다. 버튼 몇 번 누르면 온실이 알아서 돌아가고, 앱에서 그래프만 보면 수확이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은 ‘알림 지옥’이었다. 온도가 조금만 내려가도 알람이 울렸고, 전력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면 경고가 떴다. 물 공급이 막히면 새벽에도 뛰어나가야 했다. 민준은 어느 날 새벽 3시에 하우스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비닐하우스는 커다란 생물처럼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때 민준을 버티게 한 건 의외로 ‘사람’이었다. 마을 어르신 중 한 분이, 민준을 지나치게 걱정해서가 아니라 그냥 심심해서, 자주 하우스에 들렀다. 어르신은 민준이 설치한 센서를 보며 말했다.
“저거 숫자 나오는 거 멋있네. 근데 숫자만 보지 말고, 잎을 봐. 잎이 말해주는 게 더 많아.”
민준은 그 말을 곱씹었다. 숫자와 잎. 데이터와 감각. 그는 그 둘이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는 걸 천천히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하우스를 돌며, 손으로 잎을 만지고 냄새를 맡았다. 그날의 공기, 땅의 습기, 잎의 탄력. 그리고 그걸 다시 기록했다. 센서 데이터 옆에 ‘내가 느낀 공기’를 적었다. 그것은 민준이 만든 첫 번째 ‘농장 알고리즘’이었다. 아주 아날로그한 알고리즘.
봄이 지나 여름이 오자, 마을은 또 다른 어려움으로 흔들렸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듯하다가 다시 퍼지고, 시장은 불안정했다. 물류비가 올랐고, 포장재 가격도 올랐다. 민준은 수확을 했는데 팔 곳이 애매했다. 기존 유통망에 끼어들기엔 물량이 적고, 직거래를 하자니 고객을 모으는 일이 또 다른 전쟁이었다.
그는 다시 도시에서 배운 방식을 떠올렸다. “브랜딩.” 농산물도 브랜드가 필요할까. 민준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답은 ‘필요하다’였다. 특히 작은 규모의 농장은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 없으니, ‘가치 경쟁’을 해야 했다. 민준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딸기가 자라는 과정, 새벽 수확, 이슬 맺힌 잎, 하우스의 온도 그래프, 오늘의 기록. 그리고 글을 썼다. “오늘은 바람이 거셌다. 하우스 비닐이 울었고, 나는 잠을 설쳤다.” 사람들은 그런 글에 반응했다. 딸기 자체만이 아니라, 딸기를 키우는 ‘이야기’를 사는 사람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주문이 하루에 다섯 건, 열 건 정도였다. 포장을 하다보면 밤이 됐고, 택배 마감 시간에 맞추려고 뛰어다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바쁨이 싫지 않았다. 민준은 생각했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딸기를 보내는 게 아니라, 내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그러나 성장에는 늘 대가가 따랐다. 주문이 늘자 실수가 늘었다. 포장이 터지고, 배송이 지연되고, 딸기가 눌려서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민준은 죄송하다는 문자를 수십 번 보냈다. 사과를 하며 그는 다시 배웠다. ‘농사는 생산만이 아니라, 서비스다.’ 맛있는 딸기를 키우는 것만큼, 그 딸기가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농사였다.
민준이 만든 변화: “포장 방법을 바꾸고, 출고 시간을 통일하고, 고객 응대 문구를 정리했다. 농장도 하나의 작은 회사였다.”
민준이 겪은 위기: “딸기 품질이 흔들리면, 그날의 매출이 아니라 ‘신뢰’가 무너진다.”
어느 날, 민준은 하우스에서 갑자기 난방기가 멈추는 사고를 겪었다. 한겨울 새벽이었다. 바깥 온도는 영하로 떨어졌고, 하우스 안은 점점 차가워졌다. 알림이 울렸지만 민준의 휴대폰은 침대 옆에서 배터리가 꺼진 채였다. 아침에 눈을 뜬 민준은 창밖의 하얀 서리를 보고 직감적으로 뛰쳐나갔다.
하우스 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딸기 꽃이 얼어붙은 듯 축 늘어져 있었다. 민준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말을 잃었다. 몇 달 동안 쌓아온 것이 한밤의 고장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잔인했다. 그는 멍한 손으로 난방기를 살펴보다가, 결국 하우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 떠오른 건 ‘사업’이 아니라 ‘자존심’이었다. “나는 또 실패했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민준은 울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전력 문제인지, 기계 수명인지, 안전장치 설정인지, 통신 장애인지. 그리고 하나씩 바꿨다. 예비 배터리를 달고, 이중 알람을 설정하고, 온도 하한선을 보수적으로 잡고, 난방기 점검 일정을 달력에 박아넣었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기록’으로 바꿨다. 기록은 다시 시스템이 되었고, 시스템은 다음 겨울의 보험이 됐다.
민준은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고장은 나를 배신한 게 아니라, 내가 준비하지 않은 구멍을 보여줬다.”
그 이후로 민준의 농장은 조금씩 ‘민준의 방식’이 생겼다. 남들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하던 시기를 지나,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작물을 다변화했다. 딸기만으로는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계절마다 안정적인 작물을 끼워 넣었다. 여름에는 바질과 샐러드 채소를, 가을에는 토마토를 시험했다. 스마트팜의 장점은 ‘환경 제어’였고, 환경을 제어한다는 것은 곧 ‘계절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환경 제어는 전기요금과 직결됐다. 민준은 에너지 비용에 민감해졌다. 그는 태양광을 알아보고, 히트펌프 자료를 찾아보고, 단열 커튼을 설치했다. ‘친환경’이 멋있어서가 아니었다. 살아남으려면 비용을 잡아야 했다. 그는 말하곤 했다. “전기요금은 농장의 심장박동이에요. 심장이 너무 빨리 뛰면 오래 못 가요.”
그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주변에서 ‘지원사업’ 이야기가 들려왔다. 청년농부 지원, 스마트팜 보조금, 시설 개선 사업. 민준은 또다시 서류 전쟁에 뛰어들었다. 사업계획서를 쓰고, 예상 매출과 비용을 적고, 목표를 숫자로 만들었다. 농사를 지으며 농사 계획서를 쓰는 기묘한 삶. 그는 서류를 쓰다가 자주 막혔다. 실제로는 변수가 많고, 예상은 늘 틀리는데, 종이 위에서는 모든 게 정교해야 했다.
민준은 그때부터 숫자를 ‘포장’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과정’을 강조했다. 실패 기록, 개선 과정,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고객 피드백, 재구매율, 품질 관리 프로세스. 심사위원이 좋아할 말이 아니라, 민준 자신이 믿는 말을 적었다. 그리고 그게 통했다. 그는 작은 규모의 시설 개선 지원을 받았고, 낡은 하우스를 하나 더 정비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하우스를 열던 날, 민준은 마을 어르신들을 초대해 따뜻한 커피를 나눴다. 어르신들은 하우스 안의 깨끗한 통로와 반짝이는 배관을 보고 한참을 구경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이제 진짜 농사꾼 다 됐네.” 민준은 그 말이 고맙고도, 이상하게 무거웠다. ‘농사꾼’이라는 말에는 책임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이제 개인의 실험이 아니라, 가족과 마을과 고객의 기대까지 함께 키우고 있었다.
성공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았다. 민준에게 성공은 ‘조용한 확신’으로 왔다. 어느 달부터 통장이 마이너스가 아닌 숫자를 유지하기 시작했고, 다음 달에도 그랬고, 그다음 달에도 그랬다. 그는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버틴 게 아니라, 시스템이 버티고 있었음을. 본인이 잠깐 흔들려도 농장이 무너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었다.
민준의 하루는 여전히 바빴지만, 예전과 달랐다. 예전에는 모든 일이 ‘급한 불’이었는데, 이제는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는 아침에 하우스를 돌고, 낮에는 작업을 하며, 저녁에는 기록을 정리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는 일부러 쉬었다. 쉬는 날에도 완전히 쉬지는 못했다. 머릿속에는 늘 작물의 잎이 떠올랐고, 습도 그래프가 떠올랐다. 그래도 그는 배웠다. “쉬지 않으면, 결국 농사가 나를 망친다.”
민준은 가끔 서울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올라갔다. 친구들은 여전히 바빴고, 회사를 옮기거나 시험을 준비하거나, 누군가는 번아웃을 이야기했다. 민준은 그들 앞에서 농장 이야기를 늘 길게 하지 않았다. 자랑처럼 들릴까 봐서도 아니고, 설명이 복잡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그가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성공은 상대에게 설명하면 부서진다. 성공은 ‘내가 내 삶을 믿을 수 있게 된 상태’에 더 가까웠다.
어느 술자리에서 친구가 물었다. “야, 너 진짜 돈 벌어?” 민준은 웃으며 대답했다. “응. 그리고… 내가 버티면 계속 벌 것 같아.” 친구는 농담처럼 말했다. “너, 인생 게임에서 치트키 쓴 거 아니냐?”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치트키는 없었다. 다만 ‘내가 뭘 견딜 수 있는지’ 끝까지 확인한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을 데이터로 바꿔서 시스템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민준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 “큰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내일이 덜 무서운 상태.”
시간이 더 흐르자, 민준의 농장에는 사람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청년농부 교육을 듣는 사람들이 견학을 왔고, 지역의 공무원과 관계자도 들렀다. 어떤 날은 기자가 왔다. “코로나 이후 귀농해서 성공한 청년” 같은 제목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준은 그 말을 들으며 살짝 웃었다. 성공이라. 기사에는 성공이 필요하고, 사람들은 성공담을 좋아한다. 하지만 민준의 현실은 성공담보다 훨씬 지저분했다. 실패의 냄새가 섞여 있었고, 새벽의 추위가 스며 있었고, 고객의 항의 메시지가 남긴 상처도 있었다.
민준은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했다. “저도 망할 뻔한 적이 많았어요.” 기자는 그 문장을 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문장이 기사에서 가장 빛났다. 누군가는 그걸 읽고 민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도 시작하려는데, 무섭습니다.” 민준은 답장을 길게 쓰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적었다. “무서우면 정상이에요. 저는 무서워서 기록했고, 기록해서 덜 무서워졌어요.”
그해 가을, 민준은 지역 청년들과 함께 작은 협업을 시작했다. 혼자 하면 느리지만, 함께 하면 멀리 간다. 그는 포장 라인을 공유하고, 온라인 판매 페이지를 묶고, 공동 배송을 시도했다. 그러다 보니 싸움도 생겼다. 누군가는 더 많은 물량을 요구했고, 누군가는 품질 기준을 엄격히 하자고 했다. 민준은 그 과정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느꼈다. 사업이란 결국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기도 하니까.
그는 협업을 하며 다시 깨달았다. 스마트팜의 핵심은 센서와 앱이 아니라, ‘의사결정’이라고. 그리고 의사결정은 혼자보다 여럿이 할 때 더 단단해질 때가 많다고. 물론 느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느려지는 대신 실수가 줄었다. 민준은 그렇게 조금씩 ‘농장’에서 ‘산업’으로 시선을 넓혔다. 나 혼자 잘 되는 것과, 우리 동네가 같이 살아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겨울이 다시 왔다. 민준은 난방기를 두 번, 세 번 점검했고, 알람 시스템을 테스트했다. 그리고 새벽에 한 번도 하우스 때문에 뛰어나가지 않았다. 그게 그해 겨울의 가장 큰 성취였다. 큰 매출이 아니라, 큰 사고가 없는 것. 농사에서는 그게 곧 성공이었다.
민준은 새해를 앞두고 작은 목표를 적었다. “올해는 사람을 한 명 고용해본다.” 그는 이 목표가 무섭기도 했다. 누군가의 월급을 책임지는 일. 그것은 새로운 단계였다. 하지만 민준은 알았다. 자신이 정말 ‘성공’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건, 혼자 버는 돈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는 걸.
그는 면접을 보고, 동네의 또 다른 청년을 뽑았다. 그 청년은 말수가 적었지만 눈빛이 단단했다. 첫날, 민준은 하우스를 같이 돌며 말했다. “여긴 숫자도 중요하지만, 잎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덧붙였다. “숫자는 기록이고, 잎은 오늘이에요. 둘 다 봐야 해요.”
그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은 그 순간 묘하게 마음이 놓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이 농장의 언어’를 넘겨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민준은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게, 코로나 이후 그가 얻은 가장 큰 변화였다.
성공한 MZ 청년의 이야기는 겉으로 보면 ‘트렌디’하고 ‘희망적’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주 오래된 원리가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길을 걸어가고, 같은 식물을 바라보고, 어제보다 조금 덜 틀리려고 애쓰는 것. 화려한 기술은 그 뒤에 있다. 기술은 민준의 손을 대신해주지 않았다. 다만 민준의 눈을 조금 더 멀리 보게 해줬다.
민준은 가끔 하우스 문 앞에서 잠시 멈춘다. 어둠 속에서 하우스는 여전히 커다란 생물처럼 숨을 쉬고, 그 숨은 일정하다. 민준은 그 숨을 들으며 생각한다. “내가 이 농장을 키운 게 아니라, 이 농장이 나를 키웠구나.”
그리고 그는 조용히 문을 연다. 오늘의 공기, 오늘의 잎, 오늘의 숫자. 오늘의 실패 가능성까지도 함께 맞이하기 위해서. 성공은 도착지가 아니라, 매일 문을 여는 습관이라는 걸 민준은 이제 안다.
끝.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