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망해서 컵라면 먹던 30대, '비누 거품' 하나로 인생 역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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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비누 거품 속에서 다시 희망을 쏘아 올린 한 청년의 인생 역전 드라마를 작성해 드립니다. MZ세대의 감각과 끈기로 세차장 사장님이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마스크 뒤에 감춰진 눈물, 그리고 비누 거품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상처를 딛고 일어선, 우리 주변의 청년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한때는 잘나가는 스타트업 대표를 꿈꿨으나, 바이러스라는 불가항력 앞에 모든 것을 잃고 신용불량자 직전까지 몰렸던 31세 청년 '준호' 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손이 거친 타이어를 만지며 어떻게 다시 빛나게 되었는지, 그 치열했던 3년의 기록을 시작합니다. 화려했던 오픈, 그리고 예고 없던 폐업 통보 2019년 겨울, 준호 씨는 부모님의 도움과 대출을 끌어모아 홍대 인근에 퓨전 요리 주점을 열었습니다.  인스타그램 감성을 자극하는 인테리어와 독특한 메뉴 덕분에 오픈 초기에는 웨이팅이 생길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나도 이제 영 앤 리치(Young & Rich)가 될 수 있겠다" 는 꿈에 부풀어 있었죠. 하지만 그 꿈은 단 3개월 만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코로나19가 터졌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녁 9시 영업 제한, 5인 이상 집합 금지. 술장사를 하는 그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월세 400만 원은 고스란히 빚이 되어 쌓였고, 아르바이트생들을 내보내고 혼자 주방을 지켰지만, 하루 매출 0원을 찍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결국 준호 씨는 1년 만에 권리금은커녕 원상복구 비용까지 빚을 지고 가게를 폐업해야 했습니다. 한순간에 떨어진 나락, 컵라면과 배달 대행 가게를 정리하고 남은 건 1억 원이 넘는 빚과 패배감뿐이었습니다. 준호 씨는 보증금을 뺀 돈으로 신림동의 2평 남짓한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한때 '사장님' 소리를 듣던 그는 이제 배달 대행 오토바이를 타는 라이...

폭설이 내린 날, 강원도 캠핑으로 떠난 청년의 낭만

폭설이 내린 날, 강원도 캠핑으로 떠난 청년의 낭만

바람이 눈을 들어 올리고, 길 위의 표지판이 흰 숨을 내뿜던 밤. 한 청년은 ‘오늘만큼은’이라는 마음으로 강원도를 향했다. 그가 돌아오며 품고 온 건 추억이 아니라, 겨울의 결심 같은 것이었다.

폭설 강원도 캠핑 낭만 눈길 모닥불

그날의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휴대폰 알림창에 “대설주의보”라는 글자가 떠오르고, 창밖 가로등 아래로 눈발이 굵어지던 순간. 그저 따뜻한 방 안에서 그 문장을 읽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묘하게 마음이 들떴다. 마치 겨울이 직접 초대장을 보내온 것처럼.

그는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늘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계절을 놓친다.”

봄은 꽃 사진만 찍고 지나갔고, 여름은 빗소리만 들으며 에어컨 앞에 앉아 있었고, 가을은 낙엽을 밟을 시간 없이 바쁘게 흘렀다. 그래서 겨울만큼은 ‘몸으로’ 통과하고 싶었다. 눈이 내린다면 눈을 밟고, 바람이 분다면 바람을 맞고, 차가운 공기가 폐를 찌른다면 그 찌르는 감각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는 장롱 구석에서 오래된 캠핑 가방을 끌어냈다. 지퍼는 조금 뻑뻑했고, 내부는 지난 계절의 모래와 나뭇잎이 한 줌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래, 나는 한 번도 캠핑을 포기한 적이 없었지.” 다만 잠깐 잊고 있었을 뿐.

겨울 캠핑의 낭만은 ‘완벽함’이 아니라 ‘결심’에서 시작된다. 편리함을 조금 내려놓고,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풍경이 달라진다.

짐을 싸는 과정은 의식 같았다. 장갑은 두 겹으로. 양말은 두 켤레. 핫팩은 넉넉히. 헤드랜턴 배터리는 새것으로 교체하고, 라이터는 두 개. 혹시 모르니 성냥도 하나. 그는 일일이 확인하며 작은 불안을 접어 넣었다. 불안은 통제할 수 있을 때만 얌전해지니까.

창문을 열자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코끝이 얼얼해졌다. “이 공기, 강원도는 더하겠지.” 그는 그 생각에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눈으로 덮인 산자락, 고요한 밤, 그리고 텐트 위로 떨어지는 눈의 소리. 아직 보지도 못한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먼저 불을 피웠다.

폭설이 내린 밤, 가로등 아래로 굵은 눈발이 쏟아지는 겨울 거리 풍경, 고퀄리티 실사풍, 보케, 광원, 16:9

그는 혼자 떠나기로 했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일정 맞추고, 장비 맞추는 일은 늘 캠핑보다 더 어렵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속도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정체 구간에서 불평하지 않아도 되고, 휴게소에서 커피를 한 잔 더 마셔도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혼자일 때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 마음의 소리.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묻는 소리.

출발 전 마지막으로 그는 현관에 서서 잠깐 멈춰 섰다.

“오늘 위험하면 돌아온다.”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낭만은 무모함이 아니었다. 겨울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동시에 예의 없는 계절이다. 방심한 사람에게는 차갑게 등을 돌린다. 그는 그 사실을 충분히 존중했다.

고속도로는 이미 겨울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라디오에서는 도로 통제 소식이 흘렀고, 전광판은 속도를 줄이라고 경고했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밟는 소리가 평소보다 묵직했다. 와이퍼는 쉼 없이 유리를 긁어냈고, 히터 바람은 따뜻했지만 어딘가 건조한 냄새가 났다.

그는 창밖을 보며 운전했다. 흰 선과 검은 선의 대비가 점점 흐려졌다. 도시를 벗어나자 눈은 더 진지해졌다. 바람이 눈을 옆으로 밀어붙이고, 가끔은 순간적으로 시야가 확 좁아졌다가 다시 열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한 박자씩 더 빨리 뛰었다.

휴게소에 들렀다. 바닥은 미끄러워 작은 스텝마다 균형을 잡아야 했다. 뜨거운 어묵 국물 냄새와 커피 향이 한꺼번에 섞여 겨울 특유의 ‘이동’ 느낌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도 어깨를 움츠렸다. 모두가 한결같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눈을 훑어내며, “많이 오네” 같은 말을 했다. 그 말은 일종의 인사였다. 겨울이 내리는 방식으로 서로를 확인하는.

차로 돌아와 한 모금의 커피를 마시는데, 유리창에 작은 얼음 꽃이 피어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 꽃의 가장자리를 살짝 문질렀다. 사라지는 꽃을 보며, “지금 아니면 이 풍경은 사라지겠지”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많은 장면이 그랬다. 잠깐 피고, 잠깐 사라지고, 남는 건 어쩌면 마음의 온도뿐.

그는 자신만의 원칙을 세웠다. “속도는 욕심내지 않는다. 차선 변경은 최소로. 급가속·급제동 금지. 그리고 무엇보다, 무리하면 낭만이 아니라 사고가 된다.”

눈길에서의 가장 큰 적은 ‘익숙함’이다. 평소처럼 달리려는 습관이 손과 발에 남아 있다. 그 습관을 지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강원도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이 바뀌었다. 도시의 간판은 줄어들고, 산등성이가 높아졌다. 강은 얇은 얼음으로 가장자리를 잡고 있었고, 나무들은 잔뜩 눈을 이고 있었다. 가지가 휘어질 듯한데도 나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묵묵히 겨울을 견디는 모양새가 사람보다 더 성숙해 보였다.

눈 덮인 산길과 숲, 차량이 천천히 지나가는 겨울 강원도 도로 풍경, 고퀄리티 실사풍, 보케, 광원, 16:9

그는 원래 바닷가 쪽 캠핑장을 생각했지만, 폭설 소식에 계획을 조금 바꿨다. 바람이 강한 곳보다 숲이 바람을 막아주는 곳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강원도는 선택지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시설이 완벽한 곳’보다 ‘무리하지 않는 곳’을 고르고 싶었다. 정리된 데크가 있고, 화장실이 가까우며, 접근 도로가 비교적 안전한 곳.

캠핑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기울고 있었다. 겨울의 오후는 속도가 빠르다. 그는 입구에서 천천히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 눈 냄새가 얼굴을 때렸다. 차가운 금속 냄새, 소나무 냄새, 그리고 어딘가에서 타고 있는 장작 냄새. 그 냄새가 그를 안심시켰다.

“그래, 여기에는 이미 겨울을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텐트를 치는 일은, 겨울에서는 ‘일’이 아니라 ‘기술’이었다. 장갑을 낀 손으로 폴을 끼우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매듭은 더디게 풀렸다.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흰 김이 길게 올라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텐트 천이 파도처럼 울렁였고, 눈은 계속 내려서 발자국을 금방 덮어버렸다.

그는 혼잣말을 했다. “침착하게.” 누가 들을 것도 아닌데, 말로 마음을 붙잡아두는 습관이 있었다. 텐트 바닥을 고르고, 방수포를 깔고, 텐트를 펼쳤다. 눈 위에 텐트를 올리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하얀 종이 위에 글을 쓰는 것 같았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밤을 보낼지, 어떤 온도로 기억될지, 모든 것이 지금 손끝에 달려 있었다.

기둥을 세우는 순간, 바람이 확 불었다. 텐트가 한쪽으로 밀릴 뻔했다. 그는 재빨리 폴을 붙잡고, 스노우팩을 꺼내 팩다운을 했다. 눈은 모래보다 부드러워서, 그대로 박으면 잘 고정되지 않는다. 눈을 눌러 다지고, 팩을 묻고, 다시 덮어 단단히 굳게 만들어야 했다. 시간은 더 들었지만, 그 과정이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켰다. 겨울과 협상하는 느낌이었다.

눈 내리는 숲속 캠핑장, 텐트 주변에 쌓이는 눈과 은은한 랜턴 불빛, 고퀄리티 실사풍, 보케, 광원, 16:9

텐트가 자리를 잡자, 그제야 그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캠핑장에는 몇 팀이 있었다. 멀리서 들리는 건 웃음소리보다는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장작을 쪼개는 소리, 눈을 털어내는 소리, 누군가가 끓이는 물의 보글거림. 겨울 캠핑은 여름처럼 시끌벅적하지 않다. 대신 작은 소리들이 더 선명해진다. 그 선명함이 낭만이었다.

그는 랜턴을 걸고, 의자를 펴고, 작은 테이블을 세웠다. ‘집’을 만드는 과정이 끝나갈수록 마음은 안정됐다. 인간은 공간을 만들 때 마음을 만든다. 바람이 막히는 방향으로 의자를 옮기고, 발밑에 단열 매트를 깔고, 담요를 두 겹 올렸다. 사소한 배치가 생존의 디테일이 된다.

겨울 캠핑의 ‘낭만’은 불빛의 크기만큼 커진다. 랜턴의 작은 빛이 어둠을 밀어내는 순간, 마음에도 작은 방이 하나 더 생긴다.

그는 모닥불을 피우기 전, 물부터 끓였다. 뜨거운 물 한 컵은 겨울에선 의식 같은 것이다. 손을 감싸고, 속을 덥히고, “나는 여기에서 괜찮다”라는 신호를 몸에 보내준다. 컵에서 올라오는 김이 안경을 뿌옇게 만들었다. 그는 잠깐 웃었다.

“겨울이 나를 안개로 만들고 있네.”

모닥불을 피우려는데 라이터 불꽃이 바람에 자꾸 눌렸다. 그는 바람막이 뒤에 몸을 숨기고 다시 불을 붙였다. 마른 장작이 ‘탁’ 하고 소리를 내며 불을 받는 순간, 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불이 생기자 눈도 달라 보였다. 차갑기만 하던 눈이 불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였다. 그는 그 반짝임을 보며, “겨울은 빛을 잘 받는 계절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저녁은 단순했지만 이상하게 근사했다. 그는 미리 준비해온 재료로 뜨끈한 국물을 끓였다. 김이 올라오고, 향이 퍼지고, 눈 속의 공기가 잠깐 음식 냄새로 바뀌었다. 겨울의 배고픔은 여름과 다르다. 더 깊고, 더 빠르게 찾아온다. 그리고 따뜻한 음식을 먹으면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어깨가 내려가고, 숨이 길어지고, 마음이 느슨해진다.

혼자 먹는 밥인데도, 그는 괜히 예의를 차렸다. 접시를 깨끗이 닦고, 국물을 천천히 떠먹고, 뜨거운 그릇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마치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처럼. 사실 겨울의 자연은 늘 누군가처럼 곁에 있다. 바람은 말이 없고, 눈은 표정이 없지만, 그 존재감만으로도 충분히 동행이 된다.

모닥불 앞에서 따뜻한 음식을 준비하는 캠핑 테이블, 눈 내리는 밤의 랜턴 조명, 고퀄리티 실사풍, 보케, 광원, 16:9

식사 후, 그는 잠깐 캠핑장 길을 걸었다. 눈이 두껍게 쌓여 발목이 푹푹 빠졌다. 발을 뺄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겨울의 사인처럼 느껴졌다.

“너는 지금 겨울 속을 걷고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얇게 깔려 별은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하늘은 더 넓어 보였다. 눈이 계속 내려서 공기가 조금 밝았다. 도시의 겨울밤은 어둡지만, 산의 겨울밤은 눈이 빛을 반사해서 의외로 환하다. 그 환함 속에서 그는 잠깐 어린애가 됐다. 손바닥을 펴서 눈송이를 받으며, 모양이 사라지기 전에 관찰했다.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바쁘게 살던 시간에도, 눈은 어딘가에서 이런 속도로 내리고 있었겠지.”

나는 그걸 놓쳤고. 그러면 내가 놓친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계절, 사람, 말, 마음. 지금 이렇게 겨울 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이, 그 놓침들을 조금은 보상해주는 것만 같았다.

“낭만은 멀리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너무 빨리 지나쳐서 못 볼 뿐이다.”

텐트로 돌아오자, 불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는 장작을 하나 더 올렸다. 불꽃이 커지고, 얼굴이 따뜻해졌다. 그 따뜻함은 단순한 온도가 아니었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잘 버티고 있다”

는 성취감의 온도였다. 그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만 바라봤다. 불은 늘 적당한 속도로 시간을 태운다. 급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다. 그 속도에 맞추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이때, 옆 사이트에서 들려오는 작은 웃음소리가 있었다. 누군가가 “손 시려”라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가 “장갑 끼라니까”라며 웃었다. 그 짧은 대화가 이상하게 따뜻했다. 낯선 사람들의 일상은 때때로 내 마음을 대신해준다. 내가 잊고 있던 평범함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밤이 깊어지자, 폭설은 더 조용해졌다. 이상하게도 눈이 많이 내릴수록 소리가 줄어든다. 숲이, 땅이, 공기가 눈을 받아들이면서 모든 소음을 흡수하는 느낌이다. 그 고요 속에서 그는 더 선명하게 자기 생각을 들었다. 그가 요즘 왜 자꾸 지치는지, 무엇이 그를 무겁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앞으로 가는지.

그는 핸드폰을 꺼내려다 말았다. 오늘은 화면 대신 불빛과 눈빛을 보고 싶었다. 세상과 연결된 끈을 잠깐 풀어놓고, 자신과 연결된 끈을 다시 잡고 싶었다. 그는 불 앞에서 손을 비비며, 자신에게 질문했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답은 쉽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겨울은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겨울은 질문만 남겨두고, 그 질문이 자연스럽게 몸속에서 익어가게 한다. 그는 그런 겨울의 태도가 좋았다. 누군가처럼 설교하지 않고, 다만 존재로 가르친다.

눈 내리는 숲속 밤, 모닥불 불빛과 랜턴이 텐트를 비추는 고요한 캠핑 장면, 고퀄리티 실사풍, 보케, 광원, 16:9

그는 침낭을 꺼냈다. 침낭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특유의 안도감이 있다. 바깥의 추위가 아무리 날카로워도, 그 안에서는 몸이 조금씩 풀린다. 그는 핫팩을 발끝에 넣고, 목도리를 베개처럼 말아 목 뒤에 받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텐트 밖 소리를 한 번 더 들었다.

바람은 약해졌고, 눈은 계속 내려서 텐트 위에 작은 두드림을 만들었다. ‘톡, 톡, 톡.’ 그 소리는 마치 겨울이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도 도망치지 않았다. 그냥 내 삶에서 잠깐 빠져나와 숨을 쉬고 있다.”

잠이 들기 직전, 그는 문득 떠올렸다. 어릴 때, 눈 오는 날은 늘 설렜다. 학교가 쉬어도 좋았고, 길이 하얘도 좋았다. 그때의 설렘은 이유가 없었다. 그냥 눈이 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눈은 불편함의 상징이 됐다. 차 막히고, 미끄럽고, 옷 젖고. 그는 오늘 그 이미지를 다시 바꾸고 싶었다. 눈을 ‘낭만’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 생각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겨울의 고요 속으로 천천히 잠수했다.

새벽은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텐트 천이 옅은 회색으로 바뀌고, 바람 소리 대신 아주 작은 ‘사각’거림이 들렸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가 차가워 폐가 잠깐 놀랐다. 하지만 그 놀람이 오히려 살아 있다는 감각을 줬다.

텐트 지퍼를 열자,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밤새 내린 눈이 텐트 주변을 덮었고, 나무들은 더 무거운 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캠핑장 길은 새로 생긴 길처럼 보였다. 어제의 발자국은 모두 사라졌고, 어제의 시간도 같이 덮인 느낌이었다. 마치 오늘이 새로 시작된 날처럼.

폭설 뒤 이른 아침, 눈으로 뒤덮인 숲과 캠핑장 풍경, 차가운 공기와 은은한 햇빛, 고퀄리티 실사풍, 보케, 광원, 16:9

그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발을 내딛는 순간, 눈이 종아리까지 올라왔다.

“이 정도면 진짜 왔네.”

그는 혼잣말로 웃었다. 웃음이 입에서 나오자마자 하얀 김이 되어 흩어졌다. 겨울은 사람의 감정을 곧장 눈에 보이게 만든다. 숨, 말, 웃음, 한숨. 전부 김으로 변해 공중에 떠다닌다.

모닥불 자리는 밤새 꺼져 있었다. 재만 남아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장작을 다시 쌓고 불을 붙였다. 어제보다 더 능숙했다. 전날의 경험이 손에 남아 있었다. 겨울에서는 하루만 지나도 사람이 조금 달라진다. 생존에 관한 감각이 하나 더 생긴다.

불이 살아나자 그는 물을 끓였다.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만들고, 간단한 아침을 준비했다. 빵 한 조각, 치즈, 따뜻한 수프. 그는 그걸 먹으며 주변을 바라봤다. 멀리서 다른 캠퍼들도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서로 눈을 마주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말은 많지 않았다. 겨울에는 말보다 공기가 더 많은 걸 전달한다.

“추웠죠?”

“그래도 좋죠?”

“오늘은 안전하게.”

이런 것들이 말 없이 오간다.

그는 마음속으로 기록했다. “내가 원한 건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이런 아침이다. 눈이 만든 새하얀 페이지 위에 내가 숨을 쉬는 아침.”

낭만은 거창한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손끝이 따뜻해지는 순간, 커피 향이 코를 채우는 순간, 그리고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들로 만들어진다.

그는 캠핑장을 나서기 전에, 주변 정리를 더 꼼꼼히 했다. 눈 속에서는 쓰레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주의해야 한다. 그는 작은 비닐조각 하나까지 주워 담으며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남기고 싶은 건 발자국뿐이다.”

하지만 발자국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게 자연의 방식이다. 자연은 사람의 흔적을 오래 붙잡지 않는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다녀야 한다.

차로 향하는 길, 그는 다시 한 번 숲을 올려다봤다. 나무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침묵이 얼마나 많은 말을 포함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견딤, 기다림, 받아들임, 그리고 다시 시작.

돌아가는 길은 ‘마무리’가 아니라 ‘회수’였다. 그가 이곳에서 얻은 감각들을 다시 삶으로 가져가는 과정. 폭설 속 캠핑이 낭만이 되려면, 그 낭만이 일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는 차에 올라 히터를 켜고, 천천히 출발했다. 전날보다 도로는 더 흰색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전날보다 더 단단했다.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전, 그는 잠깐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 공기가 그대로 들어왔다. 차가운 공기 속에 소나무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는 그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고맙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정확히 몰랐다. 겨울에게, 숲에게, 혹은 자신에게.

눈 덮인 산자락과 도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강원도 겨울 풍경, 고퀄리티 실사풍, 보케, 광원, 16:9

운전하면서 그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낭만을 쉽게 말하지만, 낭만은 쉽게 오지 않는다. 낭만에는 대가가 있다. 추위, 번거로움, 시간, 그리고 ‘나가야 한다’는 결심. 그는 그 대가를 치렀고, 그래서 낭만을 조금 얻었다. 그리고 그 낭만은 사진첩 속에만 남는 게 아니라, 몸에 남았다. 손끝의 기억, 코끝의 공기, 불빛의 잔상, 눈길의 소리. 그 모든 것이 그를 조금 더 살아 있게 만들었다.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눈은 줄어들었다. 길은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오고, 간판은 다시 밝아졌다. 사람들은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조금 느리게 움직였다. 그는 그 속도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라디오를 끄고, 조용히 운전했다. 조용함 속에서만 지켜지는 감각이 있으니까.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짐을 바로 풀지 않았다. 현관에 가방을 내려놓고, 잠깐 서서 숨을 고르며 오늘을 정리했다.

“나는 결국 돌아왔고, 아무 일도 없었고, 그런데도 내 안에는 무언가가 바뀌었다.”

그 변화는 작은 것이었다. 하지만 작은 변화가 사람을 오래 데운다.

그는 알게 됐다. 폭설 속 강원도 캠핑에서 얻은 낭만은 ‘추억’이 아니라 ‘기준’이 된다는 것을. 앞으로 어떤 겨울이 와도, 그는 그날의 불빛과 눈빛을 떠올리며 버틸 수 있을 거라고.

그날 밤, 그는 따뜻한 방 안에서 다시 창밖을 봤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은 더 이상 불편함의 상징이 아니었다. 눈은 이제 ‘가능성’이었다. “오늘도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계절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

그는 침대에 누워, 손끝을 한 번 더 비볐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모닥불의 온도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착각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가끔 착각으로도 따뜻해진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삶을 움직인다.

며칠 뒤, 그는 친구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강원도 다녀왔다. 폭설인데도 진짜 좋더라.”

친구는

“미쳤냐”

라고 답했고, 그는 웃으며

“그래도 살아있더라”

라고 덧붙였다. 그 말은 장난 같았지만 진심이었다. 살아있다는 건, 몸이 움직이고 심장이 뛴다는 뜻만이 아니라, 내가 느낀다는 뜻이니까.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지하철을 타고, 시간을 맞추며 살았다. 그런데도 그날의 눈길은 자주 떠올랐다. 어떤 날은 회의실의 건조한 공기 속에서, 어떤 날은 퇴근길 신호등 앞에서, 어떤 날은 잠들기 직전 어두운 방에서. 그때마다 그는 마음속으로 작은 불을 피웠다. ‘나는 겨울을 통과해봤다.’

그 경험은 그에게 묘한 자존감을 줬다.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계절을 제대로 한 번 살아냈다는 자존감. 도시에서 살다 보면 계절이 이벤트로만 소비된다. 봄에는 벚꽃 사진, 여름에는 바다 사진, 가을에는 단풍 사진, 겨울에는 카페 창문에 맺힌 성에 사진. 하지만 그는 사진이 아니라 ‘몸’으로 겨울을 가졌다. 그래서 겨울은 그에게 더 이상 외부의 풍경이 아니라 내부의 기억이 됐다.

그는 다음 겨울을 계획하지 않았다. 계획은 낭만을 좁히기도 한다. 대신 그는 마음 한구석에 작은 여백을 남겨뒀다. 눈이 내리는 날, 바람이 분다 싶은 날, 갑자기 떠나고 싶은 날. 그 여백이 그를 다시 움직일 것이다.

겨울 도시의 밤,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과 따뜻한 실내 조명 대비, 고퀄리티 실사풍, 보케, 광원, 16:9

그리고 그는 알게 됐다. 낭만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낭만은 어느 날 결심한 사람에게, 그날의 날씨가 선물하는 것이다. 폭설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을 감수하고 나가면 폭설은 세상을 새로 칠해준다. 모든 것이 흰색이 되고, 소음이 줄고, 마음의 속도가 느려지고, 오래된 생각들이 눈 아래로 가라앉는다.

폭설이 내린 날 강원도로 떠난 그 청년은, 결국 ‘낭만’을 경험하고 돌아온 게 아니었다. 그는 낭만을 ‘만들고’ 돌아왔다. 눈길 위에 텐트를 치고, 불을 피우고, 뜨거운 컵을 감싸 쥐며, 자신에게 말해줬다. “괜찮다. 나는 해낼 수 있다.” 그 말이야말로 낭만의 핵심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의 겨울은 조금 덜 차가워졌다. 왜냐하면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이 내리는 밤에도, 바람이 세찬 숲에서도, 작은 불빛 하나면 충분하다는 걸. 그리고 그 불빛은 바깥의 모닥불만이 아니라, 마음속에서도 피울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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