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망해서 컵라면 먹던 30대, '비누 거품' 하나로 인생 역전하다
떠난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은, 남겨진 생명에게도 똑같이 남는다. 손자가 품에 안아 키웠지만, 끝내 한 번 더 그 품을 찾아가는 이야기.
마당의 흙은 그날 유난히 무거웠다. 발자국이 찍히면 오래 남을 것 같은 젖은 흙이었다. 손자 민호는 검은 외투 소매로 얼굴을 한 번 훔치고, 삽자루를 더 깊이 쥐었다. 흙을 퍼 올릴 때마다 물기가 섞인 냄새가 올라왔고, 그 냄새는 이상하게도 할아버지의 작업복 냄새와 닮아 있었다. 마치 오래된 창고에서 나무와 기름과 햇볕이 뒤섞인 냄새 같은 것. 민호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걸 느꼈다.
그 곁에서 작은 개 한 마리가 울지 못한 울음을 몸으로 내고 있었다. 귀는 축 늘어져 있었고, 꼬리는 힘없이 바닥을 쓸었다. 이름은 ‘봄이’였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불렀다. “봄이야, 봄은 꼭 온다.” 그 말은 개에게 하는 말이면서도, 사실은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장례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간 뒤, 집에는 낯선 정적이 들어앉았다. 정적은 시간처럼 천천히 번졌고, 집 구석구석에 ‘없음’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사람이 빠져나간 모양 그대로 공기가 남았고, 부엌 싱크대 아래에는 “봄이 밥 줬냐” 하고 묻던 목소리가 사라진 채로 흰 타일만 반짝였다.
민호는 그날 밤, 할아버지 방 문을 열지 못했다. 손잡이를 잡았다 놓기를 몇 번, 결국 문 앞에 앉아 숨만 골랐다. 그때 옆에서 봄이가 조용히 걸어와 민호의 무릎에 턱을 올렸다. 따뜻한 체온이 얇은 바지를 뚫고 전해졌다. 민호는 고개를 숙여 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털은 정갈했고, 그 안에 아직 할아버지의 손길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내가 할게.” 민호가 말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이었다. 봄이는 ‘응’이라는 대신, 민호의 손등을 혀로 한 번 핥았다. 짠맛이 났다. 민호가 언제 울었는지 알 수 없었다. 눈물이 흘러도 자신의 얼굴이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민호는 할아버지의 습관을 따라 했다. 눈을 뜨면 먼저 커튼을 열고, 마당을 한 번 바라보고, 주전자에 물을 올려두는 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 봄이의 밥과 물을 챙기는 일이었다. 사료 봉지를 열자 고소한 냄새가 났다. 민호는 그 냄새를 맡고 잠깐 멈칫했다. 할아버지가 봄이 밥 줄 때마다 “자, 오늘도 씩씩하게 먹자” 했던 목소리가 귀에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봄이는 밥그릇 앞에 앉아도 먹지 않았다. 고개만 살짝 숙여 냄새를 맡고, 이내 거실 쪽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자리. 그쪽에서 누군가가 “먹어라” 하고 말해주길 기다리는 듯했다. 민호가 “봄이야, 먹자” 해도 봄이는 꼼짝하지 않았다.
민호는 그제야 알았다. 봄이는 밥을 먹으려는 게 아니라,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함께 살면 사람과 개 사이에도 ‘규칙’이 생긴다. 밥 먹기 전에 손바닥을 보여주고, 눈을 마주치고, 아주 짧게 허락을 받는 규칙. 할아버지가 만들고 지킨 규칙이었다. 민호는 떨리는 손으로 손바닥을 폈다. 할아버지가 늘 하던 것처럼 말해보았다.
“자… 봄이야, 먹어.”
그제야 봄이가 고개를 내려 사료를 한 알, 천천히 씹었다. 그리고 다시 한 알. 마치 그 알갱이 하나하나가 ‘오늘도 살아야 한다’는 확인처럼 느려졌다. 민호는 밥을 먹는 봄이를 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안도의 숨과 동시에, 마음 한쪽이 더 시려졌다. 할아버지가 하던 것을 흉내 내는 순간이,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증거 같아서.
며칠이 지나자 민호는 ‘집’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있는 집, 봄이가 있는 집,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지켜야 하는 집. 민호는 도시에서 자취를 하다 급히 내려온 참이었다. 잠깐만 정리하고 다시 올라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집 안을 걸어 다닐수록, 그 계획은 자꾸 뒤로 밀렸다. 누군가는 남아야 했다. 봄이도, 이 집도, 무엇보다도 할아버지의 흔적이 너무 선명해서.
봄이는 하루 종일 창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창틀에 턱을 얹고 마당을 바라보며, 가끔 낮게 ‘낑’ 소리를 냈다. 민호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창문 밖으로 나가 할아버지가 자주 서 있던 마당 구석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작은 나무의자 하나가 있었고, 겨울바람에 낡은 담요가 흔들렸다. 할아버지는 그 의자에 앉아 봄이의 털을 빗기고, 손톱을 깎고, 가끔은 마당의 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사람이 말이야, 결국은 기다림이더라.”
봄이는 그 기다림의 의미를 몸으로 배운 듯했다. 현관 쪽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귀가 번쩍 서고, 발소리가 들리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러나 문이 열려도 할아버지는 없었다. 민호였다. 민호는 그때마다 미안해졌다. 자신이 봄이에게 ‘실망’을 주는 존재가 된 것 같아서. 그래서 일부러 발소리를 죽이며 들어오기도 했다. 봄이가 더 상처받지 않도록.
민호는 어느 순간부터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게 아니라, 그 빈자리를 ‘함께 견디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채우려 하면 더 크게 비어 보이니까, 그냥 옆에 앉아 있기로.
첫 번째 눈이 내리던 날, 민호는 방 안에서 상자를 하나 꺼냈다. 할아버지의 서랍에서 나온 상자였다. 낡은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젊은 시절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이였던 민호의 아버지. 그 옆에는 봄이가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봄이가 생각보다 훨씬 오래 이 집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민호는 날짜를 세어보며 놀랐다. 봄이는 할아버지의 노년과 거의 같은 길을 함께 걸었다. 늙어가는 속도가 달랐을 뿐, 함께 늙고 있었던 셈이었다.
사진 속 할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봄이는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아주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민호는 사진을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너는… 진짜 할아버지랑 한몸이었구나.” 그 말에 봄이는 사진을 향해 코를 들이밀었다. 킁킁 냄새를 맡았다. 종이 냄새뿐인데도, 봄이는 무언가를 찾는 눈이었다. 민호는 사진을 살짝 바닥에 내려놓았다. 봄이는 그 사진 위에 코를 대고, 아주 조심스럽게 혀로 한 번 핥았다.
그 순간 민호는 확실히 느꼈다. 이 아이는 ‘기억’을 살고 있었다. 냄새로, 소리로, 습관으로, 그 사람의 세계를 계속 붙잡고 있었다. 사람은 사진과 글로 기억을 붙잡지만, 개는 하루의 루틴으로 기억을 붙잡는지도 몰랐다. 할아버지가 사라져도, 루틴이 끊어지면 기억이 끊어질까 봐, 봄이는 계속 같은 자리를 지키는지도.
며칠 후 민호는 결심했다. 할아버지가 자주 가던 길을 봄이와 함께 걸어보기로. 마을 뒤편으로 이어지는 둑길, 논을 끼고 돌아가는 좁은 길, 겨울엔 바람이 세게 불어 얼굴이 얼얼해지는 길. 할아버지는 그 길을 “내 생각 정리하는 길”이라고 불렀다. 봄이는 그 길을 “할아버지 만나는 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목줄을 채우려 하자 봄이가 잠깐 움찔했다. 할아버지는 목줄을 채울 때마다 “아프지, 미안하다”라고 말하며 아주 천천히 채웠다. 민호도 똑같이 했다. “아프지? 미안.” 봄이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얌전히 앉았다. 민호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의 문장을 따라 하면 따라 할수록, 할아버지가 더 또렷해졌고, 동시에 더 멀어졌다.
밖으로 나가자 찬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공기는 깨끗했고, 그 깨끗함이 오히려 잔인했다.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굴러가고 있었다. 민호는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이 이렇게 멀쩡하다는 사실이 가장 낯설었다.
둑길에 오르자 봄이가 갑자기 앞서 달렸다. 민호는 당황해 목줄을 꽉 잡았다. 봄이는 한 번도 이렇게 급하게 달린 적이 없었다. 마치 어디로든 빨리 가야 한다는 듯.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둑길 아래, 작은 갈림길. 할아버지가 늘 잠깐 멈춰 서서 담배를 피우던 자리였다.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봄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집 가자” 하고 다시 걸었다.
봄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을 킁킁 맡고, 허공을 향해 코를 들었다. 바람 냄새를 읽는 듯했다. 민호는 그 옆에 서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봄이의 등에서 이상할 만큼 단단한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야 한다.’ 그런 규칙이 이 자리에도 남아 있는 듯했다.
기다림은 늘 누군가를 향하지만, 때로는 ‘사라진 시간’을 향하기도 한다. 봄이는 사람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사람과 연결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봄이는 더 자주 그 길을 원했다. 민호가 문을 열기만 하면 둑길 방향으로 몸을 틀었고, 목줄을 보면 눈이 잠깐 반짝였다. 하지만 길의 끝은 늘 같았다. 갈림길에서 멈추고, 냄새를 맡고, 잠깐 허공을 바라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 돌아오는 길에서 봄이는 늘 조용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더 조용해졌다. 민호는 그 조용함이 ‘포기’가 아니라 ‘확인’이라고 느꼈다. 오늘도 그 사람은 없다는 확인. 확인은 매번 처음처럼 아팠다.
겨울이 깊어지면서 봄이의 몸도 달라졌다. 먹는 양이 줄었고, 물도 많이 마시지 않았다. 잠은 더 길어졌다. 민호는 처음엔 추워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담요를 더 깔아주고, 온열 매트를 켜주고, 실내 온도를 올렸다. 하지만 어느 날 새벽, 봄이가 갑자기 일어나 문 앞에서 ‘낑’ 하고 울었다. 민호는 놀라 달려갔다. 봄이는 바깥을 보고 있었다. 꼭 누군가가 부르는 것처럼.
민호가 문을 열자, 겨울밤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봄이는 문턱에 서서 망설였다. 한 걸음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가. 민호는 무릎을 굽혀 봄이 눈을 맞추었다. “나가고 싶어?” 봄이는 대답 대신 민호의 손등에 코를 비볐다. 부탁처럼, 그리고 작별처럼.
민호는 결국 두꺼운 패딩을 걸치고 봄이와 밖으로 나왔다. 마을은 잠들어 있었고, 가로등 아래 눈이 희게 쌓여 있었다.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봄이는 둑길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길처럼. 민호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 방향은 묘지로 가는 길이었다. 할아버지가 잠든 곳.
민호는 발걸음을 늦추려 했지만, 봄이는 놀랄 만큼 단호했다. 평소라면 민호가 조금만 속도를 늦춰도 따라오던 아이가, 그날은 앞에서 길을 이끌었다. 목줄은 팽팽했고, 봄이의 작은 발은 눈 위에 또렷한 자국을 남겼다. 그 자국이 마치 글씨처럼 보였다. ‘여기야.’ ‘이쪽이야.’ ‘빨리.’
묘지 입구에 도착했을 때 민호는 숨이 차올랐다. 추위 때문인지, 마음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철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민호는 손전등을 켰다. 빛이 하얀 눈 위에 길을 만들었다. 봄이는 그 빛의 길을 따라 빠르게 걸었다. 민호는 그 뒤를 따라가며 자꾸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이 길을 걸어본 적이 있었다. 제삿날도 아닌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한 번 다녀오자” 했다. 그때도 봄이가 같이 왔었다. 봄이는 묘지의 공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해 보였다.
할아버지 묘 앞에 도착하자 봄이가 멈췄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앉았다. 눈이 내렸지만, 묘 앞은 누군가 다녀간 듯 살짝 눌려 있었다. 민호는 그제야 눈물이 나왔다. 누가 다녀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민호는 이상하게도 ‘봄이가 몰래 와 있었을지도’라는 생각을 했다. 목줄을 풀고 혼자. 그럴 리 없는데도, 그런 상상이 무섭도록 자연스러웠다. 봄이에게는 이 길이 너무 분명했으니까.
봄이는 묘비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앞으로 낮췄다. 마치 절을 하듯이. 민호는 그 모습에 무릎이 풀렸다. 봄이는 낑 소리도, 짖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그 사람의 냄새를 한 번이라도 더 잡으려는 듯했다.
민호는 깨달았다. 봄이의 그리움은 “돌아와”가 아니라 “여기 있었구나”였다. 부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존재를 확인하는 그리움.
민호는 장갑 낀 손으로 눈을 털어 묘 앞을 정리했다. 작은 꽃다발을 가져오지 못한 게 후회됐다. 대신 민호는 주머니에서 할아버지의 낡은 손수건을 꺼냈다. 장례 후, 할아버지 서랍에서 발견한 손수건. 민호는 그 손수건을 묘 앞에 조심히 놓았다. 그리고 봄이 옆에 앉았다.
“할아버지… 봄이가 왔어.” 민호는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도… 왔어.”
봄이는 손수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위에 코를 살짝 눌렀다. 짧은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민호에겐 그 소리가 마치 ‘문이 열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닫혀 있던 문이, 다시 한 번 열리는 소리.
그날 밤, 민호와 봄이는 한참을 묘 앞에 앉아 있었다. 바람이 묘지 나무들 사이로 지나가며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웅성거림 같기도 하고, 멀리서 누군가가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했다. 민호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됐다. 혹시 정말 할아버지가 저 나무 뒤에서 걸어 나올 것 같아서.
하지만 할아버지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봄이가 움직였다. 봄이는 묘비 옆에 몸을 붙이고, 천천히 누웠다. 눈 위에 몸을 기대는 자세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민호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봄이는 눈이 차갑지 않냐는 듯 민호를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민호는 목이 메었다.
민호는 봄이를 안아 들고 내려가려 했다. “집 가자, 응? 여기 있으면 감기 걸어.” 민호가 속삭이자 봄이는 눈을 떴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알아.’라는 뜻 같았다. 그러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민호는 다시 말했다. “가자. 할아버지는… 여기 계시고. 우리는 살아야지.”
그 말이 끝나자, 봄이가 민호의 손목을 혀로 아주 살짝 핥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핥는 힘이 약했다. 민호는 그 약함이 너무 두려웠다. 살아 있는 것들이 약해지는 순간을 보는 일은, 떠나는 준비를 보는 일이니까.
민호는 결국 봄이를 품에 안았다. 체온이 생각보다 낮았다. 민호는 더 꽉 껴안았다. “미안해… 내가 더 잘할게.” 하지만 그 말은 ‘앞으로’를 향한 말인데, 봄이에게 ‘앞으로’가 얼마나 남았는지 민호는 알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봄이는 민호 품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눈송이가 민호의 어깨에 내려앉았고, 그 눈송이는 금방 녹았다. 민호는 그 녹는 속도가, 사람의 사라짐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하얗게 분명한데, 이내 흔적만 남고 사라지는 것.
그날 이후 봄이는 더 자주 할아버지의 방 앞에 누웠다. 민호가 문을 열어두면 방 안으로 들어가, 할아버지의 이불 위에 몸을 말고 잠들었다. 민호는 처음엔 그게 마음 아파서 문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문을 닫으면 봄이는 문 앞에서 새벽까지 기다렸다. 그래서 민호는 문을 열어두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지 모르는 시간이 흘렀다.
민호는 먹는 걸 더 신경 썼다. 따뜻한 닭죽을 조금씩 떠먹여 보기도 하고, 사료에 미지근한 물을 부어 부드럽게 만들기도 했다. 봄이는 조금 먹다가 멈추고, 민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묘하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민호는 그 ‘괜찮아’가 가장 무서웠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괜찮아는, 정말로 떠날 준비가 된 괜찮아니까.
어느 날 밤, 민호는 꿈을 꿨다. 할아버지가 마당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생전과 똑같았다. 손엔 빗이 들려 있었고, 무릎 위엔 봄이가 얌전히 누워 있었다. 할아버지는 민호를 보며 웃었다. “민호야, 고생했다.” 민호는 그 말에 울컥해 달려가려 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꿈속에서 늘 그렇듯, 마음만 앞서고 몸은 뒤따라오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봄이는 내가 데려갈게.”
민호는 놀라 “안 돼요”라고 외치려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봄이가 원해. 네가 못한 게 아니고, 네가 부족한 게 아니야.”
그 말을 하는 할아버지의 눈은 조금 슬펐다. 슬프지만 단단했다. 민호는 그 눈을 보며 알았다. 할아버지는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라, ‘통보’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실을 말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민호가 잠에서 깼을 때, 방 안은 조용했다.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민호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봄이는 할아버지 방 문 앞에 누워 있었다.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숨은 아주 얕았다. 민호는 떨리는 손으로 봄이의 배를 살폈다. 오르내림이 있었다. 살아 있었다. 민호는 숨을 내쉬며 봄이를 조심히 안아 올렸다.
민호는 집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를 만들었다. 창가의 바람이 닿지 않는 곳, 바닥이 차갑지 않은 곳. 그리고 그 옆에 자신도 앉았다. 밤마다 민호는 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봄이가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민호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할아버지, 나 어릴 때 자전거 넘어졌을 때 기억나? 피 나는데도 괜찮다고 했는데… 사실 엄청 아팠어. 그때 할아버지가 나 업고 집까지 왔잖아.”
“봄이 너 그때 옆에서 뛰어오던 거 기억나? 너도 놀랐지. 막 짖지도 못하고 내 얼굴만 핥았잖아.”
민호는 웃다가 울었다. 울다가 웃었다. 봄이는 눈을 감은 채로 민호 목소리를 들었다. 가끔 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민호에게는 대답처럼 느껴졌다.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이 아주 약하게 마당에 스미기 시작했다. 풀잎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바람의 냄새가 바뀌었다. 민호는 그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봄이는 이름처럼 봄을 기다려왔을 텐데, 정말로 봄을 보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민호는 매일 오전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에 봄이를 잠깐씩 안고 마당으로 나갔다. 따뜻한 햇살을 등에 받게 했다.
봄이는 햇살을 받으면 눈을 조금 떴다. 그리고 아주 작게, 꼬리를 흔들었다. 민호는 그 꼬리 흔듦이 마치 ‘고마워’처럼 보여 가슴이 아렸다. 사람은 고맙다고 말하며 살아가지만, 어떤 고마움은 말로 하면 너무 늦어버린다. 그래서 민호는 그냥 더 오래 품에 안았다.
그러던 어느 날, 봄이는 갑자기 기운을 내는 듯 보였다. 아침에 물을 조금 더 마셨고, 사료도 몇 알 더 씹었다. 민호는 반짝 희망이 솟았다. “그래, 봄이야. 봄 오기 직전이라 그런가 봐.” 민호는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오후, 봄이는 다시 조용해졌다. 조용함이 더 깊어졌다. 민호는 불안해져서 동물병원에 데려가려 했지만, 봄이는 차에 타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도, 병원 가는 길이면 봄이는 몸을 떨며 창밖만 바라봤다. 민호는 망설였다. 병원으로 끌고 가는 일이 ‘봄이를 위한’ 것인지, ‘민호 자신을 위한’ 것인지 분간이 안 됐다. 붙잡고 싶어서, 놓치기 싫어서, 그래서 치료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사는 건 아닐까.
민호는 결국 결심했다. 봄이가 가장 편한 곳에서, 가장 익숙한 냄새 속에서, 민호의 손길을 느끼며 시간을 보내게 하자고. 치료가 불가능한 마지막이라면, 공포 없이 보내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그날 밤 민호는 할아버지 방에 담요를 더 깔고, 봄이를 그 위에 눕혔다. 그리고 자신도 옆에 누웠다. 민호는 봄이의 몸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손끝에 얇아진 뼈가 느껴졌다. 민호는 속으로 몇 번이나 ‘미안해’를 되뇌었다. 미안해는 늘 늦게 오는 말이었다.
봄이는 갑자기 몸을 조금 일으켰다. 민호는 놀라 “왜, 괜찮아?” 하고 물었다. 봄이는 민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민호의 손을 핥았다. 한 번. 두 번. 마치 ‘이제 됐어’라고 말하는 듯한 속도였다.
그리고 봄이는 고개를 문 쪽으로 돌렸다. 할아버지 사진이 걸려 있는 쪽이었다. 민호는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 속 할아버지는 늘 그랬듯,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민호는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봄이 왔어. 이제… 데려가도 돼?”
그 말이 끝나자, 봄이가 아주 작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숨이 너무 길어서 민호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리고 다음 숨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기다렸다. 기다렸다.
하지만 봄이의 가슴은 더 이상 오르내리지 않았다.
민호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손은 봄이의 등 위에 그대로 있었다. 따뜻함이 빠져나가는 속도를 손끝으로 느끼는 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감각이었다. 민호는 울지도 못했다. 울면 봄이가 놀랄 것 같아서. 이미 숨이 멎었는데도, 민호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은 이성보다 오래 남는다.
민호는 결국 얼굴을 담요에 묻고 소리 없이 울었다. 소리 없는 울음은 몸을 더 망가뜨렸다. 갈비뼈가 안쪽에서 떨리는 느낌, 목구멍이 타는 느낌, 눈물은 뜨겁고 손은 차가운 느낌. 민호는 겨울밤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아니, 봄이와 함께 남겨진 것 같았다. 이제는 정말로 혼자였다.
하지만 또 동시에, 민호는 이해했다. 봄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봄이는 ‘그 사람’에게 갔다. ‘그 사람 곁’으로 갔다. 민호는 그 문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찢어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아주 작은 평온을 얻었다. 봄이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더 이상 현관 소리에 가슴이 철렁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더 이상 밤마다 허공에 코를 들이대며 ‘어디 있지’ 하고 찾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민호는 봄이를 잃었지만, 봄이는 오히려 ‘기다림’을 내려놓았다. 남겨진 사람만이, 계속 기다린다.
장례를 치르는 방식은 간단했다. 민호는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아, 작은 나무상자를 마련했다. 봄이의 몸은 놀랄 만큼 가벼웠다. 민호는 그 가벼움에 몇 번이나 멈춰 섰다. ‘이렇게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렇게 큰 그리움을 품고 살았을까.’
민호는 봄이를 할아버지 묘 옆에 묻었다. 묘 옆, 할아버지가 생전에 “여기 공기 좋지” 하며 서 있던 자리. 민호는 삽으로 흙을 덮으며 숨을 쉴 때마다, 입 안에 흙 냄새가 들어왔다. 그 냄새는 다시, 할아버지의 작업복 냄새와 닮아 있었다. 시작과 끝이 같은 냄새였다.
흙을 다 덮고 나자 민호는 작은 돌을 주워 무덤 앞에 올려놓았다. 꽃 대신 돌. 오래 남는 것. 민호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기도는 잘 못 하지만, 마음을 모으는 건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봄이, 잘 부탁해. 나도… 잘 살게.”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마치 누군가의 손처럼 민호의 목덜미를 살짝 스쳤다. 민호는 순간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민호는 그 바람이 이상하게 따뜻했다고 느꼈다. 착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가끔, 착각으로도 살아간다. 그 착각이 삶을 붙잡아주기도 하니까.
집으로 돌아온 민호는 현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이제는 뛰어나오던 발소리가 없었다. 이제는 낑 소리도 없었다. 조용함이 더 완벽해졌다. 민호는 문손잡이를 잡고,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그래도 살아야지.’
민호는 할아버지의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삐걱거렸다. 할아버지의 무게가 빠져나간 자리를, 이제 민호의 무게가 채우려 했다. 민호는 하늘을 바라봤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봄이를 부르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봄은 꼭 온다.”
봄은 왔다. 하지만 봄이(개)는 떠났다. 민호는 그 사실이 너무 아이러니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웃음은 결국 울음으로 바뀌었다. 민호는 눈물을 닦고, 다시 하늘을 봤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할아버지, 봄이야… 잘 가. 나도, 여기서 계속… 살아볼게.”
그날 이후 민호는 가끔 묘지에 간다. 말 없이 서 있다가, 바람이 불면 고개를 살짝 숙인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는 둑길 갈림길에서 잠깐 멈춘다. 봄이가 멈추던 자리. 민호는 그 자리에서 한 번 숨을 들이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오늘도 확인했어.’
확인은 아프지만, 확인 덕분에 민호는 오늘을 산다. 누군가를 완전히 잊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떠올리며 살아가는 법. 봄이가 남겨준 가장 조용한 수업이었다.
할아버지가 키우던 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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