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망해서 컵라면 먹던 30대, '비누 거품' 하나로 인생 역전하다
민수는
‘평범’
이라는 단어를 믿고 살았다. 결혼을 했고, 직장을 다녔고, 신혼의 벽지를 고르는 순간에도 “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말로 삶을 정리했다. 아내 지연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에게 과한 기대를 걸지 않는 대신, 서로를 “버티게” 해주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민수는 울음이 터질 줄 알았다. 기쁨 때문이 아니라, 몸 안쪽 어디선가 오래 묵은 긴장감이 풀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지연은 산후조리원 창가에 앉아, 아기가 잠든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말하곤 했다.
“이 작은 사람이 우리 인생을 전부 바꾸겠지.”
그때 민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뀌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바뀌는 건 늘 성장의 다른 이름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육아는 큰 사건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작은 것들이, 아주 느리게, 하루의 빈틈을 갉아먹었다. 밤중 수유, 새벽 울음, 아침 출근, 퇴근 후 다시 시작되는 울음. 지연은 하루에 몇 번이나 사과했는지 세지 못했다.
“미안해,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민수도 사과했다.
“미안, 나도… 나도 힘들어.”
하지만 민수의 사과는 종종 ‘자기 변명’과 함께 도착했다.
“회사에서도 요즘 너무 빡세.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싶어.”
지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개 끄덕임이 ‘이해’인지 ‘포기’인지, 민수는 구분하지 못했다. 구분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을 넘어가고 싶었다. 내일이 오기 전까지, 숨이 막히는 방에서 잠깐이라도 문을 열고 싶었다.
아이의 첫 감기는 가족을 더 빠르게 벽으로 몰았다. 열이 오르고, 병원을 오가고, 기침 소리가 밤마다 집을 울렸다. 지연은 잠을 거의 못 잤다. 민수는 출근 시간에 맞춰 잔뜩 예민해졌다.
“나도 아프고 싶다.” 지연이 작게 말했다. “나도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민수는 그 말이 ‘도움 요청’이라는 걸 알면서도, 받아낼 여력이 없었다. 그는 자기 안에서 더 먼저 들리는 목소리를 선택했다. ‘나도 힘들어. 그런데 누가 내 편이야?’
민수는 야근을 핑계로 집 밖에 더 오래 머물기 시작했다. 처음엔 진짜 야근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회사 근처 카페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들어가면 다시 시작될 울음, 다시 시작될 불만, 다시 시작될 “당신은 왜…”라는 문장. 그 문장들은 민수의 귓속에서 맴돌며 자기 혐오로 변했다.
어느 날, 직장 동료 영호가 말했다.
“야, 너 요즘 사람 얼굴이 아니야. 가끔은… 음… 바람 쐬어야지.”
민수는 “그럴 시간 없어”라고 대답했지만, 영호는 한 번 더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집이 전쟁터면 밖에서라도 숨 쉬어야지. 세상에 ‘숨’은 공짜로 주는 곳도 있더라.”
민수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척했다. 모르는 척하는 건, 죄책감과 욕망을 같은 주머니에 넣는 기술이었다. 그 기술은 생각보다 빨리 익혀졌다.
첫 번째 ‘일탈’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처럼 포장되었다. 회식이 길어졌고, 술이 과했다. 지연은 밤에 전화를 여러 번 했지만 민수는 받지 않았다. ‘받으면 더 미안해지고, 미안해지면 집에 돌아가야 한다.’ 민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새벽이 깊어질 무렵, 민수는 낯선 골목에 서 있었다. 네온사인이 빗물에 번지고, 음악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그곳은 ‘사람이 사람을 잊기 위해’ 만든 장소처럼 보였다.
핵심
문제의 출발점은 ‘육아’가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고 받는 방법을 잃어버린 두 사람의 고립입니다.
민수는 ‘사랑’을 찾지 않았다. ‘쾌락’을 찾았다고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가 원한 건 단 하나였다.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 시간. 집에서 그는 늘 부족한 사람이었다. 아내에게는 무심했고, 아이에게는 서툴렀고, 가족에게는 기대만큼 벌지 못하는 남자였다. 그는 매일 ‘역할’ 속에 갇혔다.
그 골목에서, 그 역할은 잠깐 내려놓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돈을 내면, 무슨 말을 해도, 어떤 얼굴을 해도, “괜찮다”는 표정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수는 그 감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때는 몰랐다.
첫 번째 밤은 기억이 흐렸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실수’라는 도장을 찍어주고 싶었다. 실수는 한 번이면 끝나야 한다. 실수는 반성으로 닫히는 문이어야 한다. 하지만 민수의 실수는, 이상하게도 ‘문’이 아니라 ‘복도’가 되었다.
며칠 뒤, 민수는 다시 같은 길을 떠올렸다. 그 길은 지도를 보지 않아도 떠오르는 지름길이 되어 있었다. 집에서 아이가 울고, 지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질수록, 민수는 속으로 그 복도를 걸었다. ‘거기로 가면 잠깐은 조용해.’
그가 가장 잘못한 건, 스스로에게
“나는 피해자다”
라는 말을 자주 해준 것이다. 피해자라는 생각은 죄책감을 마취시키고, 마취는 반복을 부른다.
지연은 민수의 변화에 빨리 적응했다. 적응은 이해가 아니라 ‘학습’이었다. 민수는 귀가 시간이 늦어졌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기 시작했고, 샤워를 더 오래 했다. 향수 냄새가 바뀌었다. 지연은 그 냄새를 설명하지 못했지만,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낯선 냄새는 낯선 세계의 문고리 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 지연은 민수의 셔츠에서 작은 립밤 자국 같은 얼룩을 보았다. 민수는 “회사에서 커피 흘렸나 봐”라고 말했다. 지연은 “그래”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날 밤, 지연은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였다. 그의 대답이 너무 빠르고 매끄러웠기 때문이다. 진실은 보통 더 더듬거린다.
지연은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확인하는 순간, 가정은 ‘전’과 ‘후’로 갈라질 것이었다. 그녀는 ‘전’의 세계를 더 오래 붙잡고 싶었다. 아이가 아빠를 부를 때, 그 말이 무너지지 않게 하고 싶었다.
지연은 거울을 보며 혼잣말했다. “내가 더 잘했으면, 덜 예민했으면….” 그러다가 스스로를 멈춰 세웠다. “아니. 그건 내 책임이 아니야.”
그 문장 하나를 입 밖으로 꺼내는 데, 지연은 거의 한 달이 걸렸다.
결정적인 건 메시지 알림이었다. 민수가 잠든 새벽, 그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지연은 원래 남의 휴대폰을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생활’이라는 단어를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그 새벽은 달랐다. 아이가 울다 겨우 잠들었고, 지연은 지쳐 있었다. 그녀는 잠시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지?’라는 질문에 갇혀 있었다.
화면에는 짧은 문장이 떠 있었다.
“오늘도 올 거야?”
그리고 하트 이모티콘 하나. 지연의 손이 얼었다. 그녀는 더 깊이 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충분했다. 더 보면 자신이 망가질 것 같았다.
아침이 되었을 때, 지연은 민수에게 말했다.
“당신, 어제 어디 있었어?”
민수는 늘 해오던 대답을 꺼냈다.
“회사.”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더했다.
“내가 바보로 보여?”
민수는 그 순간 ‘들켰다’고 느꼈다. 사실은 들킨 게 아니라, 지연이 ‘확신’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둘 사이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실이 아니라 확신이다. 사실은 부정할 수 있지만, 확신은 관계의 토대를 흔든다.
민수는 갑자기 화를 냈다.
“너 왜 내 폰 봐? 그게 정상이지?”
지연은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정상?”
그녀는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렸다.
“정상은, 당신이 가정을 지키는 거였어.”
민수는 처음엔 “한 번뿐이야”라고 말했다. 지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민수는 더 구체적으로, 더 비열하게 변명했다.
“나도 스트레스가 있잖아. 너는 애랑 붙어 있으니까… 나는… 나도 숨 좀 쉬어야 했어.”
지연은 그 말에서,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였는지 깨달았다. 육아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일이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지연이 아이를 안고 서 있는 동안 민수는 ‘숨’을 찾으러 나갔다. 지연은 숨이 막혀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민수는 “사랑이 아니야”라고 덧붙였다. 그 말이 지연에게는 더 잔인했다. 사랑이 아니라면, 더 쉽게 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더 쉽게 가정을 내던졌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연은 아이가 깰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
“당신은…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민수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고 싶었던 게 맞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해버리면 죄가 가벼워질 것 같았다.
관계가 무너지는 공식
고립 → 회피 → 거짓말 → 발각 → 책임 회피 → 신뢰 붕괴. 민수는 ‘행동’뿐 아니라 ‘거짓말’과 ‘합리화’로 관계를 두 번 무너뜨렸다.
그날 이후 민수는 잘해보겠다고 말했다.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려주겠다고도 했다. 퇴근하면 바로 집에 오겠다고 했다. 아이를 더 보겠다고 했다. 지연은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믿는 건, 다시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과는 ‘행동의 고백’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과에는 ‘이해’가 필요했다. 지연이 무엇을 잃었는지, 아이가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 그 손실을 민수가 제대로 바라봐야 했다. 민수는 그걸 못 했다. 그는 너무 빨리 “이제 끝난 거잖아”라고 말했다.
지연은 그 문장에서 다시 무너졌다.
“끝난 게 아니라, 시작된 거야.”
의심은 습관처럼 남았다. 민수가 늦으면 지연은 심장이 빨라졌다. 민수가 잠깐 웃으면 그 웃음이 낯설었다. 지연은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래.”
그러다 다시 스스로를 다잡았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상황이 이상한 거야.”
파탄을 결정한 건 ‘재발’이었다. 민수는 다시 같은 도피를 했다. 이번에는 회식도 없었다. 그는 그냥, 어느 날, 집에서 싸운 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발을 ‘복도’로 옮겼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자연스러웠다.
돌아오는 길에 민수는 자신에게 말했다.
“이번만. 이번만 하면 진짜 끝.”
그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문장은 주문이었고, 주문은 죄책감을 잠깐 잠재웠다.
하지만 지연은 이미 “끝”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민수의 카드 사용 내역에서 낯선 결제를 발견했고, 민수가 급하게 삭제한 흔적을 봤다. 지연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울음은 기대가 남아 있을 때 나온다. 지연의 얼굴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그날 밤, 지연은 아이의 이불을 정리하고, 내일 입힐 옷을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민수에게 말했다.
“우리, 여기까지 하자.”
민수는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 나 미쳤어. 진짜… 나…”
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한 건 알겠어. 그런데 당신의 ‘미안’은 늘 늦게 와. 그리고 늘 똑같아. 다음을 막지 못해.”
이혼은 드라마처럼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서류, 조정, 양육, 돈, 집. 모든 게 일상처럼 진행되었다. 민수는 회사에선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지연은 어린이집 앞에서 다른 부모들과 인사를 했다. 아이는 점점 말을 배웠고, 어느 날은 “아빠 오늘 와?”라고 물었다.
지연은 그 질문 앞에서 숨이 막혔다. 민수도 그 질문 앞에서 무너졌다. 민수는 아이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 “아빠 여기 있지.” 하지만 ‘여기’는 예전의 집이 아니었다. ‘여기’는 주말의 몇 시간, 잠깐의 공원, 정해진 면접교섭 시간이었다.
민수는 어느 날 밤, 빈 원룸에서 혼자 라면을 끓이며 생각했다. 자신이 원했던 건 ‘숨’이었는데, 지금은 숨을 쉬어도 공기가 차갑고 얇았다. 집에서 숨이 막히던 그때보다, 지금의 공기가 더 무서웠다. 그때는 그래도 누군가가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민수는 혼잣말을 했다. “그날, 그 골목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리고 더 중요한 문장을 뒤늦게 붙였다. “아니… 그 전에, 도움을 청했어야 했는데.”
민수는 상담센터 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그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란 사실을 확인받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상담사는 그를 단정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했다. “
당신은 어떤 순간에 가장 외로웠나요?”
민수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 옆에 서 있는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요.”
상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력감이 도피를 부르기도 해요. 그런데 도피는 무력감을 더 키웁니다.”
민수는 그 말을 이해했다. 이해는 했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해는 때때로 벌처럼 늦게 날아온다.
지연도 상담을 받았다. 그녀의 상담은 ‘왜 그랬을까’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지킬까’에 가까웠다. 지연은 배웠다. 책임은 분명히 나뉘어야 한다는 것. 민수의 선택은 민수의 몫이라는 것. 동시에, 자신이 지쳐 쓰러지기 전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약함이 아니라는 것.
“내가 다 해야 한다”는 문장을 버리고, 도움을 구하는 문장을 연습했다. 부모, 친구, 지역 육아 지원, 상담. 하나씩 연결하면서 ‘고립’을 끊어냈다.
도피는 스트레스를 ‘없애지’ 못하고, 관계와 자기 존중을 ‘같이’ 깎아낸다. 한 번의 합리화가 반복의 길이 된다.
아이에게 진실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렸다. 하지만 아이는 분위기를 기억했다. 어른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아이는 표정으로 배운다.
민수는 아이에게 약속했다.
“아빠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될 거야.”
그 약속은 지연에게 하는 것이기도 했고,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연은 민수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 대신 민수의 ‘행동’을 기다렸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시간과 반복으로 생긴다.
몇 달 뒤, 민수는 매주 정해진 시간에 아이를 만났다. 늦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일찍 나왔다. 지연과는 필요한 말만 했다. 민수는 그 거리감이 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거리감이 지연의 생존 방식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민수의 집은 더 이상 ‘가정’이 아니었다. 지연의 집은 여전히 불완전했다. 하지만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가 무너지지 않게 버팀목을 다시 세우려 했다. 그게 가능할지, 완벽할지, 아무도 몰랐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민수는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가정이 무너졌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무너진 건 스트레스가 아니라, 스트레스 앞에서 선택한 도피와 거짓말, 그리고 그에 따른 신뢰의 붕괴였다.
지연은 가끔 아이가 잠든 밤, 부엌 불을 끄며 생각했다. ‘나는 끝까지 버티지 못했나?’ 그러다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버텨야 할 방식이 아니라, 살아야 할 방식으로 방향을 바꾼 거야.’
민수는 가끔 혼자 걷다가 네온사인이 번지는 거리를 멀리서 본다. 예전 같으면 그쪽으로 발을 옮겼을 것이다. 이제는 발을 멈춘다. 그는 알고 있다. 그 길은 ‘숨’이 아니라 ‘파탄’으로 이어지는 복도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아주 늦게, 아주 조용히,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음엔… 도망치지 말자. 말하자. 도움을 청하자. 나 혼자 버티는 척하지 말자.”
작가의 메모
이 이야기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육아·고립·회피가 어떻게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한 가상 서사입니다. 현실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혼자 تحمل(버티기)만 하지 말고 가까운 사람·전문 상담·지역 육아 지원 등 도움의 통로를 찾아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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