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망해서 컵라면 먹던 30대, '비누 거품' 하나로 인생 역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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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비누 거품 속에서 다시 희망을 쏘아 올린 한 청년의 인생 역전 드라마를 작성해 드립니다. MZ세대의 감각과 끈기로 세차장 사장님이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마스크 뒤에 감춰진 눈물, 그리고 비누 거품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상처를 딛고 일어선, 우리 주변의 청년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한때는 잘나가는 스타트업 대표를 꿈꿨으나, 바이러스라는 불가항력 앞에 모든 것을 잃고 신용불량자 직전까지 몰렸던 31세 청년 '준호' 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손이 거친 타이어를 만지며 어떻게 다시 빛나게 되었는지, 그 치열했던 3년의 기록을 시작합니다. 화려했던 오픈, 그리고 예고 없던 폐업 통보 2019년 겨울, 준호 씨는 부모님의 도움과 대출을 끌어모아 홍대 인근에 퓨전 요리 주점을 열었습니다.  인스타그램 감성을 자극하는 인테리어와 독특한 메뉴 덕분에 오픈 초기에는 웨이팅이 생길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나도 이제 영 앤 리치(Young & Rich)가 될 수 있겠다" 는 꿈에 부풀어 있었죠. 하지만 그 꿈은 단 3개월 만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코로나19가 터졌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녁 9시 영업 제한, 5인 이상 집합 금지. 술장사를 하는 그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월세 400만 원은 고스란히 빚이 되어 쌓였고, 아르바이트생들을 내보내고 혼자 주방을 지켰지만, 하루 매출 0원을 찍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결국 준호 씨는 1년 만에 권리금은커녕 원상복구 비용까지 빚을 지고 가게를 폐업해야 했습니다. 한순간에 떨어진 나락, 컵라면과 배달 대행 가게를 정리하고 남은 건 1억 원이 넘는 빚과 패배감뿐이었습니다. 준호 씨는 보증금을 뺀 돈으로 신림동의 2평 남짓한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한때 '사장님' 소리를 듣던 그는 이제 배달 대행 오토바이를 타는 라이...

중식 중년 요리사, 파스타 장인이 되다

중식 중년 요리사, 파스타 장인이 되다

웍의 불꽃에서 시작해, 면의 숨결로 완성되는 한 사람의 두 번째 인생.

불맛과 올리브오일 중년의 재시작 한 그릇의 구원 면의 온도
밤의 주방, 불빛 아래 놓인 웍과 파스타 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한 프레임에 겹쳐 보이는 장면

사람들은 그를 “왕 사부”라고 불렀다. 가게 간판에는 그렇게 적혀 있지 않았지만, 시장 골목에서 그 이름은 일종의 약속이었다. 소스가 바닥에 눌어붙는 소리, 뜨거운 기름이 파를 만나 폭발하듯 피어오르는 향, 냄비 뚜껑을 열자마자 솟는 김의 방향까지도 그가 잡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중식당 주방에서 삼십 년을 살았다. 살았다는 말이 어울렸다. 집보다 주방이 익숙했고, 가족사진보다 주문표가 친숙했다.

그의 본명은 성민재였다. 하지만 민재라는 이름은 주방에서 거의 불리지 않았다. 장년의 요리사는 언제나 역할로 불렸다. “사부님.” “셰프님.” “형님.” 그리고 골목에서는 “왕 사부.”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이름보다 불길과 손놀림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불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사람을 소모시켰다.

그날도 그는 새벽에 가게 문을 열었다. 상가 셔터를 올리며 어깨가 뻐근했지만, 뻐근함은 늘 그랬다. 기름통을 들고 들어가 냄비를 닦고, 칼을 갈고, 양배추를 썰고, 파를 다지고, 고기를 재웠다. 모든 동작이 자동이었다. 자동이라는 건 숙련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고, 때로는 삶이 닳아버린 흔적이기도 했다.

점심 장사가 시작되자 주문표가 쏟아졌다. 짜장 둘, 짬뽕 셋, 탕수육 하나, 유산슬, 깐풍기. 민재는 웍을 달구고 손목으로 불을 흔들며, 불과 대화했다. 불은 까다롭고 솔직했다. 방심하면 바로 응징했다.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손등에 얇은 흉터가 늘어가는 대신, 손놀림은 더 정확해졌다.

그의 인생에 파스타가 들어온 건,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래 누적된 균열의 결과였다. 균열은 대개 작고 사소한 얼굴로 온다. 단골의 한마디, 납품업체의 늦은 배송, 배달앱 수수료의 상승, 알바생의 무성의,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손가락 관절이 굳는 느낌. 민재는 그 모든 것을 “시대가 그렇지”라고 넘겼다. 그러나 시대는 늘 그렇다는 말로 넘어갈 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그는 먼저 냄비가 알게 했다고 믿었다. 국물이 남는 날이 늘었다.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예전엔 짬뽕 국물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다 퍼졌는데, 이제는 마지막 한 국자가 남았다. 마지막 한 국자가 남는 순간이 반복되면, 결국엔 냄비가 반쯤 남는다. 그리고 어느 날, 주문이 끊긴다. 그건 돈의 흐름이 아니라, 리듬이 끊기는 느낌이었다. 주방의 리듬이 끊기면 사람의 마음도 끊긴다.

그해 겨울, 민재는 허리를 다쳤다. 정확히는, 허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다쳐 있었는데 그날 드러났다고 해야 했다. 새벽에 큰 냄비를 옮기다가 찌릿, 하고 전기가 흐르듯 통증이 왔다. 그는 습관대로 이를 악물고 버티려 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웍을 들 손목이 떨렸다. 불 앞에서 손목이 떨리는 순간, 그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그는 누구보다 불을 믿었고, 불이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 믿었는데, 불은 그를 지켜주지 않았다. 불은 원래 그런 존재였다. 뜨겁고, 공평하고, 누구 편도 아니었다.

비어 있는 주방, 손잡이가 닳은 냄비와 벽에 걸린 칼들이 조용히 빛나는 장면

진통제를 먹고도 통증이 가시지 않자, 그는 병원에 갔다. 의사는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재는 웃었다. 쉬라는 말은 늘 다른 사람의 삶에만 가능한 조언 같았다. 주방은 쉬지 않는다. 가게는 쉬지 않는다. 사장이 쉬면 가게도 쉰다. 가게가 쉬면 돈도 쉰다. 돈이 쉬면 생활이 흔들린다. 흔들리면 가족이 힘들어진다. 이 논리는 너무 단단해서, 의사의 말이 틈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은 더 단단했다. 며칠 후, 그의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그만 쉬어. 가게도… 잠깐만.” 아내의 목소리는 단호하지 않았다. 단호함 대신, 오래 참아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얇은 떨림이 있었다. 민재는 그 떨림이, 자기 허리보다 더 아프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숫자를 떠올렸다. 월세, 재료비, 인건비, 카드 수수료, 배달앱. 숫자가 머리를 채우면 감정이 잠시 비켜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게는 “잠깐만” 쉬게 되었다. “잠깐만”은 한 달이 되었고, 두 달이 되었고, 결국 민재는 자신이 처음으로 긴 공백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사람은 바쁘면 버티고, 한가하면 무너진다. 그는 바쁨에 익숙했고, 한가함에 서툴렀다. 아침에 일어나도 할 일이 없었다. 주방에서 들리던 소리가 집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웍의 금속성, 칼의 부딪힘, 물이 끓는 소리. 그런 소리들은 그의 하루를 나눠주던 기준이었는데, 이제는 기준이 사라졌다.

파스타는 그 공백 속에서, 뜻밖의 향으로 들어왔다. 동네에 새로 생긴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민재는 사실 그 가게를 알고 있었다. 지나가며 간판을 봤고, 창 너머로 테이블에 놓인 와인잔을 봤고, 젊은 사람들이 웃으며 식사하는 걸 봤다. 그 장면은 그의 가게와 달랐다. 그의 가게는 빠르게 먹고 나가는 곳이었다. 그곳은 머무는 곳이었다. 머문다는 건, 음식이 단지 배를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바람 좀 쐬자.” 민재는 말없이 따라나섰다. 그리고 그 레스토랑 앞에서 멈췄다. 아내는 “여기, 한번 먹어보자”고 했다. 민재는 속으로 “비싸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의 눈이 조금은 밝아 보여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올리브오일과 구운 빵의 냄새가 났다. 웍의 기름 냄새와는 다른, 낮은 온도의 향이었다. 그 향은 사람을 서두르지 않게 만들었다.

그가 주문한 건 단순했다. “알리오 올리오.” 마늘, 올리브오일, 페페론치노. 민재는 단순한 음식이 가장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짜장도, 짬뽕도, 단순해 보이지만 그 단순함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실패가 필요하다. 알리오 올리오도 그럴 것이다. 그는 속으로 평가할 준비를 했다. 습관이었다. 요리사는 언제나 맛을 해부한다. 입이 아니라 머리로 먹을 때가 많다.

파스타가 나왔다. 면은 윤기가 있었고, 접시는 따뜻했다. 민재는 젓가락 대신 포크를 들었다. 포크는 어색했다. 하지만 어색함이 오히려 그를 솔직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 입을 먹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멈췄다. 면이 ‘쫄깃’하다고 말하기엔 부족했다. 그것은 탄력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있었다. 씹을수록 중심에서 미세한 저항이 느껴졌다. 그 저항이 사라지기 직전에, 마늘의 향이 올라왔다. 맵지 않았다. 뜨겁지도 않았다. 그런데 분명히 강했다. 강함이 폭발이 아니라, 길게 이어지는 힘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아내가 “왜 웃어?”라고 물었다. 민재는 대답을 못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중식에서 불로 맛을 쌓아왔다. 불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앉는 힘이다. 파스타는 반대로, 면의 중심에서부터 맛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 차이가 신기했고, 낯설었고, 어쩐지… 위로가 됐다. 불과 싸우던 사람이, 따뜻한 기름의 흐름에 잠시 기대는 느낌이었다.

따뜻한 조명 아래, 포크로 면을 말아 올리는 손과 접시 위의 올리브오일 광택이 반짝이는 장면

그날 집에 돌아와도, 민재의 혀는 면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런 종류의 집착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맛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면, 그것은 ‘궁금증’이 아니라 ‘미련’이 된다. 그리고 미련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는 냉장고를 열어봤다. 올리브오일은 없었다. 마늘은 있었다. 건고추는 있었다. 면은… 소면이 있었다. 그는 웃었다. 소면으로 알리오 올리오를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웃으면서도 생각했다. ‘면’이라는 존재가 갑자기 크게 보였다.

며칠 후, 그는 마트에서 스파게티 면을 샀다. 그리고 올리브오일도 샀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서 지켜봤다. 그 침묵이 민재에게는 고마움이었다. 기대도, 비웃음도, 압박도 없는 침묵. 그는 주방에서처럼 칼을 잡았고, 마늘을 썰었다. 웍 대신 프라이팬을 꺼냈다. 프라이팬은 가볍고 얇았다. 불을 켜자, 그의 몸이 습관대로 불을 세게 올리려 했다. 그런데 그는 멈췄다. 중식의 불은 강해야 한다. 하지만 파스타의 불은 다르다고, 그날의 접시가 말해주는 듯했다.

그는 불을 중간으로 맞추고, 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넣었다. 마늘이 갈색으로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는 당황했다. 중식에서는 마늘이 타도, 다른 향으로 덮을 수 있다. 강한 소스가 있다. 하지만 파스타는 덮을 소스가 없었다. 타면 끝이었다. 그는 손목으로 팬을 흔들며 마늘을 살리고 싶었지만, 흔들수록 더 빨리 타는 느낌이었다. 그날 첫 알리오 올리오는 실패했다. 아내는 조용히 먹었다. “괜찮아.”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민재는 괜찮지 않았다. 그는 실패한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불을 몰랐다. 불을 평생 다뤘다고 믿었던 사람이, 불을 모른다는 사실이 자존심을 찔렀다.

그날 밤, 민재는 유튜브를 켰다. 자신이 젊은 요리사들을 비웃던 방식으로, 화면 속 요리를 비웃을까 봐 스스로를 경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비웃지 못했다. 화면 속 이탈리안 셰프는 작은 불에서 마늘을 천천히 볶았다. 그는 말이 빨랐고 손이 부드러웠다. “오일은 소스다.” 그는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민재는 그 문장을 머릿속에서 여러 번 되뇌었다. 중식에서 기름은 ‘매개’였다. 향을 전달하고, 열을 전달하고, 음식에 윤기를 더하는 역할. 하지만 파스타에서 기름은 주인공이었다. 그 차이가, 민재의 세계를 흔들었다.

그는 다시 시작했다. 그에게 시작은 어렵지 않았다. 시작은 늘 했으니까. 다만 ‘다른 방식의 시작’이 어려웠다. 중식의 시작은 강한 불과 빠른 움직임이다. 파스타의 시작은 기다림과 조절이다. 기다림은 민재에게 낯설었다. 주방에서 기다린다는 건 손님을 잃는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런데 파스타는 기다려야 했다. 마늘이 노릇해질 때까지, 물이 끓을 때까지, 면이 익어갈 때까지, 그리고 면의 중심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시간을 잡는 일. 시간과 싸우는 게 아니라, 시간을 타는 일이었다.

민재는 자신이 ‘시간을 타는 감각’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식에서도 사실 시간은 중요했다. 튀김은 10초만 늦어도 눅눅해지고, 볶음은 5초만 늦어도 질겨진다. 다만 그는 시간을 불로 눌러왔을 뿐이다. 파스타는 시간을 불로 누르지 않는다. 시간을 맛으로 드러낸다. 그가 처음으로 ‘불을 낮추는 기술’이라는 말을 떠올린 날, 그는 조금 울컥했다. 낮추는 건 포기처럼 느껴졌는데, 사실은 더 섬세한 지배였다.

끓는 물 위로 올라오는 김, 소금이 떨어지며 물결이 퍼지는 장면, 그 옆에서 조용히 시간을 재는 손

그는 면을 익히는 물에 소금을 넣었다. 처음엔 많이 넣었다. 짬뽕 국물처럼 간을 맞추려는 습관이었다. 결과는 짰다. 그는 다시 줄였다. 또 줄였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파스타의 간은 입에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면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스며든다는 말은 참 이상하다. 중식은 겉에 붙는다. 소스가 감싼다. 파스타는 스며든다. 스며드는 맛은 소리 없이 깊어진다. 민재는 그 깊이를 알기 위해, 매번 같은 양의 물, 같은 양의 소금, 같은 시간으로 반복 실험을 했다. 주방의 레시피는 손맛이었지만, 지금의 레시피는 기록이었다. 중년의 손은 느려졌지만, 중년의 눈은 더 정확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레스토랑의 사장 겸 셰프를 다시 만났다. 민재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날 알리오 올리오… 면이 왜 그렇게… 좋습니까.” 질문이 이상했지만, 민재는 지금 자신이 학생이라는 걸 인정했다. 셰프는 웃었다. “면을 삶는 물이 중요해요. 그리고 팬에서 마무리할 때… 물을 좀 넣고, 오일과 섞어주면 소스가 돼요.” 민재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이 평생 하던 일이 떠올랐다. 중식에서도 물과 기름을 섞어 ‘유화’시키는 순간이 있다. 소스를 만들 때 전분을 풀어 넣고, 기름과 섞여 점도가 생길 때.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게 아니었다. 방식이 달랐을 뿐, 원리는 닮아 있었다. 그 닮음이 민재를 안심시켰다.

그날 이후 민재는 매일 연습했다. 허리는 여전히 아팠다. 그러나 연습은 허리를 덜 아프게 만들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에게 연습은 통증을 잊게 하는 종류의 몰입이었다. 그는 다시 요리사로 살아있었다. 매일 같은 재료를 사오고, 같은 물을 끓이고, 같은 면을 삶고, 팬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차이를 관찰했다. 마늘이 기름에 “말리는” 순간, 고추가 기름을 “물들이는” 순간, 면수가 팬 바닥에서 “부글부글”하며 오일과 섞이는 순간. 그 순간들이 쌓여, 한 접시의 맛이 되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민재가 진짜로 변한 건, 파스타의 기술을 익혀서가 아니라, 파스타가 그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너는 누구의 입을 위해 요리하느냐.’ 중식당에서 민재는 늘 “많이, 빨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요리했다. 손님이 줄을 서면 뿌듯했고, 회전이 빠르면 성공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파스타는 “천천히”를 요구했다. 천천히 먹고, 천천히 느끼고, 천천히 대화하는 음식이었다. 민재는 그 천천히라는 단어를 처음엔 싫어했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천천히는 위험하다. 회전이 느리면 매출이 줄어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천천히는 사람을 살게 했다. 자신을 포함해서.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당신 표정이 좀… 살아있어.” 민재는 대답 대신 면을 삶는 물을 지켜봤다. 물은 끓고 있었다. 끓는다는 건 살아있다는 뜻 같다. 민재는 그 말을 마음속에 넣었다. 살아있다. 그가 잊고 있던 단어였다. 살아있다는 건,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었다. 살아있다는 건, 오늘의 냄새가 어제와 다르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손끝이 바뀌는 걸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자신이 만든 것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믿는 것이다.

주방 창가로 비치는 오후 빛, 조용히 끓는 냄비와 옆에 놓인 작은 메모장, 기록된 시간과 분량

그 무렵, 민재는 결심을 했다. 가게를 다시 열되, 예전의 중식당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배우는 ‘면’의 가게를 열어보자고. 아내는 걱정했다.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서 파스타 먹을까?” 민재는 말이 없었다.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건, 사실 그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예전엔 확신이 있었다. 중식은 자신 있었다. 이제는 자신 없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자신 없음이 그를 더 겸손하게, 더 정확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강점을 떠올렸다. 중식에서 배운 건 ‘불’과 ‘리듬’과 ‘속도’였다. 파스타에서 필요한 건 ‘온도’와 ‘유화’와 ‘결’이었다. 속도는 버릴 게 아니라, 조절할 수 있다. 리듬도 마찬가지다. 민재는 생각했다. ‘불맛을 파스타에 넣을 수 있을까?’ 그 생각은 위험해 보이지만, 동시에 그의 정체성이었다. 정체성을 모두 버리면, 그는 그냥 흉내 내는 사람이 된다. 흉내 내는 사람은 오래 못 간다. 대신, 자신이 걸어온 길을 새로운 길과 접목해야 한다. 접목은 늘 실패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실패가 있다면, 배움도 있다.

민재는 메뉴를 생각했다. 알리오 올리오, 카르보나라, 토마토 파스타. 하지만 그건 누구나 한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만들고 싶었다. 중식의 향을 한 방울 넣되, 파스타의 결을 망치지 않는 것. 그는 여러 번 실험했다. 굴소스를 넣으면 너무 강했다. 춘장을 넣으면 무거웠다. 두반장을 넣으면 모든 것이 두반장 맛이 됐다. 결국 그는 한 가지에 도착했다. 파를 기름에 천천히 볶아, 파향 오일을 만들고, 그 파향 오일로 알리오 올리오를 완성하는 방식. 파는 중식의 시작이고, 올리브오일은 파스타의 시작이다. 시작과 시작이 만나면, 새로운 시작이 된다.

그 파향 오일 파스타를 아내가 먹고 말했다. “이상한데… 맛있다.” 민재는 그 말이 좋았다. 이상한데 맛있다. 그건 ‘새로운 맛’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그 문장을 메뉴판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상한데 맛있다’는, 낯선 인생이 낯설지만 살만하다는 말 같기도 했다.

가게를 다시 여는 과정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새로운 간판, 새로운 인테리어, 새로운 그릇, 새로운 동선. 중식당의 동선은 전쟁터였다. 파스타 가게의 동선은 음악 같아야 했다. 민재는 자신의 몸을 생각했다. 허리가 아픈 사람은, 전쟁터에서 오래 못 산다. 음악 같은 동선이 필요했다. 그는 주방을 작은 작업실처럼 만들었다. 큰 웍은 접고, 작은 팬을 여러 개 준비했다. 물이 끓는 냄비는 한쪽에 두고, 소스는 팬에서 마무리한다. 면은 조리 직전에만 삶는다. 그는 머릿속으로 수십 번 동선을 그렸다. 그 과정에서 그는 깨달았다. 요리는 맛만이 아니라, 공간과 몸의 조화다. 몸이 편해야 맛이 안정된다.

작은 가게 주방, 정돈된 팬과 집게, 면 타이머, 깨끗한 조리대가 따뜻한 조명 아래 놓인 장면

개업 첫날, 그는 손이 떨렸다. 중식당을 처음 열었을 때도 떨렸지만, 그때의 떨림은 젊음의 무모함이었다. 지금의 떨림은 중년의 책임이었다.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용히 물을 끓였고, 소금을 넣었고, 주문을 기다렸다.

첫 손님은 의외로 중식당 단골이었다. “사부님, 여기가… 뭐야?” 단골은 웃으며 물었다. 민재는 웃고 싶었지만, 목이 말랐다. “파스타… 한번 해보려고요.” 단골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부님이 파스타?” 그 말엔 의심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민재는 그 의심을 미워하지 않았다. 의심은 당연하다. 자신도 의심했으니까. 그는 메뉴판에서 가장 기본인 알리오 올리오를 추천했다. 기본을 잘하면, 다음이 열린다.

그가 팬에 오일을 두르고 마늘을 넣자, 손목이 자동으로 빠르게 흔들리려 했다. 그러나 그는 멈췄다. 기다렸다. 마늘이 노릇해지는 순간, 고추를 넣고, 삶아 둔 면을 팬으로 옮겼다. 그리고 면수를 조금 넣었다. 면수와 오일이 섞이며, 팬 바닥에서 작은 파도가 생겼다. 그는 그 파도를 보며 중식의 전분 소스를 떠올렸다. ‘같다.’ 그는 속으로 말했다. 다르지만 같다. 그 말이 그의 손을 안정시켰다.

접시를 내보내고, 손님이 먹는 걸 멀리서 봤다. 주방에서는 멀리서 보는 게 습관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압박이 된다. 그는 손님이 한 입 먹고 표정이 멈추는 순간을 봤다. 그 표정은 예전에 자신이 알리오 올리오를 처음 먹었을 때와 닮아 있었다. 민재의 가슴이 조금 뜨거워졌다. 불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뜨거움이었다.

그 후로, 손님이 늘었다가 줄었다가를 반복했다. 파스타 가게가 동네에서 자리 잡는 건 쉽지 않았다. 중식은 익숙하지만, 파스타는 ‘특별한 날’의 음식으로 여겨졌다. 민재는 특별한 날만 기다리면 망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매일의 파스타’를 만들기로 했다. 가격을 낮추는 게 아니라, 마음의 문턱을 낮추는 방식. 그는 점심에는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만들었다. 하지만 빠르다고 대충 만들지 않았다. 빠르게 먹을 수 있어도, 맛은 천천히 남게 만들었다.

그는 또 하나의 전략을 세웠다. 중식당에서 배운 ‘국물’의 감각을 파스타에 적용해 보기로. 토마토 소스는 단순한 소스가 아니라, 일종의 국물이다. 민재는 짬뽕 국물처럼, 깊이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토마토 소스에 시간을 넣었다. 양파를 오래 볶아 단맛을 끌어내고, 마늘을 태우지 않게 넣고, 허브는 향이 튀지 않게 뒤에서 받치게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불맛’을 아주 작은 수준으로만 넣었다. 팬을 아주 뜨겁게 달구었다가, 소스가 닿는 순간에만 잠깐의 향을 만들고 바로 불을 낮췄다. 불맛이 소스를 지배하면 안 된다. 불맛은 힌트여야 했다. 중식의 힌트가, 이탈리안의 문장 속에 숨어 있는 느낌.

토마토 소스가 팬에서 잠깐 치솟는 증기, 그 사이로 번지는 은은한 불향, 붉은 소스의 윤기가 살아 있는 장면

그 메뉴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어떤 손님은 말했다. “파스타인데… 어딘가 익숙해요.” 민재는 그 말이 기뻤다. 익숙하다는 건, 낯선 음식을 받아들이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는 이탈리아를 흉내 내는 대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조용히 섞었다. 그 섞임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낯섦’을 줬다. 낯설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맛. 중년의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새로 시작하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시작할 수는 없다. 결국엔 내가 가진 것을 들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재에게 더 중요한 변화는, 손님과의 대화였다. 중식당에서는 대화가 짧았다. “얼마예요?” “네.” “맛있네요.” 파스타 가게에서는 손님이 머물렀다. 머물면 질문이 생긴다. “이건 어떤 면이에요?” “왜 이렇게 부드러워요?” “이 오일은 뭐가 달라요?” 민재는 처음엔 당황했다. 질문은 시험 같았다. 그러나 그는 곧 알았다. 질문은 관심이다. 관심이 생기면, 가게는 산다. 그는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이 다시 ‘설명하는 사람’이 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설명은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자신감은 반복에서 나온다. 반복은 삶을 만든다.

그해 봄, 민재는 젊은 직원 하나를 뽑았다. 중식당에서는 늘 직원이 오래 버티지 못했다. 불이 세고, 분위기가 빠르고, 욕도 많았다. 민재는 욕을 줄였지만, 업계의 언어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파스타 가게는 달랐다. 민재는 ‘주방의 말’을 바꾸고 싶었다. 불 앞에서 사람이 망가지면, 음식도 결국 망가진다는 걸 이제는 알았다.

직원의 이름은 준호였다. 준호는 요리학교를 졸업했지만, 경력이 많지 않았다. 다만 눈이 반짝였다. 민재는 그 반짝임을 알아봤다. 예전에 자신도 저런 눈을 했던 것 같았다. 그는 준호에게 말했다. “여긴 속도가 아니라… 온도야. 온도만 잡으면, 네 손이 따라와.”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재는 그 고개 끄덕임이, 자신에게도 필요한 것임을 느꼈다. 누군가가 내 말을 믿어준다는 건, 내 삶을 다시 믿게 만든다.

중년 요리사와 젊은 직원이 나란히 서서 팬을 바라보는 뒷모습, 주방 조명이 따뜻하게 두 사람을 감싸는 장면

민재는 준호에게 ‘파스타의 기본’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자신이 배운 ‘중식의 기본’도 이야기했다. 파스타 면을 집게로 잡는 방식, 면수를 아끼는 방식, 오일을 유화시키는 방식. 그러다 문득, 웍을 꺼내 보여주고 싶어졌다. 그는 창고에 있던 낡은 웍을 꺼내, 준호에게 말했다. “이건 내가 평생 썼던 거야. 근데… 이 웍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라.” 준호는 웍을 들었다. 무게가 묵직했다. 민재는 그 무게가 자신의 시간 같아서, 잠시 말이 막혔다.

그날 밤, 민재는 혼자 가게에 남아 불을 껐다. 가게 밖으로 나오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늘 같다. 하지만 그날의 비는 조금 달랐다. 그는 비를 맞으며, 자신이 이제는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허락을 남에게 받으려 한다. 하지만 중년의 삶은 대개,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민재는 조용히 웃었다. 비가 얼굴을 씻어주는 듯했다.

그가 “파스타 장인”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1년쯤 지나서였다. 그 말은 누군가의 입에서 가볍게 나오는 칭찬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민재에게는 무게가 있었다. 장인이라는 말에는, 시간이 들어있다. 실패가 들어있다. 고집이 들어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기가 들어있다. 어떤 것을 포기해야 어떤 것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민재가 포기한 건, ‘모든 것을 내가 알아야 한다’는 자만이었다. 그는 이제 질문을 받아들였다. 손님의 질문도, 준호의 질문도, 심지어 자신의 질문도. “왜 나는 중식만 해야 하지?” “왜 나는 한 번 무너지면 끝이라고 생각했지?” “왜 나는 뜨거움만으로 버티려 했지?” 질문은 사람을 약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더 멀리 가게 만든다.

어느 날, 예전 중식당 단골이 다시 왔다. 그는 이제 가족과 함께 왔다. 아이가 있었고, 아이는 포크를 서툴게 잡았다. 민재는 아이가 포크로 면을 말아 올리며 웃는 모습을 봤다. 그 웃음은 민재의 주방에서 오랫동안 사라졌던 종류의 웃음이었다. 민재는 그 웃음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만든 건 파스타가 아니라…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머무는 시간, 이야기하는 시간,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시간.

작은 식탁에서 가족이 파스타를 나누어 먹는 모습, 아이가 웃으며 면을 말아 올리고 창밖으로 따뜻한 빛이 들어오는 장면

그날 손님이 말했다. “사부님, 이제 사부님이 아니라… 셰프네요.” 민재는 웃었다. 사부라는 말도, 셰프라는 말도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가 다시 요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요리가 누군가에게 닿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봤다. 흉터는 여전했고, 손가락 관절은 여전히 뻣뻣했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맛을 만들고 있었다.

민재는 가끔 꿈을 꿨다. 큰 불이 치솟는 웍 앞에서 자신이 서 있는 꿈. 꿈속에서 그는 젊었다. 손목이 가볍고, 허리가 멀쩡했다. 주문표가 폭풍처럼 쌓이고, 그는 그것을 모두 해치운다. 꿈은 짜릿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꿈에서 깨어나면 허전했다. 예전에는 꿈이 현실보다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 꿈보다 단단했다. 꿈은 과거의 열기이고, 현실은 현재의 온기였다. 민재는 온기를 선택했다. 온기는 조용하지만 오래 간다.

그는 종종 새벽에 가게에 나와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안정됐다. 중식당에서 끓는 소리는 전쟁의 신호였지만, 지금의 끓는 소리는 시작의 신호였다. 그는 소금을 넣으며 늘 같은 생각을 했다. ‘바다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인데, 왜 이 맛이 바다처럼 느껴질까.’ 파스타 물의 짠맛은 바다의 흉내가 아니라, 면을 살리는 약속이었다. 약속은 늘 단순한 형태로 존재한다. 민재는 자신이 이제야 약속을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손님과의 약속, 자신과의 약속, 그리고 시간을 존중하는 약속.

가끔 누군가 묻는다. “어떻게 중식 하시다가 파스타를 하게 됐어요?” 민재는 예전엔 길게 설명하지 못했다. 부끄러움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고, ‘설명하면 가벼워질까 봐’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말할 수 있다. “허리가 아팠어요. 장사가 안 됐고요. 근데… 어느 날 파스타 한 입이, 제 마음을 다시 켰어요.” 그는 그렇게 말한다. 불이 아니라, 마음을 켰다고. 그 말은 사실이다.

민재는 이제 파스타를 만들 때, 웍의 리듬을 떠올리지 않는다. 대신 웍이 가르쳐준 ‘집중’을 떠올린다. 불을 다루던 집중, 소리를 듣던 집중, 손끝으로 변화를 감지하던 집중. 그 집중은 형태를 바꿔, 팬 위의 오일과 면수 사이에서 다시 살아난다. 중식의 불꽃은 파스타의 윤기 속에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숨어 있음이, 민재를 장인으로 만든다. 장인은 드러내지 않는다. 장인은 숨긴다. 너무 많이 드러내면 자랑이 되고, 숨기면 깊이가 된다.

그의 가게에는 지금도 예전 단골들이 온다. 어떤 사람은 짜장 이야기를 하고, 어떤 사람은 짬뽕 이야기를 한다. 민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언젠가… 우리 파스타로 짬뽕 같은 거 해볼까요.” 사람들은 웃는다. 웃음은 가게를 살린다. 민재는 웃음이 가장 중요한 조미료라는 걸, 이제야 배운 것 같다.

저녁 영업을 마친 작은 가게, 빈 테이블 위에 남은 촛불 같은 조명, 창밖에는 조용한 거리

어느 겨울 밤, 그는 가게 문을 닫고 혼자 앉아 파스타 한 그릇을 먹었다. 늘 손님을 위해 만들던 그릇을,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 그는 면을 한 입 먹고, 천천히 씹었다. 씹을수록, 그가 걸어온 길이 떠올랐다. 뜨거운 웍, 얼어붙은 매출, 아픈 허리,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 처음 먹은 알리오 올리오의 놀라움, 수십 번의 실패, 그리고 오늘의 조용한 성공.

민재는 속으로 말했다.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그 문장이 그를 편하게 했다. 배우는 중인 사람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대신 계속 나아가면 된다. 중년의 나아감은 젊음의 질주가 아니라, 매일 같은 시간에 물을 끓이는 성실함이다. 민재는 그 성실함을 믿기로 했다. 그 믿음이, 그를 파스타 장인으로 만든 진짜 이유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는 또다시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조용히 팬을 닦았다. 팬은 반짝였고, 그의 손은 여전히 거칠었지만 안정적이었다. 불은 낮게 켜졌다. 낮은 불이, 오히려 오래 탄다. 민재는 그 사실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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