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망해서 컵라면 먹던 30대, '비누 거품' 하나로 인생 역전하다
햇살이 좋았고 비가 때맞춰 내렸고, 바람도 너무 세지 않았다. 나무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열매를 매달았다. 그런데 그 약속이, 올해는 우리를 안심시키기보다 겁먹게 했다.
열매가 많다는 건 축복인데, 그 축복이 ‘가격’ 앞에서 종종 무겁게 굴러떨어진다.
우리 마을은 과수로 먹고사는 집이 많다. 사과와 배, 감귤과 단감, 복숭아, 샤인머스캣까지… 같은 동네에 살아도 나무가 다르고, 나무가 다르면 근심의 결도 달라진다. 그래도 수확철이 오면 걱정은 결국 같은 골짜기로 흘러간다.
“많이 달렸는데, 이걸 어쩌냐.”
올해는 유난히 가지가 휘었다. 봄꽃이 오래 갔고, 수정이 잘 됐고, 낙과가 적었다. 과수원에 들어서면 열매가 ‘보인다’기보다 ‘차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구니 하나를 채우는 일이 별일이 아니게 되자,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살았다”였고, 다른 하나는 “큰일 났다”였다.
풍년은 대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수확의 얼굴, 하나는 가격의 얼굴. 수확의 얼굴은 반짝거린다. 아침 이슬이 걷히기도 전에 따낸 과일이 그늘에서 은은하게 빛난다. 손바닥이 끈적해질 정도로 당이 올라온 냄새는 사람을 순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격의 얼굴은 달력이 넘어갈수록 차가워진다. 출하장이 붐비는 만큼 경매판의 숫자는 가벼워진다. 많이 나올수록 값은 내려간다는 단순한 진실은, 농사만큼이나 자주 사람을 울린다.
“올해는 대박이네.”라고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과수원 밖에 있다. 과수원 안에서는 “대박”이라는 말이 입안에서 잘 굴러가지 않는다. ‘대박’이 ‘대출’과 ‘박스’와 ‘박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니까.
마을 입구에 있는 선별장은 이맘때면 새벽부터 불이 켜진다. 트럭들이 줄을 선다. 달빛 아래서도 과일 상자들의 모서리는 반듯하다. 반듯한 모서리로는 농부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마음은 모서리보다 먼저 찌그러진다. 올해는 그 줄이 특히 길었다. 선별장 마당이 모자라서 길가에까지 트럭이 늘어섰고, 서로 조금씩 앞으로 들어가려고 엔진을 꺼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내가 아는 ‘준호 형’은 사과 농사를 짓는다. 작년엔 냉해에 한 번, 장마에 한 번, 탄저에 한 번, 그야말로 세 번을 맞고도 어떻게든 버텼다. 버틴다는 게 꼭 이긴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내일로 넘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는 반대로 모든 게 순하게 흘렀다. 형은 봄에 한 번, 여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세 번이나 웃었다. 그리고 수확철이 되자 웃음을 접었다.
“웃는 건 좋은데, 이게 다 돈이 되는 건 아니잖아.”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많이 따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다가오는 건 ‘정산일’이다.
과일 농사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일 때가 있다. 봄이면 꽃이 흩날리고, 여름이면 초록이 번쩍이고, 가을이면 빨강과 노랑이 터진다. 사진으로는 늘 아름답다. 그런데 사진 밖에는 숫자가 있다. 농약값, 비료값, 봉지값, 반사필름 값, 스프링클러 수리비, 냉장창고 전기세, 인건비, 기름값. 그리고 가장 늦게 오지만 가장 크게 오는 것, 빚.
풍년이면 작업이 늘어난다. 작업이 늘어나면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이 필요하면 돈이 먼저 나간다. 풍년이 돈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풍년은 돈을 먼저 쓰게 만든다. 그걸 견디고 마지막에 남는 게 ‘수익’인데, 올해는 그 마지막이 흔들린다. 가격이 흔들리면 마지막이 없다. 마지막이 없으면 ‘풍년’이라는 단어는 그냥 ‘물량’이 된다.
우리 동네에서 배 농사를 짓는 ‘명자 이모’는 올해를 두고 “욕심을 시험하는 해”라고 했다. 이모는 나무를 보며 말하고, 사람을 보며도 말한다.
“나무가 열매를 많이 달면, 사람도 마음을 많이 달아. 더 따고 싶고, 더 좋은 값 받고 싶고, 더 크게 팔고 싶고.”
그러다 보면 작은 실수가 생긴다. 수확 시기를 하루 이틀 놓치거나, 당도를 더 올리려다 색이 과해지거나, 늦게까지 버티다 비를 맞아 흠집이 나거나. 풍년은 여유가 아니라 선택의 압박으로 온다.
올해는 특히 ‘흠과’가 많았다. 많이 달린 만큼 서로 부딪히고, 바람에 흔들리고, 가지에 눌리고, 햇빛에 그을리고, 벌레가 파고든 자국이 생겼다. 흠과는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 흠과는 ‘모양’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시장은 모양으로 값을 매긴다. 농부는 맛을 알고, 소비자는 모양을 본다. 그 간극에서 돈이 사라진다.
“흠과는 싸게라도 내야지.”
라는 말은 쉬운데, 흠과가 한꺼번에 쏟아지면 ‘싸게’가 아니라 ‘거의 공짜’가 된다. 싼 값에도 물량이 감당이 안 되면, 흠과는 결국 버려지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래서 올해 마을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자주 모였다. “흠과를 어떻게 돌릴지”가 회의의 주제가 됐다. 잼 공장, 주스 공장, 말랭이 작업장, 학교 급식, 복지관, 직거래 꾸러미…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길이든, 오래된 길이든, 가능한 길은 다 꺼냈다.
문제는 ‘가능’이 곧 ‘실행’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잼을 만들려면 설비가 있어야 하고, 주스를 만들려면 위생과 허가가 있어야 하고, 말리려면 건조기가 있어야 하고, 급식으로 들어가려면 검수와 납품 기준이 있다. 직거래는 포장과 CS가 있고, 꾸러미는 신뢰가 있다. 농부에게 농사는 익숙하지만, 유통과 가공은 늘 낯설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낯설기보다 ‘시간이 없다’. 풍년의 시간은 촘촘하다. 촘촘한 시간 속에서 새로운 일을 꺼내면, 기존 일이 무너진다.
준호 형은 올해 처음으로 작은 착즙기를 들였다. ‘흠과를 주스로 돌려보자’는 생각이었다. 형수는 처음엔 말렸다.
“당장 출하만 해도 손이 모자라는데, 주스까지 하면 쓰러진다.”
형은 웃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뭔가 해야지. 그냥 버리면, 나무한테 미안하잖아.”
그 말은 참 이상했다. 나무한테 미안하다니. 하지만 농부에게 나무는 그냥 생산 수단이 아니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다. 나무는 매년 새로 태어나지 않는다. 몇 년을 함께 견뎌야 한다. 그래서 버리는 일은, 단순히 돈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버리는 일이 된다.
풍년의 또 다른 얼굴은 ‘창고’다. 창고가 꽉 차면 마음도 같이 차오른다. 그건 안심이 아니라 압박이다.
냉장창고는 풍년을 견디는 방패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풍년을 더 무섭게 만드는 칼날이기도 하다.
“일단 넣어두자”
라는 말은 마음을 늦춘다. 그런데 냉장창고에 넣는 순간부터 전기세가 시작된다. 창고가 빌 때까지 전기세는 끝나지 않는다. 가격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저장’은, 기다림이 길수록 돈이 빠져나간다. 기다리다 보면 과일은 조금씩 물러지고, 상품성은 떨어지고, 결국 더 낮은 값에 나가기도 한다. 창고는 시간을 사는 곳인데, 그 시간은 무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마을에는 “값은 겨울이 돼야 산다”는 말이 있다. 물량이 줄어들고, 시장이 안정되면 그때부터 값이 조금씩 회복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말은 ‘모든 해’에 통하는 말이 아니었다. 어느 해엔 겨울에도 값이 오르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은 창고를 열면서도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안쪽에 쌓인 상자를 보는 순간, 겨울이 아니라 빚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올해는 풍년이 넓게 퍼져서 더 어렵다. 한 지역만 풍년이면 다른 지역이 받쳐주고, 품목만 풍년이면 다른 품목이 균형을 잡는다. 그런데 올해는 사과도 많고, 배도 많고, 감귤도 많고, 포도도 많다. 사람들이 말하길 “어디나 다 잘 됐다”는 건 좋은 소식 같다. 하지만 시장의 입장에선 ‘어디나 다 물량’이다. 그래서 가격이 전반적으로 눌린다. 한 품목이 눌리면 다른 품목으로 넘어가던 소비도, 올해는 넘어갈 곳이 없어서 그냥 멈춘다.
게다가 소비는 예전만큼 단순하지 않다. 한 번에 많이 사서 나눠 먹던 문화가 줄었고, 작은 가구가 늘고, 과일을 ‘간식’으로만 보는 집도 많다. 과일이 밥상에서 빠지는 날이 늘었다는 말도 들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격에 더 민감해졌다. 마트의 행사 가격이 기준이 돼버리면, 정상 가격은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이 된다. 농부는 제값을 받고 싶지만, 소비자는 행사값을 기억한다. 그 사이에 유통이 있고, 유통의 논리는 종종 농부의 사정과 만나지 않는다.
“이 과일이 이 값이면, 우리가 대체 뭘 더 해야 하냐.”
준호 형이 경매 결과표를 보고 중얼거렸을 때,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더’라는 말은 농부에게 너무 잔인하다. 농부는 이미 더 하고 있었으니까.
수확철의 하루는 길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손전등을 챙기고, 장갑을 끼고, 허리를 펴기 전에 이미 허리를 쓰기 시작한다.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며 과일을 따고, 상자를 채우고, 상자를 들고, 트럭에 싣고, 선별장에 가고, 다시 과수원으로 돌아온다. 낮엔 햇빛이 따갑고, 밤엔 손목이 저리다. 그 반복 끝에 남는 게 ‘정산’인데, 정산이 기대보다 낮으면 그 하루는 갑자기 ‘헛수고’처럼 느껴진다. 헛수고가 아니란 걸 아는데도, 그렇게 느껴진다. 감정은 사실을 잘 듣지 않는다.
마을 회관에서 열리는 출하 회의는 올해 유난히 조용했다. 예전엔 큰 소리도 나고, 서로 탓도 하고,
“그래도 버텨야지”
같은 말도 했는데, 올해는 조용한 침묵이 길었다. 침묵은 포기와 다르다. 침묵은 계산이다.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각자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번 달 인건비가 얼마인지, 비료 외상값이 언제인지, 아이 학원비가 언제인지, 대출 이자가 몇 퍼센트인지. 말로 하긴 민망한 숫자들이, 눈동자 뒤에서 서로 부딪혔다.
풍년은 트럭을 쉬게 하지 않는다. 트럭이 쉬지 못하면 사람도 쉼을 잃는다.
그날 회의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 올해는 팔지 말고 나눠주면 어떠냐.”
그 말은 착해 보였지만, 동시에 가슴을 후벼팠다. 나눠주는 건 좋은 일인데, 농부가 나눠주기만 하면 농부는 사라진다. 농부가 사라지면 과일도 사라진다. 나눔은 농부가 ‘살아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눔을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조심스러워졌다. 선한 마음과 생계는 늘 같이 가기 어렵다.
명자 이모가 그때 낮게 말했다.
“나눔도 좋지. 근데 나눔은 ‘남는 것’으로 하는 거야. 남는 게 없는데 나누면 그건 그냥… 우리를 깎아먹는 거야.”
이모는 말을 끝내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이모의 말은 차갑지만 정확했다. 정확한 말은 종종 슬프다.
다만 그날 회의의 끝은 예상보다 따뜻했다. 누군가가 한 가지 제안을 했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럼 이렇게 해보자”라고 받았다. 흠과를 한꺼번에 모아서 공동으로 가공처를 찾자. 각자 움직이면 힘이 분산되니, 일정 물량을 함께 모아 ‘협상력’을 만들자. 포장재도 공동으로 구매해서 단가를 낮추자. 택배도 묶어서 계약하자. 작은 직거래 사이트를 만들고, 사진과 글을 같이 올리자. 다만 ‘말뿐’이 되지 않게, 이번 주 안에 담당자를 정하자. 그 순간, 침묵이 조금 풀렸다. 사람들의 얼굴에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표정이 아주 작은 불씨처럼 붙었다.
풍년의 가장 무서운 점은, 문제를 ‘개인’으로 몰아넣는다는 거다. 가격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자기 탓을 한다.
“내가 선별을 잘못했나.”
“내가 수확을 늦췄나.”
“내가 약을 덜 쳤나.”
하지만 올해 같은 해엔, 개인이 잘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구조의 문제다. 물량과 소비와 유통과 비용의 문제다. 개인이 잘해도, 시장이 눌리면 다 같이 눌린다. 그걸 아는 순간, 사람은 더 무력해진다. 그런데 동시에, 그걸 아는 순간 ‘함께’ 움직일 이유도 생긴다. 혼자 해결할 수 없으면, 같이 살아야 한다.
며칠 뒤, 나는 준호 형 과수원에 다시 갔다. 형은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잠깐 쉬는 시간이었다. 형의 손바닥은 굳은살로 거칠었고, 손가락 관절은 조금 부어 있었다. 나는 상자에 담긴 사과를 하나 집어 들었다. 색이 좋았고, 윤기가 있었다. 이 정도면 어디 내놔도 ‘상품’이었다. 그런데 형은 그걸 보며 말했다.
“이게 참… 이렇게 예쁜데 말이야.”
“예쁜데 왜요?” 내가 물었다.
형은 잠깐 웃고, 다시 표정을 접었다.
“예쁜 게 죄가 되잖아, 올해는.”
나는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예쁜 사과가 너무 많다. 예쁜 사과가 많으면 예쁜 사과의 값이 내려간다. 그게 시장이다. 그런데 농부의 마음은 그걸 따라가지 못한다. 마음은 여전히 “예쁜 건 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깨질 때, 사람은 서글퍼진다.
그날 오후, 형은 흠과 상자를 따로 모았다. 모양이 조금 찌그러진 것, 햇빛 자국이 있는 것, 작은 상처가 난 것. 나는 흠과 상자에서 하나를 꺼내어 한입 베어 물었다. 달았다. 단데, 왜 이게 흠인지. 형이 말했다.
“맛은 괜찮지. 근데 이건… 시장이 싫어해.”
시장이 싫어한다는 말은 이상했다. 시장은 사람이 만든 공간인데, 어느 순간 시장은 사람보다 더 큰 존재가 된다. 시장은 ‘기분’을 가진 것처럼 말해진다. 시장이 좋아한다, 시장이 싫어한다. 우리는 시장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더 굽힌다.
형수는 그날 밤 늦게까지 송장을 정리했다. 운송장 출력, 품목 분류, 주소 라벨, 고객 문의. 직거래를 시작하면 수익이 조금 나아질 수 있지만, 그만큼 일이 늘어난다. 농부는 농사만 지으면 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농사도 짓고, 포장도 하고,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고객 응대도 해야 한다. 어떤 농부는 말한다.
“이젠 농부가 아니라 작은 회사 사장이지.”
작은 회사 사장은 늘 일한다. 풍년이 오면 회사의 재고가 늘고, 재고가 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농부의 불안은 회사의 불안과 닮아간다.
그래도 직거래의 장점은 있다. 소비자의 얼굴이 보인다. “맛있다”는 한마디가 숫자보다 먼저 온다. 숫자가 늦게 와도, 그 한마디가 마음을 버티게 해준다.
하지만 직거래는 ‘물량의 해결’이 되기 어렵다. 대량 출하를 대신하긴 힘들다. 농가가 커질수록 직거래만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결국 우리는 큰 물길과 작은 물길을 동시에 붙잡아야 한다.
마을에는 감귤 농장도 있다. 감귤은 상처가 조금 나도 맛이 괜찮아서, 오히려 집에서 먹는 사람들은 “이게 더 달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감귤 농장주들의 한숨은 깊었다. 감귤은 ‘가격’이 더 민감하게 움직인다. 물량이 조금만 늘어도 가격이 확 꺾인다. 게다가 감귤은 저장이 사과만큼 길지 않다. 출하 타이밍을 놓치면 급하게 싸게 내야 한다. 그 급함은 농부의 목소리를 높인다. 목소리가 높아지면, 마음은 더 지친다.
포도 농장에서는 또 다른 걱정이 있었다. 포도는 ‘품질’의 기준이 섬세하다. 당도, 알 크기, 송이 모양, 착색, 껍질 상태. 풍년이면 송이가 많아져서 관리가 어려워지고, 조금만 방심하면 품질이 들쭉날쭉해진다. 품질이 들쭉날쭉하면 선별에서 버려지는 비율이 늘어난다. 풍년은 버림을 늘린다. 버림이 늘면 마음이 상한다. 포도 농장주인 ‘진수 아저씨’는 말했다.
“나는 올해 나무가 너무 열심히 살아서 걱정이야.”
그 말이 이상하게도, 너무 이해됐다.
송이가 많을수록 기쁘다가도, 선별대 앞에서는 그 기쁨이 빠르게 식는다.
풍년은 기후의 선물처럼 오지만, 기후는 늘 다른 것을 요구한다. 올해 순했던 날씨는 내년에도 순하리란 보장이 없다. 어떤 해엔 풍년이 왔다가 다음 해엔 병해가 폭발한다. 나무가 한 해에 힘을 너무 쓰면, 다음 해에 체력이 떨어진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농부들은 풍년에도 마냥 기뻐하지 못한다. 나무를 달래야 하고, 가지를 정리해야 하고, 토양을 회복시켜야 한다. 풍년은 끝이 아니라 다음 걱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풍년은 우리가 꿈꾸던 장면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나는 어른들이
“올해는 과일이 많이 달려야지”
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 말은 희망 같았다. 많이 달려야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제 나는 안다. 많이 달리는 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 많이 달리고, 잘 팔려야 산다. 잘 팔리려면, 시장이 받쳐줘야 한다. 시장이 받쳐주려면, 소비가 움직여야 한다. 소비가 움직이려면, 사람들의 생활이 조금은 여유로워야 한다. 결국 과수원의 운명은 과수원 밖의 삶과 연결돼 있다. 농부는 나무만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세상을 같이 본다. 세상이 흔들리면 나무도 흔들린다.
올해는 마을 청년회가 작은 실험을 했다. 주말마다 “과일 나눔 장터”를 열고, 수익 일부를 공동 기금으로 모았다. 기금은 흠과 가공비를 보태는 데 쓰기로 했다. 장터는 생각보다 사람이 왔다. 아이들은 과일을 하나씩 들고 웃었다. 어른들은 “직접 와서 사니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그 말은 가격표보다 무거웠다. 믿음은 오래 걸리는 일이라서,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갑자기 숙연해졌다. “우리가 그동안 뭘 놓치고 있었나” 같은 표정이었다.
장터가 성공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장터만으로는 물량을 다 못 돌린다. 그래도 장터는 한 가지를 보여줬다. 과일이 ‘상품’이기 전에 ‘이야기’라는 것. 어떤 나무에서 왔는지, 어떤 비를 맞았는지, 어떤 바람을 견뎠는지. 소비자는 그걸 알면, 과일을 더 천천히 먹는다. 천천히 먹는다는 건,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가격과 별개로 사람을 살린다. 농부를 살리고, 소비자를 살린다.
풍년의 걱정은 단지 “값이 떨어진다”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풍년의 걱정은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나”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질문은 매년 수확철마다, 더 선명해진다.
밤이 되면 선별장 불빛이 멀리서도 보인다. 그 불빛은 마을의 등대 같기도 하고, 마을의 검은 그림자 같기도 하다. 불빛 아래에서 상자는 계속 쌓인다. 상자가 쌓인다는 건 일했다는 증거다. 그런데 그 증거는, 때때로 상처가 된다. 상자가 너무 많이 쌓이면 “왜 이렇게 많이 쌓였지”라는 두려움이 생긴다. 우리는 ‘풍요’를 견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풍요는 늘 ‘부족’을 대비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낯설다. 낯선 것은 기쁨보다 먼저 걱정을 부른다.
그렇다고 풍년을 원망할 수는 없다. 풍년은 자연이 준 답이다. 문제는 자연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길이다. 그 길이 좁으면, 풍년은 막힌다. 그 길이 넓으면, 풍년은 흐른다. 우리는 길을 넓히는 일을 해야 한다. 가공의 길, 유통의 길, 지역의 길, 수출의 길, 나눔의 길, 그리고 무엇보다 ‘제값을 인정하는 길’. 길은 혼자 못 낸다. 길은 여러 발자국이 겹쳐져야 생긴다.
며칠 후, 준호 형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흠과 공동 수거, 이번 주부터 시작한대. 우리도 일정 맞춰서 내자.”
나는 그 문장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큰 변화는 아니었다. 거창한 해결도 아니었다. 그냥 ‘하나의 작은 실행’이었다. 그런데 그 작은 실행이, 올해의 어두운 터널에 작은 불빛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해결책이 완벽해서 버티는 게 아니라, 움직임이 있어서 버틴다. 완벽한 답은 늘 늦게 오고, 움직임은 지금 시작할 수 있다.
나는 과수원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풍년의 걱정은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반복될지 모른다. 하지만 반복된다고 해서 무의미한 건 아니다. 반복은 우리에게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결국 구조를 바꾼다. 한 해의 풍년이 다음 해의 길을 만들고, 그 길이 또 다른 풍년을 덜 아프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올해의 걱정을 ‘경험’으로 남길 수 있다. 그게 농사의 방식이기도 하다. 실패도, 성공도, 모두 다음 해의 밑거름이 된다.
가격표는 숫자지만, 그 숫자 뒤에는 밤샘과 허리통증과 가족의 계획이 숨어 있다.
어느 저녁, 마을 끝집 할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풍년이 제일 무서워.”
나는 순간 놀라서 되물었다.
“왜요? 풍년이 좋은 거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도, 담배 연기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풍년이면 다들 기대를 해. 기대를 하면, 그 기대가 깨질 때 더 크게 다쳐.”
그 말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기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올해 과수원 사람들의 걱정은 기대의 그림자였다. 나무가 열매를 많이 달아준 만큼, 우리는 더 나은 정산을 기대했다. 더 나은 정산이 오지 않으면, 그 기대는 그대로 빚이 된다. 빚은 단지 돈이 아니다. 빚은 마음의 각도를 바꾼다. 빚이 있으면, 웃을 때도 계산한다. 빚이 있으면, 쉬는 날도 죄책감이 된다. 빚이 있으면, 풍년이 와도 기뻐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 풍년을 ‘축제’로 만들지 못했다. 대신 ‘회의’로 만들었다. 회의는 우울하지만, 회의는 또 가능성을 만든다. 마을 사람들은 자주 싸우고 자주 화해한다. 올해는 싸움보다 회의가 많았다. 그건 서로를 탓하기보다, 서로를 붙잡으려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붙잡는다는 건, 버티겠다는 뜻이다. 버티겠다는 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쓰면서도 미안해진다. 누군가에겐 “그래도 풍년이면 좋은 거지”라는 말이 쉽게 나올 테니까. 하지만 과수원 사람들에게 풍년은 늘 두 번째 질문을 데려온다.
“그럼 이걸 어떻게 살려서 돈으로 만들 것인가.”
그 질문을 풀지 못하면 풍년은 축복이 아니라 짐이 된다. 올해, 과수원 사람들은 그 짐을 나눠 들기 시작했다. 혼자 들면 허리가 나가지만, 같이 들면 조금은 걸을 수 있다. 걸을 수 있으면, 길이 생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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