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망해서 컵라면 먹던 30대, '비누 거품' 하나로 인생 역전하다
여러분, 오늘은 조금 특별한,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꿈꿔봤을 일탈과 도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주인공은 '민준'이라는 평범한 20대 후반의 청년입니다.
민준 씨의 삶은 소위 말하는 '정답'에 가까웠습니다.
서울 소재의 명문대를 졸업했고, 학점은 4.0을 넘었으며, 토익 만점에 각종 공모전 수상 경력까지 화려했죠. 취업 빙하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는 졸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S그룹의 전략기획팀에 합격했습니다.
합격 문자가 오던 날, 부모님은 동네잔치를 열 기세였고 친구들은 "넌 이제 인생 폈다"며 부러움 섞인 축하를 보냈습니다.
강남 테헤란로의 높은 빌딩, 세련된 사원증, 그리고 통장에 찍히는 두둑한 월급. 민준 씨는 자신이 이룬 성취가 영원한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첫 출근 날, 빳빳한 정장을 입고 회사 로비의 회전문을 통과할 때 느꼈던 그 짜릿한 전율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전략기획'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 숨겨진 업무의 실체는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엑셀 칸을 채우고, 임원들의 입맛에 맞게 파워포인트의 줄 간격을 조정하는 '보고서 기계'의 삶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지옥철에 몸을 구겨 넣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일상. 선배들은 "원래 신입 때는 다 그래, 버티면 승진하고 편해져"라고 말했지만, 민준 씨가 바라본 부장님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늘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주말에도 골프 접대를 나가야 하며,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과연 자신이 꿈꾸던 20년 후의 미래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나'의 부재였습니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자신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품에 불과했습니다. 점심시간에 마시는 5천 원짜리 커피 한 잔이 유일한 해방구였지만, 그마저도 오후 업무를 버티기 위한 카페인 수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민준 씨의 마음속에서는 점점 소리 없는 비명이 커져가고 있었죠.
입사 3년 차, 민준 씨에게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왔습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출근길 횡단보도 앞에 서면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무기력증이 그를 덮쳤습니다.
결국 그는 연차를 몰아 쓰고 무작정 차를 몰아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목적지도 없이 달리다 도착한 곳은 경상남도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화개'였습니다.
그곳의 허름한 식당에서 먹은 한 끼가 그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할머니가 텃밭에서 갓 따온 채소로 무쳐준 나물 반찬과 구수한 된장찌개. 화려한 조미료 하나 없었지만, 그 음식에는 흙의 생명력과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서울의 유명한 파인 다이닝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그 순간, 민준 씨의 머릿속에 번개 같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내가 진짜로 원했던 건, 0.1mm의 줄 간격을 맞추는 게 아니라,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누군가에게 직접 전해주는 기쁨이 아니었을까?"
그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학 시절, 취미로 배웠던 요리와 친구들을 초대해 파스타를 만들어주며 행복해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휴가가 끝나고 돌아온 민준 씨는 품속에 사직서를 품고 팀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시골에 가서 요리하며 살고 싶습니다."
팀장님은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습니다.
"자네 미쳤나? 남들은 못 들어와서 안달인 직장을 그만두고 뭐? 시골? 농사짓겠다고?"
부모님의 반대는 더 극심했습니다. 어머니는 앓아누우셨고, 아버지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그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냐"
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친구들조차 "배가 불렀다", "현실 감각이 없다"며 혀를 찼습니다. 하지만 민준 씨의 결심은 확고했고, 지금 이 타이밍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그는 그동안 모아둔 적금과 퇴직금을 탈탈 털어 화개 장터 근처의 오래된 구옥 하나를 계약했습니다.
막상 내려온 시골 생활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낭만은 잠시였고,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계약한 구옥은 생각보다 더 낡아 있었습니다. 지붕에서는 비가 샜고, 보일러는 고장 나 있었으며, 밤이면 온갖 벌레들이 파티를 열었습니다.
인테리어 업자를 부를 예산이 부족해 민준 씨는 유튜브를 보며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바닥을 깔았습니다. 손에는 굳은살이 박이고 온몸은 파스 투성이가 되었죠.
마을 사람들의 텃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서울 샌님이 와서 식당 한다고? 한 달도 못 버티고 도망갈걸?"
이장님과 동네 어르신들은 낯선 외지인에게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쓰레기 배출 문제부터 주차 문제까지, 사소한 일로 마찰이 빚어졌습니다. 민준 씨는 그때마다 먼저 다가가 싹싹하게 인사하고, 막걸리를 사 들고 마을 회관을 찾아가며 그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민준 씨가 구상한 레스토랑의 콘셉트는 명확했습니다. '이 마을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로 만드는 이탈리안 가정식'. 그는 매일 새벽 마을 장터에 나가 가장 신선한 재료를 구했습니다.
봄에는 향긋한 냉이와 달래를 넣은 오일 파스타를, 여름에는 직접 키운 바질과 마을 할머니가 농사지은 토마토로 만든 콜드 파스타를 메뉴로 개발했습니다.
가장 공들인 메뉴는 '고사리 크림 뇨끼'였습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한 부드러운 고사리를 다져 넣어 반죽하고, 진한 크림소스와 곁들인 요리였죠. 서양의 뇨끼에 한국적인, 그것도 가장 시골스러운 식재료인 고사리를 접목한 실험적인 메뉴였습니다.
수십 번의 실패 끝에 그는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일품인 자신만의 레시피를 완성했습니다.
드디어 '시골 양식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오픈을 했지만,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평일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드물었고, 주말에도 관광객들은 유명한 맛집만 찾아갔습니다.
하루 매출이 0원인 날도 있었습니다. 텅 빈 가게에 홀로 앉아 식재료가 시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건 대기업에서 야근할 때보다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내가 실수한 걸까? 다시 돌아가야 하나?"
통장 잔고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밤마다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기업 동기들의 SNS에는 해외 출장을 가거나 명품 가방을 산 사진들이 올라왔습니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과 비교되어 자존감이 바닥을 쳤습니다.
하지만 민준 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MZ세대답게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음식 사진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대기업을 퇴사하고 시골로 내려온 과정, 낡은 집을 고치는 모습, 마을 할머니들과 흥정하는 영상, 그리고 실패한 요리들까지 솔직하게 기록했습니다.
특히 '고사리 파스타를 처음 맛본 동네 이장님의 반응'이라는 릴스 영상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이게 뭐꼬? 국수도 아니고 떡도 아니고... 근데 희안하게 꼬숩네!"
하며 접시를 싹 비우시는 이장님의 모습은 네티즌들에게 큰 웃음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플레이팅보다 그 속에 담긴 '진짜 이야기'에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장님 용기가 부러워요"
"저도 퇴사하고 싶은데 대리 만족하고 갑니다"
"이번 주말에 꼭 갈게요!"
팔로워가 늘어나면서 주말 예약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민준 씨의 음식을 맛보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오픈 1년이 지난 지금, 민준 씨의 레스토랑은 예약 없이는 갈 수 없는 지역 명소가 되었습니다. 물론 대기업 다닐 때만큼 큰돈을 벌지는 못합니다. 여전히 몸은 고되고,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민준 씨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습니다.
지금 그에게는 상사의 결재가 필요 없습니다. 오늘 어떤 메뉴를 낼지, 어떤 음악을 틀지, 손님에게 어떤 접시를 내올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정말 맛있어요, 힐링하고 갑니다"
라고 말해줄 때 느끼는 그 즉각적인 보람은 억대 연봉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습니다.
부모님도 이제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우리 아들이 사장님이야"라며 친구분들을 데려와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시죠. 마을 사람들도 이제 민준 씨를 '우리 동네 청년'이라 부르며 직접 농사지은 감자나 옥수수를 가게 앞에 몰래 두고 가시곤 합니다.
민준 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성공'의 정의를 다시 묻게 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함, 높은 연봉, 안정적인 직장이 과연 행복의 필수 조건일까요? 민준 씨는 말합니다.
"저는 대기업을 포기한 게 아니라, 저를 잃어버리는 삶을 포기한 거예요. 지금 저는 비로소 제 인생의 CEO가 되었습니다."
그는 오늘도 새벽 공기를 마시며 장을 봅니다. 오늘 갓 나온 싱싱한 버섯을 보며 어떤 파스타를 만들지 고민하는 그의 눈빛은, 과거 모니터 앞에서의 흐릿했던 눈빛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반짝입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도 가슴 속에 사직서 한 장을 품고 계신가요?
아니면 나만의 꿈을 미루고 계신가요? 민준 씨처럼 당장 모든 것을 던질 수는 없더라도, 오늘 저녁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여러분 마음속에도 작은 시골 레스토랑 하나가 지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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