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망해서 컵라면 먹던 30대, '비누 거품' 하나로 인생 역전하다
수확 철이 다가오는데 포도 알이 500원짜리 동전은커녕 콩알만 한 상태에서 멈춰버렸을 때의 그 절망감은 농사를 지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비료가 부족했나" 싶어 뒤늦게 영양제를 쏟아부어 보지만 알은 요지부동이고 오히려 나무만 무성하게 자라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샤인머스캣의 알 크기는 단순히 '먹이는 양'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무가 가진 생산 능력인 '수세'와 농부가 욕심내어 달아놓은 '착과량' 사이의 치열한 줄다리기 결과입니다. 오늘은 왜 내 포도밭의 알들은 작아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잎과 뿌리 그리고 농부의 마음속에서 찾아보고 내년 농사를 성공으로 이끌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해 드립니다.
포도 알이 작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복잡한 식물 생리학을 떠나 아주 단순한 경제 원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바로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뜻입니다.
포도나무에는 두 가지 시스템이 돌아갑니다. 영양분을 만들어내는 공장인 '잎(Source)'과 그 영양분을 소비해서 몸집을 키우는 '열매(Sink)'입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탄수화물)은 한정되어 있는데 가져가려는 소비자(포도 알)가 너무 많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과 현상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소비자는 적당한데 공장 자체가 고장 나서 생산을 못 하거나 공장 설비만 늘리느라(가지 성장) 물건을 안 내놓는 경우도 있죠. 즉 알이 작은 이유는 '밥그릇이 너무 많거나' 아니면 '밥이 부족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원인은 농부의 욕심 즉 '과다 착과'입니다. 샤인머스캣은 다른 품종에 비해 나무 세력이 좋아서 얼핏 보면 송이를 많이 달아도 다 키워낼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가지 하나에 2송이씩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무가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과 잎에서 만든 양분은 한계가 있습니다. 500g짜리 포도 송이 30개를 키울 수 있는 나무에 50개를 달아놓으면 나무는 모든 송이를 포기하지 않고 다 키우려고 애씁니다. 그 결과 50개의 송이 모두가 제대로 크지 못하고 자잘한 '도토리'가 되어버리는 하향 평준화가 일어납니다.
두 번째 원인은 나무 자체가 허약한 경우입니다. 이를 '수세가 약하다'고 표현합니다. 잎이 작고 색이 연하거나 가지가 볼펜 심처럼 가늘다면 수세가 약한 것입니다. 공장의 기계가 낡고 녹슬어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황과 같습니다.
수세가 약해지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작년에 너무 많은 열매를 달아서 나무의 저장 양분을 다 써버렸을 수도 있고(해거리), 겨울철 동해를 입어 물관이 막혔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토양에 선충이나 병해충이 많아 뿌리가 제대로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힘이 빠진 나무는 봄에 싹을 틔울 때부터 비실거립니다. 초기 잎 성장이 늦어지니 광합성 양이 부족하고 결국 세포 분열이 가장 활발해야 할 시기에 영양 공급이 끊겨 알의 '방 개수' 자체를 늘리지 못하게 됩니다. 방이 적으니 나중에 아무리 물을 줘도 알이 커질 공간이 없는 셈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나무가 너무 건강해서 알이 작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수세 과다' 혹은 '영양 생장 과잉'이라고 합니다. 잎은 손바닥 2개를 합친 것만큼 크고 줄기는 엄지손가락보다 굵은데 정작 포도 알은 커지지 않는 현상입니다.
나무는 본능적으로 생존과 번식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환경이 너무 좋고 질소질 비료가 넘쳐나면 나무는 "지금은 덩치를 키울 때다"라고 판단하여 모든 영양분을 가지와 잎을 키우는 데 씁니다. 이를 영양 생장이라고 합니다. 반면 열매를 키우는 것은 자손을 남기는 생식 생장입니다.
"물은 많이 주는데 왜 안 클까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물은 주는 것보다 뿌리가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흙이 딱딱하게 굳어 있거나(경반층) 배수가 안 되어 물이 고여 있으면 뿌리는 숨을 쉬지 못합니다. 산소 공급이 안 되면 뿌리털이 썩고 물을 흡수하는 기능을 잃게 됩니다.
특히 포도 알이 급격히 커지는 1차 비대기와 2차 비대기에는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합니다. 이때 토양 수분이 부족하면 포도 알 속의 수분을 잎이 역으로 뺏어가는 현상까지 발생합니다. 반대로 장마철처럼 물이 너무 많아도 뿌리가 질식하여 양분 흡수가 중단되면서 알 성장이 멈추는 '쇼크'가 올 수 있습니다.
포도 알의 크기는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뉩니다. 전반전(개화 후 약 2주일)은 '세포 분열기'입니다. 이때는 알의 크기가 아니라 알을 구성하는 세포의 '개수'가 결정됩니다. 이때 영양이 부족하거나 수세가 약하면 세포 수가 적게 만들어집니다. 후반전(그 이후)은 '세포 비대기'입니다. 만들어진 세포 하나하나가 물을 먹고 풍선처럼 커지는 시기입니다.
소과 현상의 대부분은 전반전 실패에서 옵니다. 세포 분열기에 날씨가 춥거나 나무 상태가 안 좋아서 세포를 30만 개 만들어야 할 것을 10만 개밖에 못 만들었다면 후반전에 아무리 물과 비료를 줘도 알은 커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작은 풍선을 아무리 불어도 큰 풍선만큼 커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샤인머스캣은 씨 없는 포도를 만들기 위해 지베렐린과 같은 생장조절제를 처리합니다. 이 약제는 알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처리 시기가 너무 빠르거나 늦으면 소과가 발생합니다.
꽃이 만개했을 때 1차 처리를 해야 세포 분열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데 시기를 놓쳐 꽃이 지고 나서 한참 뒤에 처리하면 약발이 받지 않습니다. 또한 약제의 농도가 너무 낮거나 처리할 때 습도가 너무 낮아 약액이 금방 말라버려도 흡수율이 떨어져 알이 커지지 않습니다.
결국 소과를 해결하는 열쇠는 '균형'입니다. 내 나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봄철 가뭄에 대비해 관수 시설을 점검하고 잎이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물을 충분히 주어 초기 세포 분열을 도와야 합니다. 토양 검정을 통해 내 밭에 부족한 미량 요소(붕소, 아연 등)를 확인하고 보충해 주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알 솎기'입니다. 알이 콩알만 할 때 과감하게 솎아내어 한 송이에 35~45알 정도만 남겨야 합니다. "아까워서 어떡해" 하며 망설이는 순간 남은 알들은 서로 영양분을 뺏으려다 다 같이 작아지는 공멸의 길을 가게 됩니다.
농부는 포도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포도나무가 포도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알이 작다는 것은 나무가 "주인님, 저 지금 너무 힘들어요" 혹은 "배가 너무 고파요"라고 보내는 신호입니다. 이 신호를 무시하고 비대제만 뿌려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내 밭의 나무 상태를 냉정하게 진단하고 욕심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기본으로 돌아가 뿌리를 살리고 잎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만이 탐스럽고 굵은 샤인머스캣을 얻는 유일한 지름길입니다. 올해의 실패를 거울삼아 내년에는 나무와 더 깊이 대화하는 농부가 되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샤인머스캣 재배 원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나 각 농가의 토양 환경과 기후 조건에 따라 실제 생육 상황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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